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소중한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부모형제 친구 사상 종교 정말 참으로 많지만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영원하지 않다. 어릴 때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나뭇가지나 작은 돌멩이조차도 신기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지나가다 무어라도 눈에 보이면 들고 들어와서 신주모시듯 한다. 하지만 소중한 것들은 나이에 따라 달라지고 변하여 나중에는 소중함을 잊고 살다가 결국에는 그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성장하여 부모 형제 곁을 떠나고 살아가면서 나름대로의 삶을 살며 소중함도 달라진다.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것들이 시시해 보이고 하물며 모든 것들이 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물건이 많이 있으면 좋아서 보는 대로 가지고 싶은 것들을 생각 없이 사다 놓고 뿌듯해서 잠을 설치며 좋아하던 시절이 지나고, 짐을 하나둘 치운다. 좋고 소중한 물건들이지만 보내야 할 시간이다. 무겁고 튼튼하고 견고한 것들보다 가볍고 산뜻한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오래되고 낡은 물건들은 보기만 해도 암울하다. 시대에 따라 유행하고 인기 있는 물건은 유행이 끝나면 가치가 떨어진다. 100년, 200 년 된 골동품이 아닌 이상 어지간한 물건은 쓰레기나 다름없다.
처음 이민 왔을 때는 집안에 가구가 하나도 없어서 남들이 쓰던 식탁을 얻어 쓰다가 자리를 잡고 새로운 물건을 하나하나 모아들인 것들이 이제는 거추장스럽다. 물건을 사기는 쉽지만 버리는 것은 어렵다. 앞으로 남은 세월을 생각하면 그리 많은 가구나 그릇은 필요 없다. 그것뿐이 아니다. 옷도 신발도 필요 이상으로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집안을 둘러보면 입지 않고 쓰지 않는 물건이 여기저기 버티고 있다. 아이들이 와서 불편 없이 있다 가게 하기 위해 지금껏 가지고 있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괜찮다.
가구 없는 텅 빈 집이 이상했는데 오히려 단순하게 사는 게 깨끗해 보여 좋다. 채우기 위해 살았지만 지금부터 비우기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 한때는 부의 상징이던 피아노가 거추장스러운 물건이 되어 거저 준다고 해도 가져가지 않는 물건이 되었다. 값비싼 물건을 보여주며 자랑하던 시대가 변하여 아무것도 없는 집안을 자랑하는 시대가 되었다. 욕심껏 장만하며 많은 것이 좋은 줄 알았는데 지금은 미니멀리스트가 자랑거리다. 사실 가구 안에 들어가는 물건은 자주 사용하지 않아 없어도 되는 물건들인데 보여주기 위하여 비싼 돈을 주고 산다.
가구 옷 그릇 신발 등 세상에 만들어져 나오는 물건들은 유행이 있고 유통기한이 있다. 칠이 벗겨지고 색이 바래고 실밥이 풀리면 사용기한이 다 된 것이다. 아무리 아끼고 곱게 써도 오래된 물건은 표시가 난다. 광택이 없어지고 현대식 물건과 맞지 않아 구석에 놓게 된다. 어디에 있어도 빛이 나는 젊은이들 같은 새로운 물건들은 어디에 놓아도 어울리고 옆에 있으면 기운이 난다. 어두운 물건과 있으면 괜히 기분이 가라앉고, 산뜻한 장소는 들뜨는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쓸데없는 물건으로 가득 찬 집에 가보면 부러운 게 아니라 정신이 없어서 바로 나오고 싶다.
지나침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말처럼 너무 많으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정리를 하기 위해 서랍장을 사고 간편한 삶을 위한 여러 가지 소품들이 많이 나온다. 색도 곱고 산뜻해서 사다 놓으면 얼마 쓰지 않고 버려지는 물건이다. 결국 쓰레기를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무언가 괜찮은 것 같으면 몇 개씩 사다 놓고는 놔두다가 버려지는 물건이 한두 개가 아니다. 깨끗한 자연을 위한 운동을 많이 하는 시대에 물건을 사지 않는 것도 애국하는 것이다.
남편과 둘이 사는 집에 소파가 2세트, 식탁과 의자도 2세트 가 있다. 방마다 침대와 서랍장이 있어 누가 와서 머물러도 불편 없이 정리해 놓고 산다. 아이들이 와서 편하게 있다 가라고 한 것인데 아이들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니 정리를 해야 한다. 아이들이 오면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되고, 침대가 없으면 바닥에 담요를 깔고 자면 된다. 아이들이 나가고 없는 집안에 살림살이는 그대로 있는데 기운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하나둘 없애야 한다. 가진 것이 많은 것은 좋은 것이지만 다 가지고 영원히 살 수 없다.
얼마 전에 갑자기 두 부부가 아파서 요양원에 가야 하는데 집안 정리를 할 수 없어 애를 먹은 이야기를 듣고 기운 있고 정신 있을 때 버릴 것 버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소중하고 아깝지만 버려야 하는 것들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눈 소식이었다. 기본적인 것 외에는 욕심인데 이제라도 더 이상 사지 않는 것도 지구를 살리는 하나의 방법이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들이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아도 내용은 알 수 없다. 오래된 물건들은 나름대로의 수명이 다 된 것인 줄 모르고 산다.
가지고 있을수록 집안은 복잡하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미련이 덜 생긴다. 하나둘씩 버리면 산뜻한 공간을 선물로 받는다. 있어서 좋은 물건보다 없어도 괜찮은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공간과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무성하게 자라던 나무들이 어느새 성장을 멈추고 마무리를 하는 모습이 보여 없어도 되는 물건을 상자에 담아 본다. 태어나면 죽고, 만나면 헤어지고, 모으고 버리고 하며 사는 게 인생살이다. 헐렁한 옷장을 보니 마음도 여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