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은 날엔... 손 칼국수가 최고

by Chong Sook Lee


하늘이 낮게 내려앉았다. 눈이 온다고 하는데 얼마나 올지 잔뜩 흐리다. 해마다 이맘때는 눈이 많이 오긴 했지만 올해는 눈이 안 와서 보너스 같은 날씨를 즐긴다. 눈이 안 올 수는 없겠지만 조금만 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창밖을 내다본다. 눈은 없지만 겨울의 모습은 어쩔 수 없다. 세상이 온통 회색옷을 입고 우중충하다. 눈이 오지 않아 어쩌면 이대로 봄이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한다. 이곳의 겨울은 눈이 한번 오기 시작하면 무릎까지 쌓이고 봄이 올 때까지 녹지 않는다. 사정없이 내리는 눈이 쌓이면 빗자루로 치우기가 힘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계를 사용한다. 기계로 치면 깨끗하게 잘 치워지지만 기계가 무겁다 보니 플라스틱 삽으로 친다. 눈이 쌓이면 허리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틈틈이 치는데 그것도 일이라고 힘이 든다. 눈아 오면 남편 혼자 친다고 나오지 말라고 하지만 같이 치우다 보면 재미도 있고 빨리 끝난다. 지금이야 아무 때나 내가 편한 대로 살지만, 퇴직하기 전에는 사정이 달랐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일어나서 밤에 눈이 온 것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출근하기도 바쁜데 눈을 일찍 치우지 않으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거나 온도가 내려가서 얼면 더 힘들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눈을 치고 간다. 급한 마음에 빨리 치우려고 하다가 넘어져서 여기저기 아파도 우리를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출근을 하던 생각이 난다. 눈이 오는 날엔 식당이 평소보다 더 바쁘다. 여기 사람도 한국사람들처럼 눈이나 비가 오는 궂은날에는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은지 아침 일찍부터 손님들이 몰려온다. 어차피 넘어져서 아프니까 진통제 하나 입안에 털어놓고 손님을 먼저 챙기다 보면 하루가 간다. 신용을 기본으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손님은 언제나 왕이다. 아프다고 문을 안 열고 이런저런 핑계로 문을 닫을 수 없었다. 진통제로 버티다 보면 저녁에는 그야말로 곤죽이 되어 집으로 가서 쉰다. 지난날들을 생각해 보면 삶이란 뒤로 갈 수 없고 앞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아파도, 힘들고 괴로워도, 내색하지 않고 변함없이 웃음으로 대하다 보니 모든 것이 잘 지나갔다. 세월은 말없이 우리를 지켜준다. 눈이 올 듯, 비가 올 듯하다가 바람만 불고 말기도 하고, 멀쩡한 하늘에서 날벼락이 치기도 한다. 화창한 날씨에 어디선가 몰려온 먹구름으로 소나기가 퍼붓기도 하지만 멋진 무지개를 선물하기도 한다. 영원은 없지만 순간순간이 모여 영원이 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날마다 나를 만나러 오는 새로운 날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살면 된다. 지나간 날은 추억이고 알 수 없는 미래는 희망이다. 세상에 생겨나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유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좋은 날은 가지 말기를 원하고,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원한다. 하늘아래에 살고 땅 위에 사는 우리는 자연이 베풀어 주는 대로 살아야 한다. 거부하기보다 순응해야 한다. 살면서 힘든 날은 인생의 겨울이 왔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추운 겨울이 가면 봄이 오기에 겨울을 끌어안아야 한다. 하늘 안에 눈이 잔뜩 들어 있다. 금방이라도 눈폭탄이 쏟아질 것 같다. 오지 말라고 해서 오지 않을 눈이 아니기에 즐기면 된다.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좋은 사람과 낭만의 데이트를 하면 된다. 눈이 없는 겨울은 삭막하고 우중충한데 하얀 눈이 오면 더럽고 추한 것을 덮어준다. 추우면 옷을 더 껴입으면 되고, 그것도 안되면 집안에서 가만히 있으면 된다. 세상만사 싫은 것은 쉽게 찾아오고 좋은 것은 더디 온다. 회색하늘도 예쁘게 봐주고 무엇이든지 나를 찾아오는 것을 받아들이면 좋은 일도 따라온다. 오늘같이 날이 꾸물꾸물하는 날은 손으로 만든 구수한 손 칼국수가 먹고 싶다. 밀가루 두 컵에 기름 한 숟갈 넣고 뜨거운 물로 익반죽을 하여 밀대로 쭉쭉 밀어서 칼로 썰어 멸치 육수에 넣고 끓이면 된다. 마침 사다 놓은 호박도 있으니 잘됐다. 특별한 반찬도 필요 없다. 김치와 깍두기만 있으면 된다. 맛있는 칼국수를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침이 고여 한시가 급하다. 생각지도 않은 칼국수를 날씨덕에 먹는 날이다. 눈을 잔뜩 품고 있는 회색 하늘이 주는 선물 같은 칼국수를 어서 준비해야겠다. 국수 종류는 전부 좋아하지만 손으로 밀어서 만드는 손 칼국수는 나에게 추억의 음식이다. 몸이 약한 엄마를 위해 아버지가 손수 밀어주시면 엄마가 얇게 썰어서 맛있게 만들어 주시던 칼국수가 먹고 싶지만 이제는 아버지 대신에 남편이 밀어주고 내가 썰어 만들어서 추억과 함께 먹는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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