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시작과 끝이 만나는 순간
by
Chong Sook Lee
Jan 6. 2024
아래로
한바탕 난리가
지나간다
아이들이 들락거리고
선물을 주고받고
없던 물건이 생기고
있던 물건은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
정리를 하려고
시작하려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집안 정리를 하는 것도
부질없어 그냥 놔둔다
어차피
한 번의 정리로
끝나지 않는 인생살이다
어느 날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을 때가 되면
그때
한꺼번에 몽땅
버리면 된다
지금 필요 없다고 버리고
나중에 필요할 거라고
쌓아놓고 살았는데
그것 또한 부질없다
필요하면 사고
안 쓰면 버리며
사는 사람도 잘 산다
모으고 쌓아놓는다고
해결책이 아니다
언젠가를 위한 삶은
이제 그만하자
그 언젠가라는 날은
올지 안 올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이 바로
언젠가라고 생각한 날이다
오늘 필요 없으면
필요 없는 것이다
필요해서 사고
나중을 위해서 사고
세일해서 사고
싸서 산 물건이
구석에 처박혀
정작 필요할 때는
어디 있는지 생각도 안 난다
눈앞에 있는 것만 해도
사는데 지장 없다
나중에 쓰려던 물건을
다시 쓴 시간이 없다
세상은 돌고 돌고
날마다 새물건이 나온다
나중이라는 시간은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과 살자
좋아서 만난 사람도
언젠가 헤어지고
갖고 싶어서 산 물건도
쓸모가 없어진다
미련을 버리고 내일을 살자
어제를 잡고 있으면
어제에 묶여서
오늘을 살지 못하고
내일이 오는 길을 막는다
인생이라는
연극무대에서
연기자로 사는 게 삶이다
연습을 하다 보면
삶에 맞는 역을 찾게 된다
어제의 내가 맡은 역은
어제의 시간으로 막을 내렸다
오늘은 오늘의 역이 있다
오늘이
끝나기 전에
오늘의 역을 잘 끝내고
내일을 맞아야 한다
오늘을 끌어안고 살면
내일을 위한 시간을 놓친다
정리를 하지 않아도
어느 날
나의 시간이 다하면
정리를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끝이 오면 해도 된다
시작과 끝은
언제나 만나 동행한다
시작이 끝이고
끝은 다시 시작이 된다
(사진:이종숙)
keyword
물건
정리
일상에세이
84
댓글
1
댓글
1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Chong Sook Lee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Chong Sook Lee의 브런치입니다. 글밭에 글을 씁니다. 봄 여름을 이야기하고 가을과 겨울을 만납니다. 어제와 오늘을 쓰고 내일을 거둡니다. 작으나 소중함을 알아갑니다.
팔로워
2,925
제안하기
팔로우
작가의 이전글
겨울 안에 보이는 봄
함박눈이 기다려지는 날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