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를 채우는 고마운 햇살

by Chong Sook Lee


아이들이 온다고

기다렸는데

어느새 각자의 집으로 가고

서로의 일상을 살아갑니다

먹고 웃고 이야기하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주말은
언제나 급하게 가버립니다
시간을 붙들어 놓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없는 집은
휑하여 참으로 조용합니다
남편은 이층에서
휴대폰을 보고
나는 아래층에서 앉아서
창밖을 내다봅니다
할 일은 많아도 모르는 채 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오늘 하지 않아도
뭐라 할 사람은 없어
그저 뒹굴거리며 놉니다
가을을 맞은 텃밭에는
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려있고
토마토가 발갛게 익어가고
고추와 깻잎은
마지막 남은 열정으로
버티며 자리를 지킵니다
가을이 성큼 다가와
나무들이 형형색색의
찬란한 옷으로
예쁘게 치장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계절은 때를 알고 오고 갑니다
봄이라고
봄이 왔다고 좋아했는데
폭염과 폭우와 산불로
가득 찼던 심술궂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세상을 물들입니다
아름다운 가을이

한가한 뜰에 내려앉습니다
심심한 고추잠자리는
가을뜰에서 춤을 추며
신나게 날아다닙니다
시끌벅적하던 집이
절간처럼 조용하여
어느새 아이들이 다시
그리워지는 오후를 맞이합니다

이렇게 시간이 가면

또 다른 날에

반가운 만남이 있으리라 기대하며

따스한 햇살이 고맙게도

오늘의 빈자리를 채웁니다


( 사진: 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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