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행복

by Chong Sook Lee



겨울 숲은 황량하다. 나무들이 벌거벗고 서있고 마른풀들은 힘없이 옆으로 쓰러져 있다. 어젯밤에 내린 눈이 오솔길을 덮고 있다. 미끄러울 것 같아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걷는다. 장갑 낀 손가락이 시리고 털모자를 썼는데도 귀가 시리다. 걷고 싶지 않다는 생각 없이 습관처럼 일찍 산책을 나왔다. 아무도 없는 숲 속을 남편과 걷는다. 옷을 벗은 나무들이 조용히 우리를 반긴다. 어제도, 그제도 만난 나무들이다. 언제부터 넘어져 있었는지 커다란 나무가 뿌리째 뽑혀 계곡을 가로질러 누워 있다. 아무도 걷지 않는 숲으로 이어진 오솔길이 외로운 듯 하늘을 바라본다. 가지가 구부러진 나무들이 어깨를 기대고 숲을 지킨다. 크고 작은 나무들은 언제부터 여기에서 살고 있었을까? 나무들의 뿌리가 땅을 헤집고 나와있어 자칫 잘못하면 넘어지기 때문에 땅을 보고 걷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보인다. 계곡의 얼음도 점차 두꺼워지고 군데군데 녹은 곳에서는 계곡물이 사이좋게 흐른다. 단풍이 물들었던 모습은 없어지고 떨어진 낙엽은 다시 흙이 된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지난날들이 보인다. 여름에 아이들이 나무로 지어놓은 '티피'가 쓸쓸하게 숲을 지킨다. 숲도 사람처럼 각자 할 일을 하며 살아간다. 버섯을 키우며 누워있는 나무가 있고, 미련 때문에 마른 이파리를 떨구지 못하고 서있는 나무도 있다. 개울 옆에는 들꽃이 마치 갈대처럼 살아가고 있다. 눈이 와야 누울 생각인지 아직도 꼿꼿하게 서있다. 숲에는 오르고 내리며 걷는 오솔길에 있어 지루하지 않아 좋다. 거의 매일 습관처럼 이곳에 온다. 집에서 멀지 않고 사람들이 별로 없어 좋다. 계절 따라 변하는 모습이 인생 같다. 없던 나무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큰 나무는 숲을 지키다 힘들면 눕는다. 누운 나무들 옆에는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온갖 생명들이 모여든다. 보이지 않지만 여러 가지 동물들이 숲 어딘가에 살아간다. 사슴, 늑대, 토끼와 다람쥐 그리고 부엉이를 비롯해 크고 작은 새들이 숲에서 산다. 커다란 새 한 마리가 하얀 날개를 크게 펴고 날아가다 나무에 앉는다. 한가한 숲에서 각자 먹고 할 일을 하며 서로 싸우지 않고 산다. 낙엽이 쌓여 있는 곳은 미끄러워 걸을 때 조심해야 한다. 스틱을 들고 다니니 의지가 된다. 네발 달린 짐승들이 산을 잘 타는 이유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했다. 더 가자니 피곤할 것 같아 돌아서 온길을 다시 걷는다. 갈 때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인다. 똑같은 길인데 다른 길 같다. 옆으로 넘어진 나무도 보이고 멀리에 있는 다리도 보인다. 길은 같은 길인데 방향에 따라 기분이 다르다. 오르던 길은 내려가게 되고 내려가던 길은 오르게 된다. 왼쪽으로 돌던 길은 오른쪽으로 돌게 된다. 등을 비추던 햇살을 바라보고 걸으니 눈이 부시다. 추웠던 몸이 더워져서 모자를 벗고 걷는다.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무심코 걷다 보니 어떤 사람이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서 기계로 나뭇가지를 자르고 있는 게 보인다. 주차한 곳이 눈앞에 바로 보이는데 지나갈 수 없다. 온길을 돌아서 나와 동네로 들어가 본다. 사람도 여러 가지, 집들도 여러 가지, 세상에는 같은 게 없다.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는 것도 괜찮다. 크고 작고 네모나고 세모난 집들이 사이좋게 있다. 동네는 넓은데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조용하다.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아무런 소리도 없다. 학교에 가고 일을 갔나 보다. 떨어진 낙엽이 잔디 위에서 꼼지락 거리는 한가한 날에 바람도 자나보다. 어느 집 앞에 죽은 나무가 하나 보이는데 무지개색으로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게 특이하다. 죽은 나무가 화사해서 세상에 있는 죽은 나무에 페인트를 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코너를 돌아보니 꽃사과 나무가 보인다.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빨간 사과만 매달려 있는데 마른 대추 같아 보여 하나를 따서 먹어 본다. 달고 맛있다. 겨울에 새들이 먹기 좋을 것 같다. 하루가 시작되고 세월은 돈다. 낮은 짧아지고 밤은 길어지고 겨울은 깊어가고 봄은 가까워진다. 기다리는 세월이 다녀간 것도 모르게 빠른 세월이다.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 봄이 온다고 했는데 언제 여름,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왔는지 모르겠다. 이러다 보면 어느 날 땅속으로 보이지 않게 오는 봄을 만날 것이다.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다는 말이 맞다. 매일매일 같은 일을 하며 살아도 지치지 않고 싫증 나지 않는다. 변함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새날처럼 나날이 새롭다. 같은 곳이라도 매일이 다르기에 알게 모르게 변하는 숲 속의 매력에 빠져 산다.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아줄지 벌써부터 설렌다. 다른 곳을 찾기보다 같은 곳에서 보지 못한 것을 찾으며 행복을 만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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