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꾸지 않은 자연이 더 아름답다

by Chong Sook Lee


며칠 전에 온 눈이 조금씩 녹아간다. 갑자기 찾아온 겨울을 피해 집안에만 있다가 오늘은 오랜만에 가까운 숲을 찾아본다. 추워서 인지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다람쥐도 나와 놀지 않는다. 날씨가 춥지만 숲 속의 공기는 아주 상쾌하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는 곳도 있고, 낙엽이 잔뜩 쌓인 곳도 있고, 새카만 맨땅이 보이기도 하는 숲 속에는 눈이 있어 포근한데 눈이 없는 산책길은 조금은 삭막하다. 나목들의 행렬이다. 많은 이파리들을 다 털어내고 서있는 나무들이 초라해 보이지 않고 위엄 있어 보인다. 보이지 않는 뿌리를 통해 봄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낡은 것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기 위해 겨울을 견디는 모습은 존경스럽다. 계곡은 살얼음이 얼었다. 밤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면 얼고 햇살이 내리쬐면 군데군데 녹아서 흐른다. 봄여름의 푸르른 모습은 없고 오래전부터 겨울인 것 같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숲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하다. 온 천지가 노란색으로 물들던 가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겨울이 자리를 잡고 주인 행세를 한다. 봄이면 쫓겨 갈 겨울이지만 지금은 숲을 차지하고 버티고 있다. 온갖 풀들과 나무들이 점령하던 숲은 텅 빈 채 눈부신 햇살이 나무사이를 비춘다. 생사가 오고 가며 이어지는 세상만사가 계절 속에서 녹아간다. 커다란 고목이 여기저기 뿌리째 뽑혀 있다. 살 만큼 살다가 때가 되면 가는 인생을 닮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땅 넓은 줄 모르고 영원히 살 것 같은 나무인데 생을 다해 넘어져서 길게 누워서 하늘을 본다. 어떤 나무는 산책로에 넘어져서 사람들이 숲 안으로 옮겨놓기도 하고, 어떤 나무는 옆에 있는 나무에 반쯤 쓰러져 기대고 있다. 꾸며져 있지 않은 숲이지만 어쩌다 시에서 일하는 직원이 나와 위험한 나무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다. 지난번에 넘어진 나무를 토막 내어 옆에다 놓았는데 그것들이 계곡물안에 들어가 앉아 있다. 심심한 동네 아이들이 계곡에 던져놓은 것 같다. 햇살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비춘다. 눈이 부시다. 자연은 저토록 그냥 놔둘 때 아름답게 빛난다. 개발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세상에 아직도 이런 아름다운 곳이 시내에 건재하는 것은 정말 기적이다. 온갖 꽃과 풀들이 수많은 나무들과 어우러져 사는 숲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이 겨울을 맞고 어딘가로 떠나고 숨어 있지만 봄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피어난다. 어느 정도 걷다가 숲으로 들어가서 걸어보면 가꾸어진 산책로와는 다르다. 구불구불하고 오르락내리락한다. 평지와 비교할 때 두 배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낙엽이 떨어져 보이지 않던 길이다. 샛노란 황금빛의 낙엽들이 이제는 눈아래에 묻히고 사람들에게 밟혀 가루가 되어 흙으로 되돌아간다. 길을 따라가면 지난날들의 추억이 하나둘 그려진다. 딸기가 자라는 곳을 지나고 온갖 산나물이 피어나는 곳을 지나간다. 여름동안 손주들과 딸기를 따먹으며 오르내리던 길이다. 어느 날 남편이 나무뿌리를 밟아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길옆에 서 있던 나무를 받고 넘어져 하늘을 보던 것도 생각이 난다. 얼굴이 벗겨지고 이마에서 피가 흘러 엄청 놀랐는데 넘어진 남편은 하늘을 보고 누워서 "참 편하다." 하던 날이 생각난다. 그렇게 지나간 모든 것들은 추억이란 옷을 입고 다시 우리를 찾아온다. 언젠가 한 번은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커다란 늑대가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걸어가는 게 보여서 가지고 있던 방울을 힘껏 흔들어 쫓아내기도 했다. 지나간 것들은 하나둘 잊히는데 어떤 것들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봄에 피어나는 새싹을 보며 가는 길을 멈춰 서서 예쁘게 자라는 나뭇잎을 만져보기도 하고, 모기들에게 쫓기고 벌집을 잘못 건드려서 줄행랑을 치기도 하던 여름날이 갔다. 최고의 모습으로 숲 속을 치장하던 단풍들은 낙엽 속에 사라져 갔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겨울을 사랑하며 동행해야 한다. 바람이 불고 눈이 와도 같이 봄을 맞이해야 한다. 나날이 두껍게 얼어가는 계곡물이 녹을 때까지 봄은 오지 않는다. 오솔길을 수없이 걷고 얼은 손을 호호 불며 눈 쌓인 겨울숲이 녹는 날 우리는 봄을 만난다. 아름다운 분홍 꽃을 피우며 숲에 사는 벌나비를 유혹하던 해당화는 빨간 열매를 익히고 있다. 숲에 사는 새들이 겨울에 먹기 좋게 빨갛게 익어간다. 자연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걸 공급하는데 인간은 자연을 위해 무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인간이 개발 명목으로 파괴하는 자연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예쁘게 다듬지 않아도 아름다운 자연이다. 피어나고 살다가 떠나게 그냥 놔두면 좋겠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너무나 자연적인 모습에 가슴이 떨리던 생각이 난다. 인간의 손이 타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 오면 올수록 좋다. 계곡물은 흐르고 싶은 대로 흐르고, 넘어진 나무들은 남모르게 버섯을 키우고, 나무사이로 보이는 햇살 아래에 풀들이 자라는 모습은 경이롭다. 꾸미지 않은 곳에서 자유롭게 피고 지는 것들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좋아 오기 시작한 이곳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장소처럼 신비롭다. 넘어진 나무뿌리를 보고 얼음아래서 흐르는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나무를 오르내리는 다람쥐를 본다. 세상은 온통 문제 투성인데 세상과 동떨어진 이곳에서 평화를 만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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