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따라 인생도 변한다

by Chong Sook Lee


옷장을 열어 본다. 여러 가지 옷이 걸려있다. 마음에 들어서 한 개씩 산 옷들이다. 유행이라 사기도 하고, 값이 싸서 사기도 하고, 세일을 해서 산 옷들이다. 색깔도, 무늬도, 디자인도 여러 가지다. 일 년에 한두 번 입는 옷도 있고, 한 번도 안 입는 옷이 있지만 즐겨 입는 옷도 있다. 입을수록 맘에 드는 옷이 있고, 걸어놓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옷이 있다. 입지 않다가 어쩌다 입어보고 새삼 좋아져서 입기도 한다. 자주 입는 옷은 편해서 입는데 잘 안 입는 옷은 입을 때마다 새로 산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쇼핑을 가서 아이쇼핑을 하듯 옷장 안에 있는 옷을 꺼내서 입고 나면 옷을 사지 않아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던 옷을 입어보면 어쩐지 이상하고, 입으면 나이 들은 것 같아 입지 않은 옷들이 어느새 나에게 어울린다. 세월 따라, 나이 따라 옷도 나이가 들어간다. 예쁜 드레스가 웃고 있는데 손이 안 간 지가 꽤 오래되었다. 연말 파티에 갈 때 입으려고 사놓은 파티 드레스는 구석에 박혀 있고 몸에 꽉 끼는 바지는 서랍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몇 번 밖에 입지 않아 버리기는 아까운데 언젠가는 나를 떠나야 할 물건들이다. 유행이 오고 가기는 하지만 옛날 물건은 새로 나온 신상품과는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여전히 구식 같아 보여 입을 수 없다. 외출이 줄다 보니 많은 옷이 필요 없고, 멋있는 옷보다 편한 옷이 좋아진다. 무엇을 입어도 예쁘던 나이는 지나고, 비싸고 좋은 옷을 입어도 그저 그런 나이가 되었다. 다행인 것은 체형이 많이 변하지 않아 오래전 산 옷도 입을 수 있다. 굳이 새 옷을 사기보다 몇 번 안 입은 옷을 꺼내서 입으면 된다. 가방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요즘에는 어깨에 메고 다니는 작은 백을 선호한다. 카드 몇 개와 전화가 들어가면 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가지고 다닐 것이 많아 큰 가방을 가지고 다녔는데 지금은 전화만 있으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니 큰 가방이 필요 없다. 가방이나 구두나 옷 할 것 없이 살림살이는 유행의 물결이 심하다. 안경도, 자동차도, 실내 장식도 유행에 아주 민감하다. 새로 지은 집들은 보기도 산뜻하고 화사한데 오래된 집은 아무리 깨끗하게 관리를 잘해도 우중충하다. 구두굽이 한없이 높아지더니 지금은 운동화처럼 낮고 편한 구두가 유행한다. 가방도 커질 만큼 커지더니 다시 작은 가방이 유행하고 옷도 남녀 구분 없이 유니섹스로 만들어 누구나 입을 수 있다. 열 살 된 손녀딸은 아빠 티셔쓰나 엄마옷을 즐겨 입는다. 어릴 때부터 꽉 끼고 몸에 맞는 옷을 싫어하다 보니 어른옷을 좋아해서 입고 다니는데 잘 어울린다. 사람마다 개성이 있어 마음에 맞게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가방을 메고 다닌다. 요즘에는 재활용이 유행하다 보니 천으로 만든 백을 가지고 다니는데 유행이다. 옷장 선반 위를 정리하다 보니 천으로 된 가방이 하나 보인다. 아무런 무늬가 없어 그림을 그려 넣으면 더 개성이 있을 것 같아 그림을 넣어 본다. 캔버스 천에 숲 속의 나무를 그려 넣고 색을 칠했더니 그럴싸하다. 밋밋한 천에 나무 몇 그루와 이파리 몇 개 그려 넣으니 더 매력적이다. 별것 아닌 것에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느낌으로 사용하는 원리다. 보통 옷에 스카프로 멋을 내고 추운 날에 커다란 목도리로 목을 감싸면 따뜻하기도 하고 멋스럽기도 하다. 이렇게 유행을 따라갈 필요 없이 있는 물건에 작은 소모품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검은색 코트에 화사한 스카프로 다른 느낌을 주는 것도 좋은 예이다. 겨울에 안 그래도 우중충한데 밝은 색으로 포인트를 주면 코트도 살고 스카프로 살아나게 되어 새로 산 물건 같은 모습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물건을 새로 사기보다 있는 것을 이용하며 조화를 맞추면 문제가 없다. 집에 있는 물건도 없애야 하기 때문에 쇼핑을 가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사지 않고 그냥 돌아선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고급 식당에 갈 때조차 편하고 따뜻한 옷이 최고다. 가방도 크거나 무거운 것은 싫고 가볍고 작은 것을 들고 다닌다. 유행을 좋아하지 않아도 알게 모르게 유행 따라 살아간다. 사람들의 선호도에 따라 가벼운 옷을 만들고, 편한 신발을 만들고, 실용적인 가방을 만드는 세상이다. 종이책의 불편함을 전자책이 해결하는 세상이 앞으로는 어떤 형태로 변할지 궁금하다. 가구도 벽에 설치되어 필요할 때 꺼내서 쓰기 때문에 일일이 가정마다 가구를 살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온다. 큰 집을 선호하던 시대가 사라지고 작고 편리한 집을 원한다. 물건이 이유 없이 많을 필요도 없고, 집이 커야 할 필요도 없어지고 작아도 실속 있는 세상이 되어간다. 물건이 많아야 부자이던 세상이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사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없어도 되는 것은 사지 않고 필요하면 빌려다 쓰는 세상으로 바뀐다. 인간은 매일매일 먹고 마시고 무언가를 만들며 살아가고 그만큼의 쓰레기를 버리고 산다. 아무것도 안 만들 수 없겠지만 덜 사면 덜 만들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고물가에 몸살을 앓아도 사람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산다. 오래된 것을 버리고, 고장 난 것을 버리고, 싫증 나서 버리며 산다. 새물건을 사면 기분이 좋지만 언젠가는 또 쓰레기가 된다. 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사고 버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버린다. 오래전에는 물건을 물려받고 나누며 살았는데 요즘엔 달라졌다. 계절처럼 버리고 사고팔고 세상은 돌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새것도 버리고 쓸만한 것도 몽땅 버린다.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지고 변하여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 유행 따라 인생도 시대를 따라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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