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계속되더니 계곡의 물이 말라 바닥에 있는 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크고 작은 돌들이 더러는 마르고 더러는 이끼가 끼어 있다. 비가 한번 오면 좋으련만 오지 않는다. 가물어도 계곡의 물을 빨아먹고 사는 나무들은 여전히 푸르게 녹음이 우거져 있어 다행이다. 바람이 분다. 바람 따라 연기도 온다. 연일 뉴스는 산불뉴스다. 500여 개가 넘는 산불이 나고 150여 개는 불길을 잡지 못한 채 무섭게 번지고 있다는 뉴스다. 해마다 나는 산불이지만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록키 산맥에 있는 재스퍼 타운에 난 산불로 인해 긴급 대피령으로 사람들이 대피하는 긴 행렬이 며칠째 이어진다. 2만 명이 넘는 지역 주민들과 수많은 관광객들이 중요한 물건 몇 가지만 가지고 집을 떠나는 모습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아 안타깝다. 재스퍼에 사는 친구에게 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으로 와도 된다는 연락을 했는데 10시간을 넘게 돌고 돌아서 캘거리에 사는 딸네 집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정말 다행이다. 얼마나 가슴이 탔을까 감히 짐작이 안 간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을 겪지만 자연재해로 인해 집을 떠나 대피해야 하는 일이 생길 거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하고 산다. 불난리, 물난리로 세상이 어수선하다. 폭염이 계속되고 전기와 물이 부족하게 되면 세상은 그야말로 마비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계곡에 물마저 말라가는 것을 보니 세상살이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예전부터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는 있었지만 세월 따라 강도가 점점 심해진다. 해마다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로 사람이 얼어 죽고 여름에는 폭염과 가뭄으로 산불이 나고 인명피해가 난다. 문명이 발달하여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난다. 너무 뜨거워서인지 올여름은 모기가 별로 없다. 지난번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는 모기들이 극성을 떨어서 한동안 숲을 찾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찾은 숲에 모기가 별로 없다. 숲 속의 오솔길이 여름 내내 자란 잡풀로 오솔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걷는 사람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더우니까 수영장으로 가고 쇼핑몰로 가는 것 같다.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하고 수영을 하면 좋지만 자연 속을 걷는 것과는 다르다. 나무들이 매일 다른 모습으로 반겨주고 열매가 빨갛게 익어간다. 며칠 못 온 사이에 가을이 기웃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더워 더워하며 여름은 가고, 추워 추워하며 봄은 오는 것이 계절의 순환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하는 숲이지만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인다. 어린 나무들이 몰라보게 자라고 철 따라 피는 산나물도 씨를 맺고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언제 아이들이 클까 싶었는데 어느새 마흔 중반의 나이가 된 것을 보면 세월의 빠름을 실감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기가 숨이 차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세상은 상상외로 편해지고 있지만 인간이 필요 없는 세상으로 변해가는 게 서글프기도 하다. 어디를 가도 기계와 소통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이다.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핸드폰은 없으면 안 되는 필수용품이 되었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도 조용한 세상이다.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며 서로의 대화는 거의 없다. 마치 숲 속에 사는 식물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인간들도 인공지능과 어우러져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제는 세계가 하나가 되어 앉은자리에서 실시간 뉴스가 빠르게 전해진다. 그야말로 십 년이면 강산이 열 번도 더 바뀐다는 말이 맞는다. 지난 주만 해도 30도가 넘는 폭염으로 시원한 곳을 찾아다녔는데 오늘은 바람이 불어서 인지 그리 덥지 않다. 내일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는데 이곳보다 산불로 대피령이 내린 재스퍼에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몇 년 전에 슬래브 레이크 타운에 산불이 무섭게 번지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마침 바람이 심하게 불어와서 바람 따라 불똥이 옮겨 붙어 동네하나를 완전히 태웠던 기억이 새롭다. 연기가 안개처럼 뿌옇게 숲을 덮기 시작하여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비가 올는지 유난히 후덥지근하다. 한줄기 소나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