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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n 26. 2024

멀리 가지 않아도 좋은 여행



아무런 일없이 오고 가는 하루가 고맙다. 때로는 지루하고 심심하다고 느끼지만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보다 좋다. 평범하 평화로운 날이 계속되면 평범함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편안하고 안일한 지금이 좋다. 퇴직 전에 여행을 간절하게 원하던 때가 있었다. 바쁘고 시간이 없는 와중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 하루 여행을 하였다. 일요일 아침 일찍 출근하듯이 일어나 무작정 제스퍼로 가던 때가 생각난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떠나서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시 눈을 붙이고 쉬었다 간다.


비가 오거나 날이 좋거나 아침에 일어나서 가자 하면 떠나던 시절이다. 가면서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창밖 구경도 하며 간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관계없이 무조건 간다. 마치  마지막 날이라도 된 것처럼 앞뒤 생각 없이 가던 시절이다. 제스퍼 근처에 있는  온천은 고작 서너 시간 걸리는 곳이라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다. 온천에 가서 놀다 오려면 수영과 수건만 있으면 된다. 물론 대여할 수도 있지만 준비하고 간다.  


제스퍼에는 여러 산짐승들이 길 나와서 걷는다. 차가 천천히 갈 때는 어딘가 근처에 산짐승들이 산책을 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곰을 보았다고 자랑을 하는데 우리는 그때까지 못 봐서 혹시나 하며 창밖을 보며 가는데 앞에서 차 몇 대가 가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기다리는데 멀리서 검은 물체가 가까이 오고 있었다. 앞에 있는 차를 제치고 우리 차 앞에서 새끼 곰 두 마리가 재롱을 떤다. 어찌나 귀여운지 나가서 안아주고 싶을 정도다. 옆을 보니 엄마 곰이 숲 속에서 새끼 곰들을 기다리고 있다.


가슴이 마구 뛴다.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곰을 이렇게 만나다니 믿기지 않았다. 급하게 바로 앞에서 노는 곰 사진을 여러 장 찍으며 구경을 했다. 곰들은 여전히 숲에서 놀고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장난을 치며 놀던 곰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사람들이 떠나고 온천에 도착했는데 곰을 본 흥분이 가라앉지 않다. 온천을 할 때도, 점심을 먹을 때도, 앞에서 놀던 곰이 눈에 선하여 믿기지 않았던 생각이 난다.


그날 그렇게 우연히 곰을 본 몇 년 뒤에 노인회에서 제스퍼 여행을 가서 온천 앞 케빈에서 자고 잠이 일찍 깨어 나와서 있는데 곰이 어슬렁거리며 동네를 걸어가는 게 보였다. 곰이 관광객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신경도 쓰지 않고 동네를 지나쳐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곰이 사람들 사는 동네로 내려와 사람들을 해치는 경우가 많지만 다행히 아무런 일이 없이 지나다. 지난날들은 오늘처럼 생각지 않게 불쑥불쑥 찾아와서 추억을 들추게 한다.


이제는 특별한 날을 기다려 여행을 갈 필요가 없는 세월이 흘러서 아무 때나 마음만 있으면 갈 수 있는데 이제는 여행이 특별하지 않다. 오고 가는 번거로움도 싫고 집을 떠나 불편한 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 가까운 곳에 잠깐 들러서 구경할 것이 있으면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와 쉬는 게 좋다. 세상은 어디를 가도 비슷비슷하다. 사람들과 차와 산과 바다가 있고 새로운 것도 많지만 그리 흥미롭지 않다. 가보지 못한 곳도 많지만 굳이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게 지금의 심정이다.


그동안 틈틈이 여행이라고 여기저기 가 보았지만 집이 최고로 좋다. 멀리 가서 만나야 할 사람도 별로 없고, 가야 할 곳도 별로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보고 동네 한 바퀴 돌던지 가까운 체육관에서 운동하며 수영하는 재미도 좋다. 어딘가에 매이지 않고 가고 싶으면 가고, 하고 싶으면 뭐라도 하면 된다. 성지관광도 좋고, 단풍 구경도 좋은데 멀리 가지 않아도 좋은 것은 근처에도 얼마든지 있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이 하 싶다면 가까운 성당에 가서 하면 된다. 꽃이 보고 싶으면 동네에 있는 숲에 가면 온갖 꽃들을 만날 수도 있다.


어딘가에 멀리 가서 새로운 것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나무가 많은 우리 집은 사시사철 새들이 날아와 놀다 간다. 까치가 담 위에 앉아 집을 지키고 찾아오는 새들을 맞고 보낸다. 로빈과 블루 제이 가 날아오고 참새가 모여 회의를 한다. 뒤뜰에 앉아 있으면  새들의 노랫소리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방불케 한다. 하늘에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어딘가로 가는 비행기가 보인다. 여러 가지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그 어느 여행지보다 평화롭다.


어디를 가기 위해 짐을 싸지 않아도 , 집에 오기 위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먹고 자고 놀다가 심심하면 가까운 곳에 가면 어느 관광 못지않다. 여름이 지만 건조한 날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여행 오는 이곳이다. 특히나 기 변화로 인한 사고 사건이 많은 요즘에는 집에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평상에 앉아 파란 하늘을 보고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를 보는 것도 좋다.


해마다 지 않아도 피어나는 여러해살이 꽃들을 보면 어딘가 멀리 여행을 가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한다. 여행은 몸으로 하기도 하지만 마음으로 하는 여행도 좋은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몇 년 전에 어디선가 날아와 자리를 잡은 금잔화가 노랗 피어난다. 작약과 해당화도 덩달아 피어나고 예쁜 데이지도 환하게 정원을 밝히며 핀다. 멀리 가서 멋있는 곳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뒤뜰에 앉아서 어여쁘게 피는 꽃구경하는 것도 좋다. 어느 누구에게는 이곳도 멋진 곳이고 오고 싶은 곳이니 여행 왔다 생각하니 더 좋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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