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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깨끗하게 덮는 눈
by
Chong Sook Lee
Feb 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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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소리 없이 눈이 내렸다.
세상이
다시 하얀 옷을 입고 있다.
봄은 오지 않았는데
눈이 없는 세상은
삭막하기 그지없는데
하얀 담요를
곱게 덮은 세상이 참 예쁘다.
뉴스를 통해 여러 곳에서
폭설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눈이 안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눈을 보니 좋다.
눈을 치려면 땀을 흘리겠지만
운동이라 생각하면
힘도
안 든다.
지난번 눈이 왔을 때,
남편을 돕겠다고 나가서
눈을 치다가
허리를 삐끗하여
한동안 불편했는데
조심하며 치면 된다.
동갑내기 남편이
눈을 혼자 치는 것이
미안해서
같이 나갔는데
몸이 알아봤나 보다.
그래도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나가서 남편과 함께 눈을 치면
빨리 끝나고 기분도 좋다.
온 동네가 하얗다.
길 건너 학교 운동장이 보인다.
학교둘레에 있는 나무에
눈이 쌓여있어 운치가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다니던
초등학교라서
유난히 정이 들어
오며 가며 본다.
이제는 손자들이 놀러 오면
가서 놀고
산책하며 걷는 곳이 되었다.
세월은 가고
아이들은 집을 떠났지만
학교 옆을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우리가 학교옆에 집을 사고
아이들은 걸어서
학교를 다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손주들이 그 나이가 되었다.
똑같은 집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니
이사 갈 엄두가 안 난다.
해마다 나무를 전지하고
봄과 가을에 잔디를 관리하고
겨울에는 집 주위에
눈을 치워야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지은 지 50년이 된 집이기에
사람처럼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가는 게 보인다.
35년을 살면서
여기저기 고치고 살아
아직도
새집 같다는 말을 하지만
나이 들어가는 것은
감출 수가 없다.
14년 전에
둘째 아들 결혼식을 앞두고
부엌을 새로 하고
전자제품도 새로 샀는데
이제는 집전체를
손을 봐야 하는 세월이 흘러
엄두가 나지 않아
모르는 체한다.
이제는
가구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고양이 세수 하듯
눈에 보이는 것만
치우고 살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봐달라고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거나 말거나
핸드폰을 보고
넷플릭스를 보며
시간을 까먹고 산다.
어차피 어느 날
우리가 더 이상
집관리가 힘들어지면
몸만 빠져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편하다.
이렇게 눈이 오는 날은
지나간 날들이 생각난다.
눈이 오면 눈썰매를 타고
뒤뜰에
에스키모인들이 사는 것 같은
얼음집을 지으며 놀았다.
눈은
지붕 위에 내려앉으면
지붕의 모습을 하고
차위에 앉으면
자동차 모습을 한다.
장독 위에 앉으면
장독모양이 되고
쓰레기통 위에 앉으면
쓰레기통이 된다.
전쟁의 아픔도
자연재해의 고통도
멈추게 하는
평화의 눈으로
세상의
모든 슬픔과 괴로움을
덮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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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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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ng So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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