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기 불꽃같은... 삶이 이어진다

by Chong Sook Lee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하루사이에 30cm의 눈이 내렸다.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2월 말에 온 눈으로는 참으로 많이 왔다. 눈이 다 녹은 누런 잔디를 보며 이제 봄이 오려나 보다고 한 나의 생각을 들켜버렸다. 나무에 예쁘게 내려앉은 눈이 예쁘다. 전나무 꼭대기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눈이 온다고 동네방네 떠들어 댄다. 봄이 일찍 온다 했더니 다시 겨울이다. 세상이 하얗게 되어 보기는 좋은데 바깥 온도가 영하 20도에 체감온도가 영하 30도라고 한다. 2월 말인데 엄청 추운 온도다.


특별한 일이 없으니 오늘은 꼼짝 말고 벽난로에 장작을 피우며 집에 있어야겠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이곳에서는 이상한 것도 아니다. 3,4월에 때로는 5월에 눈이 오기도 하는 곳이라 놀랄 것도 없다. 5월 마지막 연휴가 지나야 텃밭에 모종을 심을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눈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2월 말에 오는 눈은 고마운 눈이다. 안 그래도 지난겨울에 눈이 안 와서 가물어 걱정이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작년에 산불이 너무 많이 나서 정부 입장에서도 걱정을 한다. 산불계절이 다른 해 보다 1개월이 빨라지고, 물부족 현상도 발생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눈이 왔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원래 이맘때는 들판에 눈이 많아야 하는데 지난겨울 눈이 안 와서 어디를 가나 누런 들판이었는데 정말 잘 오는 눈이다. 오늘도 날씨는 춥지만 눈이 조금씩 온다고 하니 다행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눈이 오면 눈 치울 걱정만 하지만 가물면 농사지을 생각에 걱정이 많다. 이 정도의 눈으로는 가뭄을 해소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번에 온 눈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무 위에 앉아 있는 눈은 햇볕이 쬐면 금방 녹아버리고 바람이 날려버린다. 엊그제만 해도 훈풍이 불어 봄 같았는데 하루사이에 봄과 겨울을 왔다 갔다 한다. 변덕 많은 봄날씨에 무엇을 입을까 고민했는데 다시 겨울 코트로 돌아간다. 무겁고 어두운 옷을 집어넣고 밝고 산뜻한 옷을 내놓으려 했는데 며칠 더 기다려야겠다. 겨울이 춥지 않아 좋은 것 같아도 추워서 활동은 불편해도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실감이 간다.


자연의 이치와 섭리는 감히 인간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이다. 계절 안에 우리가 모르는 진리가 있다. 삶은 계절과 같아 오는 대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 세워둔 차가 눈 속에 파묻혀 있고 나무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지금 온 눈이 다 녹으면 이곳에도 봄이 온다. 양지쪽에 마른땅을 헤집고 나오는 튤립싹이 눈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땅속에서 머물다 나오라고 눈이 오나 보다.


해마다 심술궂은 봄 날씨 때문에 꽃들이 얼어 죽는다. 앵두꽃과 사과꽃이 필 때 폭설과 꽃샘추위로 꽃이 얼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안타깝지만 그것도 자연의 섭리로 생각한다. 인도 사람은 ‘노 프라블럼’이라는 말로 위로하며 산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문제없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큰 문제도 작은 문제도 잘 해결될 것 같다. 사람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많이 있는데 안달한다고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빨리빨리'의 민족성을 가진 한국인은 세계 어디를 가도 빠르게 행동한다. 눈썰미도 좋고 손재주도 좋아 무엇이든지 쉽고 빠르게 배우며 적응하며 산다. 어느 영화를 보는데 무엇이든지 천천히를 반복해서 문제가 많을 듯 하지만 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보았다. 급하면 돌아가라는 말처럼 천천히 하다 보면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 같은데 나 역시 한국인의 민족성을 버리지 못한다. 무엇이든지 후다닥 해놓아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세월 따라 사람이 달라지는지 요즘에는 천천히 하고 내일로 미루며 산다.


사람의 천성은 변하지 않아도 환경에 따라 변하고 노력하면 달라진다. 세상살이 빨리 해도, 천천히 해도, 될 일은 되고 안될 일은 안 되는 것이니 정도껏 하면 된다. 벽난로에서 타는 장작을 본다. 온몸을 태워 온기를 주는 나무의 마지막 모습인 듯 하지만 다 타고나면 재를 남긴다. 재는 또다시 텃밭에 뿌려지며 병충해를 막는다. 세상에 필요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세상에 나온 것은 사용하기에 따라 의미가 부여된다.


남편과 눈을 치고 들어와서 불을 피워놓고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본다. 세상 편하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욕심이 없으면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바라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즐기면 된다. 많다고 자랑하지 말고 아는 것이 많다고 으스대지 말자. 오르면 내려와야 하고, 많으면 넘치는 게 인생이다. 살다 보니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고, 높고 낮음도 없이 모두가 끝이고 시작임을 배운다.


겨울이 가기를 바라고, 봄이 오기를 바라는 것도 인간의 욕심일 뿐 계절은 알아서 오고 간다. 무섭게 타던 장작불이 사그라지며 한줄기 불꽃이 되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최선을 다하며 타는 불꽃같은 삶이 끝없이 이어진다.


(사진:이종숙)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