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그냥 가지 않고 사람을 변하게 한다

by Chong Sook Lee



사람의 관계는 참으로 오묘하다. 인간관계는 대화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웃으며 정을 쌓는다. 모든 만남은 처음에는 어설프지만 자꾸 만나다 보면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자주 만나기도 하고 실망을 하여 관계를 청산하기도 한다.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지만 막상 만나면 할 말이 없는 사람이 있고, 특별히 할 말이 없는 것 같은데 만나면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친하지는 않아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 있고,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만나면 불편한 사람이 있다.


살다 보면 그리운 사람도, 잊힌 사람도 인연이 있으면 한 번쯤 우연히 만나게 된다. 오랜만에 쇼핑몰을 갔는데 멀리서 눈에 익은 사람이 보인다. 옛날에 알던 사람인데 오랫동안 소식도 전하지 않고 살았는데 얼굴을 보는데 아는 체하고 싶지 않다. 오랜만이라 어색하고 그리 궁금하지도 않은 사람이라 그냥 지나치려고 하는데 나를 보고 뛰어온다.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며 내 두 손을 잡는다. 어딘가에 가서 커피라도 한잔 하자며 팔을 잡아당긴다.


할 말도 없고 친하지도 않은데 시간낭비 같아 잠깐 서서 안부를 물었다. 오래전에 같이 일하던 직장동료로 늘 웃으며 사람들을 상대해서인지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녀 특유의 발음으로 하는 영어가 이해하기 힘들어 가벼운 인사만 하고 지냈는데 어쩌다 둘이 만나면 나를 잘 따르고 좋아해서 몇 번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그때당시 30대 후반이던 그녀는 미혼이었고 혼자서 자취를 하며 살았는데 그 뒤로 나는 이직을 하여 그 뒤로는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런저런 안부를 묻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져서 쇼핑몰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아이는 없다며 특유의 웃음을 웃는다.


아무런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지나치려 했는데 의외로 할 말이 무궁무진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같이 다니던 회사이야기를 하게 되어 다른 동료 친구들의 안부도 전해 들었다. 누구는 아이를 낳고, 누군가는 어디로 이사를 갔고, 회사를 여전히 다니는 몇몇 동료들도 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서 오랜만이고 잊힌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며 한참을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다음에 또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면 또 부담 없는 이야기를 하고 헤어지겠지만 생각지 못한 좋은 시간을 가졌다. 친한 사람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이 통한 것 같다.


우리는 매일매일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고 산다.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며 또 잊고 산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교우들은 따로 만나지 않아도 안부를 알 수 있다. 성당에 안 나오면 어디를 갔나 보다 하고 오랫동안 보지 못하여 궁금하다 생각하면 다시 보게 된다. 몇십 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에 안 보이면 궁금하고 보면 반갑다. 한국에 사는 친구들은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나다 보니 못 만나고 산다. 어쩌다 고국방문을 한다 해도 연락이 되는 친구들이 점점 줄어간다.


어릴 적 좋아서 죽고 못살던 친구들인데 세월의 강은 그렇게 무심하게 흘러간다. 가까이 사는 사람들도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잘 있으려니 믿고 어쩌다 노인회나 한인회에서 만나면 반가워 옛날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젊은이가 노인이 되고 아이들이 청년 장년이 되어 이제는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지만 다행히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의 자녀들은 인사를 하여 알아보는데 세월이 참 무섭다. 기저귀가방을 가지고 만나던 친구들의 자녀들은 이미 40세, 50세가 넘는 세월이 흘렀다.


20대 중반에 이민온 우리가 70이 넘어 노년이 된 걸 생각하면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는 말이 맞다. 오랜만에 만났던 동료와 이야기를 생각하며 지난날을 돌아다본다. 남편과 함께 직장에 다니며 어린 삼 남매를 키우던 날이 눈에 선하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어린아이들을 집에 두고 일을 가면 당장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아 수도 없이 전화로 확인했다. 빨간색 전구가 맛있어 보였는지 전구를 이빨로 깨물어서 입에서 피가 나는 일도 있었다. 동전을 소켓에 넣어 전기합선이 되기도 하고 철봉에 매달렸다가 팔에 힘이 빠져 땅에 떨어지며 입이 무릎에 닿아 입술이 찢어지기도 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서 빨리 자라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이제는 손주들이 그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자라고 젊은이들은 노인이 되어가는 세월 동안 만난 사람도 많고, 잊힌 사람도 많다. 코로나로 인하여 3년이란 시간 동안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살았는데 그사이에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 성당에 가보면 옛날 사람은 손가락 꼽을 정도이고 많은 청장년들을 보게 된다.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모르겠다. 이민온 사람도 많고 유학 온 사람도 많을 것이다. 외국 다니는 것이 안방에서 건넌방 가는 것처럼 쉬워진 세상이다.


한국에도 외국사람이 많은 것 같이 이곳에도 한국 사람이 많아졌다. 어쩌다 나가보면 한국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서 한국에 왔나 할 정도가 되었다. 이민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한국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동양 사람이 지나가면 일부러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던 생각이 난다. 그러다 한국사람을 만나면 어찌나 반가웠던지 길거리에 서서 한참 이야기 했다. 이제는 한국 사람을 만나도, 지나쳐도 그전 같지 않아 그냥 스쳐 지나간다. 이처럼 세월은 그냥 가지 않고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만나고 헤어지며 세월 따라 산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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