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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y 15. 2020

자연은... 서로가 서로를 지킨다



백양나무가 연두빛으로 옷을 입었다.(그림:이종숙)


바람이 차다. 그래도 숲은 견딜만하여 열심히 걸어간다. 누가 쫓아오지도 않는데 그냥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나무들은 어느새 파랗다. 며칠 전의 모습하고 다르게 잎이 커져 제법 숲을 이룬다. 여전히 사람들은 별로 없다. 날씨가 추워서 집에 있나 보다. 아침산책은 그날의 날씨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추운 날에는 가까운 곳으로 가게 되고 날씨가 좋으면 멀리 가고 싶다. 오늘은 날씨도 춥기도 하지만 아침부터 불어대는 바람이 눈이라도 올 듯이 차서 망설이다 가까운 곳으로 나왔다. 그렇게 넘치 도록 흐르던 계곡물이 어느새 많이 줄었고 물살도 잦아들어 조용하다. 절벽이 허물어져 흙이 내려와 계곡물이 흙탕물이다. 다리 위에서 흐르는 물을 쳐다보니 눈샇여 얼어있던 겨울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렇게 봄이 오니 겨울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언제나 금의 모습으로 있었던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숲이 깊어져 어느 날인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반길 것이다. 자주 온 곳이라 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눈감고도 갈 수 있을 것처럼 길이 눈에 익다. 다음에 무엇이 나올 것도 알아 심심하지 않다.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젊음이 떠오른다. 파랗게 돋아나는 나뭇잎을 보며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 본다. 며칠 전 남편과 사진 정리를 하다 보니 남편과 신혼여행 가서 찍은 사진이 보여서 새삼스레 젊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 보았다. 사진을 보니 정말 애들이 결혼을 했었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그때는 다 큰 어른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그 사진을 보니 정말 새파란 애들이다.

하기야 큰 아들이 40살이 되었으니 엄청난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하루하루가 더해져 오늘이 되었다. 늙는다는 것을 상상도 안 했는데 어느새 나도 노인이 되어 있다. 지나가며 만나는 노인을 보면 전혀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노인들의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아름답게 점잖게 늙어가고 싶어 흐트러진 옷깃을 다시 고치기도 한다. 나이 들수록 초라해 보이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식사 때나 걸음걸이도 항상 신경을 쓰게 된다. 앞에 노인들이 산책을 한다. 추운 날씨 때문에 모자를 쓰고 웅크리고 걸어간다. 전염병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니 심심하여 나왔나 보다.


나무들이 사이좋게 숲 속에서 산다.(사진:이종숙)



천천히 걸어간다. 그들의 굽은 허리가 숲 속의 나무를 닮았다. 오랜 세월 힘들게 살아온 흔적이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식구들조차 못 만나고 살아가니 얼마나 쓸쓸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해진다. 인간은 이토록 외롭고 슬픈 존재인데 세상에 태어나 죽는 날까지 고독을 견디며 살아야 함을 실감한다.  짝이 있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늘이 준 특별한 은총이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살아가기 바쁘고 부모들 늙어가는 것은 남의 일처럼 무관심하다. 나 역시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요즘 들어 조금씩 철없던 시절이 생각난다. 효도를 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 부모님이라더니 그게 정말로 맞는 말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어느새 노부부는 다른 길을 향해 가고 있다.

계곡물이 서서히 내려오고 어디선가 오리 하나가 꽉꽉 대며 날아오더니 계곡물에서 헤엄을 친다. 아마도 짝을 찾아서 왔나 보다. 하늘은 조금씩 더 어두워지고 구름이 하늘을 까맣게 덮었다. 절벽 꼭대기에  집 한 채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있는데 괜히 내가 걱정이 된다. 해마다 조금씩 깎아져 내리는 지반 때문에 10여 년 전에 집 몇 채가 강으로 떨어졌던 일이 있다. 물론 아무런 인명피해는 없었고 보험처리로 혜택을 다 받았지만 생각할수록 아찔한 사건이었다. 신문과 방송사에서 기자들이 거리로 몰려와서 장사진을 치며 사진을 찍고 동영상이 뉴스에 대서특필되었다. 아직도 그때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 듯하고  그 뒤부터는  절벽 꼭대기에 있는 집을 보면 어쩐지 위태로워 보인다.

날씨가 조금 풀어지니 새들도 다람쥐들도 나와 열심히 나무를 오르내리고 날아다닌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나온 가족이 보인다. 코로나 19가 아니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이들은 학교로, 부모들은 직장으로 바쁠 텐데 함께 산책을 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 전염병으로 인하여 세상이 난리가 났지만 부모 자식 간에 좀처럼 갖기 어려운 기회다. 힘들어하며 아이들을 봐야 하는 젊은 부모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것도 하늘이 준 좋은 기회로 생각하 면 덜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어린 아기들은 엄마가 어디로 사라져 버리기라도 할까 봐 불안해하는데 함께 있으니 아이들 정신학상 참으로 좋을 것이다. 그동안 서로가 바빠 주지 못했던 사랑을 주고받으면 앞으로 살면서 많은 위로를 받으리라 믿는다.

이제 나는 조금씩 지금의 이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사람들도 나름대로 적응하며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전염병이 없어지고 사회가 안정이 된다 하여도 사람들이 지금처럼 지킬 것을  지키며 살아가면 살인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날 것 같은데 사람의 일이란 모를 일이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린다는 것이 힘들지만 먼 훗날을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재확산의 위험으로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지금까지 노력했던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기 전에 조금만 참으면 된다. 숲 속에도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나무가 많으면 작은 나무들은 생존하지 못한다. 굵고 큰 나무들이 빨아먹어야 할 물을 먹고 나면 작은 나무들은 먹을 물이 없어 자연히 도태되어 없어진다.

작은 풀조차 살아남지 못한다.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삶은 언젠가 또 다른 위협적인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게 된다. 숲 속의 질서를 본다.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어도 숲은 자연의 질서를 따른다. 나이가 많으면 스스로 떠나가고 새로운 것들은 살 곳을 찾아 살아간다. 인간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법을 만들지만 법으로 지키지 못하기에 인공지능을 이용한다. 곳곳에 있는 카메라로 사회는 질서가 잡혀간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하느님은 보고 있듯이  이제 카메라는 하느님의 일을 대신해 주는 인공지능이 된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숲 속에는 카메라가 없기를 바란다.


자연은 서로가 서로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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