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이 만나는 순간

by Chong Sook Lee


한바탕 난리가

지나간다

아이들이 들락거리고

선물을 주고받고

없던 물건이 생기고

있던 물건은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


정리를 하려고

시작하려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집안 정리를 하는 것도
부질없어 그냥 놔둔다

어차피

한 번의 정리로

끝나지 않는 인생살이다


어느 날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을 때가 되면
그때
한꺼번에 몽땅
버리면 된다
지금 필요 없다고 버리고
나중에 필요할 거라고
쌓아놓고 살았는데
그것 또한 부질없다


필요하면 사고
안 쓰면 버리며
사는 사람도 잘 산다
모으고 쌓아놓는다고
해결책이 아니다
언젠가를 위한 삶은
이제 그만하자


그 언젠가라는 날은
올지 안 올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이 바로
언젠가라고 생각한 날이다
오늘 필요 없으면
필요 없는 것이다


필요해서 사고
나중을 위해서 사고
세일해서 사고
싸서 산 물건이
구석에 처박혀
정작 필요할 때는
어디 있는지 생각도 안 난다


눈앞에 있는 것만 해도
사는데 지장 없다
나중에 쓰려던 물건을
다시 쓴 시간이 없다
세상은 돌고 돌고
날마다 새물건이 나온다


나중이라는 시간은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과 살자
좋아서 만난 사람도
언젠가 헤어지고
갖고 싶어서 산 물건도
쓸모가 없어진다


미련을 버리고 내일을 살자
어제를 잡고 있으면
어제에 묶여서
오늘을 살지 못하고
내일이 오는 길을 막는다


인생이라는
연극무대에서
연기자로 사는 게 삶이다
연습을 하다 보면
삶에 맞는 역을 찾게 된다
어제의 내가 맡은 역은
어제의 시간으로 막을 내렸다


오늘은 오늘의 역이 있다
오늘이 끝나기 전에
오늘의 역을 잘 끝내고
내일을 맞아야 한다
오늘을 끌어안고 살면
내일을 위한 시간을 놓친다


정리를 하지 않아도

어느 날

나의 시간이 다하면

정리를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끝이 오면 해도 된다

시작과 끝은

언제나 만나 동행한다

시작이 끝이고

끝은 다시 시작이 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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