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가수이던 고 '배호' 씨가 불러 유행하던 유행가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연상케 하는 아침이다. 안개가 뽀얗게 껴서 가까운 앞집도 희미하게 보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는데 갑자기 안개가 세상을 덮어서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안개가 끼면 날씨가 맑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짙은 안개다. 안개 때문에 일어나는 사고도 적지 않다. 특히 안개가 뜨면 조종사들이 비행을 꺼린다. 오히려 비와 눈보다 더 위험한 사고가 생길 수 있는 것이 안개 낀 날이다. 안개는 비와 같은 액체로 분류하지만 시야거리가 감소되어 아주 위험하다. 살다 보면 갑자기 닥치는 어려운 일로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음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 도저히 갈피를 못 잡을 때가 있다. 인생이란 한 치 앞을 모른다고 하는 말이 있다. 정말 안개가 끼면 바로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아 당황하게 된다. 오래전 아주 추운 겨울에 차 시동을 걸고 나서 차 안의 온도가 올라가기도 전에 집에 빨리 갈 마음에 급히 운전을 한 적이 있다. 차 안의 찬 온도와 내가 내쉬는 뜨거운 호흡과 만나서 앞 유리창이 하얗게 얼어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안갯속을 달리는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생각이 난다. 급한 마음에 얼은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긁어가며 위험한 순간을 넘겼다. 다행히 반대쪽에서 오는 차가 없어 큰 사고 없이 위험한 순간을 넘겼지만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그날은 안개가 아니고 온도차이로 생겨난 일이다. 앞 유리창이 뽀얗게 얼어붙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차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뒤로 겨울에 밖에 오랫동안 차를 세워놓을 때는 미리 시동을 걸어놓고 차가 따뜻해지면 운전을 한다. 살아가면서 힘든 상황이 오고 가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경우에 안갯속을 헤치고 다닌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안개로 인하여 자연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잠시 쉬었다 가면 된다. 1982년도에 앨버타 주에 경제공황이 찾아왔다. 공황이 오기 전에는 일이 많고 수입이 좋다 보니 높은 이자임에도 불구하고 모게지를 얻어 집을 사고 차를 산 사람들이 많았다. 공황이 오고 있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일해서 은행빚 갚고 남부럽지 않게 멋지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직원들을 감축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가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는 회사가 많아지고 사람들은 직업을 찾아 이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높은 이자로 산 비싸고 화려한 집도, 좋은 가구도 직업이 없으면 갚을 능력이 없다. 급기야는 사람들이 하나둘 이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데 두 손 묶어 놓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다른 큰 도시로 떠났다. 앨버타주에 붐이었을 때에 밴쿠버와 토론토에서 이곳으로 온 사람들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서 먹고살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애당초 앨버타로 이민 온 우리는 돌아갈 곳도 없었다. 안개가 껴서 앞이 보이지 않아도 이곳에서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동안 알던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밴쿠버나 토론토로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지만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는 이곳이나 다름없어 이곳에 눌러앉기로 했다. 연년생 아이들 셋을 데리고 모르는 곳에 가서 다시 시작하기는 쉽지 않은 것을 알기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안개가 걷히고 나니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개가 끼면 잠시 쉬었다 가면 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 안개를 뚫고 억지로 가는 것보다 안개가 걷히고 날이 맑기를 기다리는 것도 대안이다. 살다 보니 안개만이 문제가 아니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이 많다. 세상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오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고 내일 해도 되는 일이 있다. 위험한 순간에는 잠시 몸을 낮추고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몸을 사리는 것은 비겁해서가 아니고 대의를 위해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세상에는 안개 낀 날 잘못된 선택으로 일어난 사고가 많다. 한 사람의 생각이 여러 사람을 살리고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죽고 사는 일이 아니면 오늘같이 안개가 짙게 낀 날은 외출하기보다 집안에서 사색이나 해야겠다. 오늘 하루 안개를 핑계 삼아 그동안 미루었던 집안일이나 해야겠다. 며칠 있으면 빅토리아에 사는 딸이 친정에 온다고 하니 딸이 있는 동안 편하게 있다 갈 수 있게 준비나 해야겠다. 안개 낀 날이라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불평하는 대신에 안개가 껴서 고맙다 생각하니 창밖에 보이는 안개 낀 뽀얀 세상이 엄청 아름답다. 세상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좋게 생각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오랜만에 안개 낀 모습을 바라보며 40여 년 전의 기억을 소환해 보니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세월만큼 추억도 많아져서 추억 부자가 되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