비가 온다더니 안 온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되니까 모기가 극성을 핀다. 달려드는 모기들이 겁나서 숲으로 산책을 하러 가지 못했는데 산책길 가까이 사는 둘째 아들이 손주들을 데리고 산책을 가달라고 연락이 왔다. 여름 방학이라 손자들이 집에서 심심해하는데 모기가 너무 많아 망설이다가 가기로 했다. 이럴 때 비가 한번 오면 모기도 없어지고 날씨도 쾌적할 텐데 비는 올 생각을 안 한다.
손주들과 숲으로 들어가니 잠자던 모기들이 부스스 일어나 반갑다고 달려든다. 손으로 모기를 쫓으며 걷는다. 구름이 하늘을 덮어서 그리 덥지 않아 좋다. 며칠 못 온 사이에 숲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다. 나무와 풀과 꽃들이 피고 진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버섯도 많다. 손주들을 따라간다. 어린 손자들이 어느새 자라서 따라가기가 벅차다.
계곡물을 따라 걷는다. 며칠 전에 비가 많이 왔을 때는 계곡이 넘치던 물이 많이 줄어서 바닥에 있는 자갈들이 보인다. 숲 속에 있는 그 많은 식구들이 마셔대니 아무리 물이 많아도 금방 없어진다. 여러 가지 버섯들이 여기저기 자라고 예쁜 들꽃들이 피었다 지는 아름다운 숲에서 자연을 만난다. 자연을 보고 자연과 이야기하며 걷는다. 집에 있으면 텔레비전이나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보낼 텐데 밖으로 나오니 좋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모기가 떼로 덤벼들어 도망가느라고 바빴는데 오늘은 견딜만하다.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한 손주들이 어느새 듬직하게 자라서 우리를 보호하며 걷는다. 세월 따라 사는 게 사람인가 보다.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되고 우리는 다시 아이가 되어간다. 오늘은 산책길 맨 끝에까지 가봐야겠다. 손주들이 지치지 않고 잘 따라오니 새로운 곳을 구경시켜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매 번 올 때마다 중간까지만 걷다가 돌아갔는데 집에서 있는 것보다 좋은지 잘 따라온다. 중간중간에 새로운 것들을 보며 신기해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즐겨 찾는 이곳이 마음에 드나 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새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얼굴을 내놓고 웃는다. 몇 개를 따주니 맛있다고 좋아한다. 딸기나무와 해당화 나무가 옹기종기 사이좋게 모여 자란다. 분홍색 해당화 꽃이 만발했었는데 모두 지고 열매가 자리를 지킨다. 세상 모든 것들이 때를 따라 살아간다. 이름 모르는 꽃들이 아무도 보지 않아도 제 할 일을 하고 간다. 만나는 들꽃과 버섯들 사진을 찍어 본다. 크고 작은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살다가는 자연이 아름답다. 행복은 마음에 있는 줄 모르고 행복을 찾아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난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 나와 함께 있다. 손주들과 걷는 이 숲 속에 행복이 있다. 어디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이곳에서 손주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에 행복을 만난다. 아무런 꾸밈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순수한 손주들을 보면 나도 아이가 된다. 손주들은 희망이다. 계곡물에 비친 하늘을 보고 징검다리를 건너본다. 다리를 건너고 하늘 높이 자란 나무들을 바라본다. 산책로 끝에 까지 와서 보니 동네 아이들이 지어 놓은 나무집이 보인다. 숲 속에 뒹굴어 다니는 나무들을 모아다가 삼각형으로 집을 지어 놓았는데 참 귀엽다. 손자들이 구멍 뚫린 나무집 옆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웃는다. 숲을 빠져나와 동네로 연결된 길로 걷는다. 딸기나무에 빨갛게 익은 딸기를 따서 먹는다. 맛있다. 손자하나 나하나, 손녀하나 나하나, 하며 번갈아 먹는 우리를 위해 할아버지는 열심히 딸기를 따준다. 참 좋다. 내 여기서 무엇을 더 원하랴. 세 아이들 가정 이루고 잘 살아가고, 손주들 예쁘게 잘 자라 주니 더 바랄 게 없다. 우리만 건강하면 된다. 욕심 없이 마음 편하게 살면 된다. 동네길로 걸어가니 사람들 사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무것도 없이 단순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여러 가지 꽃으로 집을 장식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온상을 꾸며 여러 가지 야채를 길러 먹는 사람이 있고,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놓고 사는 사람이 있다. 사람 사는 모습이 참으로 여러 가지이다. 오늘은 오며 가며 만난 꽃들이 많다. 내년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시 피어날 것이다. 예쁘게 피었다 지는 꽃들처럼 사람도 피고 지고 다시 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고 가 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아들네 집이 저 앞에 보인다. 손주들과 포옹을 하며 함께 걸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하니 저희들도 행복했다고 한다. 그래, 우리 모두모두 이렇게 오래오래 행복하자 손주들아.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는 마음에 사랑의 꽃이 핀다. 아침에 보이지 않던 태양도 미소하며 우리를 내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