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ng Sook Lee Apr 04. 2024

백조는 호수에서... 나는 수영장에서 논다



봄이 오는 길은 참으로 험난하다. 지난 이삼일 따해서 이 봄이 오나 했는데 오늘 하늘은 구름이 꽉 차있고 바람이 심하게 분다. 이러다 봄 구경을 하지 못한채 봄이 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오고 가는 게 아니고 언제나 우와 함께 하는지도 모른다. 꽃으로 피어나고, 여름에는 녹음으로 피어나고 가을과 겨울에는 봄을 그리워하고 봄을 기다리며 우리는 항상 마음속에 봄과 함께 한다.


봄은 이미 와서 있는데 눈으로 보이지 않아 기다린다. 바람때문에 앞뜰에 있는 소나무가 바람 따라 춤을  금방이라도 가지가 꺽일것 처럼 휘청거린다. 하루가 시작 되었다.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니 한동안 걷지 못한 숲 속이 궁금하다. 그동안 얼음이 녹고 얼고를 반복하며 산책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다. 숲의 오솔길이 미끄럽고 위험해서 걷기가 힘들다. 조심한다고 해도 여차해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결혼하기 전에 친구들과 등산을 다녔다. 그때만 해도 장비가 별로 없었지만 나름대로 구색을 갖춰 등산을 다덕분에 남한에 있는 유명한 산은 거의 다 가보고 이민을 왔다. 작은 산이 없는 캐나다로 이민 온 뒤로 등산은 가지 못해도 숲을 찾아 산책을 한다. 평평하게 잘 꾸며놓은 산책길이 걷기는 편하고 좋지만 오르내리는 맛이 없어 남편과 나는 일부러 숲 속에 있는 작은 늑대길을 오르내리며 산책을 즐기는데  요즘 같은 날씨에는 예외다.


해마다 이맘때 미끄러워 위험해도 짜릿한 기분이 좋아 막무가내로 겁없이 다녔는데 이젠 힘들. 이제는 행동도 둔해지도 인지능력도 예전같지 않아 하기 어려운 일이나 위험하고 무모한일은 하지 않는다. 누가 시키는 게 아니고 마음이 몸을 말린다. 기분에 죽고 사는 게 아니고 몸이 시키는 대로 한다. 아무리 좋아도 몸이 싫다고 하면 하지 않는다. 늙음은 그렇게 나를 찾아온 것이다. 싫다고 밀쳐낼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다.


 봄이 오는 길이 아무리 험해도 봄은 오고, 가기 싫어도 가 되면 가야 하는 것처럼 몸이 알아서 한다. 길이 미끄럽고 위험하니 실내에서 하는 운동을 가기 위해 체육관에 등록을 하고 일주일에 몇 번씩 다닌다. 아침에 일어나면 갈까 말까 망설이며 게으름을 피우지만 막상 가서 이것저것 운동을 하고 수영 장에서 몇 바퀴 돌다 보면 개운하고 기분이 좋다. 코로나로 지했던 수영이다. 원래 나는 맥주병이었는데 독학으로 수영을 배워 즐긴다. 25미터짜리 수영장을 갈 때는 자유형이나 평을 하고 올 때는 배을 하며 온다.


오랜만에 하는 수영이라서 처음에는 한번 가기도 벅찼는데 지금은 힘들지 않다. 급하게 마음을 먹으면 더 숨이 차고 힘들지만 천천히 쉬엄쉬엄 하면 힘들지 않다. 갈 때는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가기 때문에 숨이 지만 돌아올 때는 수영장 천장을 보며 천천히 온다. 수영장 천장에는 여러 각목과 형광등이 즐비하게 엮어있다. 천장을 보고 어디가 끝인지 손으로 짐작하며 손을 젓는다. 처음에는 수영하느라 바빠서  끝인 줄 모르고 가다 머리를 찧어 놀란적이 있다. 그 뒤부터는 천장에 있는 전등과 각목을 보며 간다. 갈 때는 숨이 차지만 올 때는 편안하팔다리를 움직이면 물에 뜬다.


수영을 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잘 뜨고 쉽게 빨리 갈 수 있는지 연구를 하는 것도 재미있다. 오늘 하지 못한 것을 다음날 다시 연습하며 실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것도 좋다. 앞으로 가고 뒤로 오며 삶도 배운다. 천천히 하며 수영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선수급처럼 후다닥 하는 사람도 있다. 수영장에는 수영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개의 라인으로 나뉘어 있다. 천천히 가는 라인이 있고 중간속도와 빠른 속도로 나누어져 있어 자신의 속도에 맞는 라인에 들어가서 수영을 한다. 자신이 없는 사람은 천천히 하고 자신 있는 사람은 빨리 한다. 어쩌다 중간속도로 가는 자리가 없어 천천히 가는 곳으로 가면 마음도 몸을 따라 느려진다.


빨리 가는 곳으로 가면 같이 하는 사람을 따라 덩달아 빨리 하게 되는데 하다 보면 너무 정신이 없어 힘이 든다. 수영선수도 아니고 운동하며 몸을 풀려고 왔는데 잘하는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만 힘든다. 상살이 어디를 가나 경쟁을 하게 되는데 수영장에서는 편하고 싶다. 나에 맞는 속도로 즐기면서 하면 재미가 있어 계속해서 게 된다. 무엇을 하던 남에게 이기려고 하다 보면 더 잘하게 되지만 천천히 하며 즐기는 것도 나름 괜찮다. 자신을 아는 것은 쉬운 것 같지만 자신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열심히 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또 다르다. 남을 이기고 잘하기 위해 희생과 헌신이 따른다.


아이들이 어릴 때 열심히 공부를 해서 남보다 뛰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이다. 자라면서 부모님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자라서 인지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별로 하지 않았다. 시험 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 적당히 해라. 코피 나지 않게 천천히 적당히 해”라고 했다. 아이들은 그런 말을 하는 엄마가 한심한 듯이 “적당히 하면 안 돼. 누구보다 더 잘해야 취직을 할 수 있어”  라며 오히려 더 열심히 하는 것을 보았다. 내 본심은 열심히 하되 즐기면 하라는 말이 숨겨져 있었는데 오히려 그 말이 자극이 되어 아이들이 다행히 밥벌이를 하고 산다.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있다. 무엇을 하든지 즐기면서 하면 고통도 줄고 외로움도 멀리 간다. 처음에 수영을 배우기 위해 물도 먹 얕은 물에서 빠져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여유를 가지고 물에서 즐겁게 논다. 백조가 호수에서 우아하게 놀듯이 나는 수영장에서 우아하게 수영을 하며 인생도 배운다.


(사진:이종숙)
작가의 이전글 희미하게... 빛나는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