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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깃드는... 사람들과의 만남

by Chong Sook Lee


어제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오늘은 날씨가 맑게 개었다. 파란 하늘을 보니 어딘가 떠나고 싶어 진다. 며칠 전, 교외에 사는 친구가 사고로 갈비뼈 하나가 금이 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갑자기 남편 눈에 이상이 생겨 응급치료를 하느라 바빠서 가보지 못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늦었지만 오늘은 가서 얼굴이라도 봐야겠다. 친정엄마는 돌아가셔서 안 계시지만 친정엄마처럼 챙겨주는 그 친구가 있어 너무 좋다.


우리 집에 올때는 친정집에 오는 것처럼 이것저것 챙겨서 가져다주고 우리가 놀러 가면 친정엄마처럼 아까워하지 않고 골고루 싸 주는 친구다. 2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는 마음으로 오고 가며 서로가 잘되기를 기원하며 살아간다. 환경에 따라, 기분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고 갈등이 생기며 사이가 멀어질 수 있는데 언제 보아도 좋은 그들이 있음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아침밥을 먹고 대충 정리를 하고 1시간 거리에 있는 친구네 집으로 향한다.


하늘이 푸르고 높고 군데군데 뭉게구름이 모였다 흩어진다. 햇살은 눈부시고 찬란하다. 앞이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눈이 시원하다. 어느새 8월도 끝나가고, 누렇게 익은 밀과 유채가 들판에서 춤을 춘다. 옥수수도 여물어 바람에 흔들리고, 추수를 끝낸 곳도 보인다. 이곳저곳 가을비가 많이 내려서 농부들 걱정을 했는데 아직 큰 피해는 없나 보다. 군데군데에 있는 호수에는 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헤엄을 치고, 부지런한 기러기는 남쪽 나라로 가느라 바쁘다.


여름이 짧은 이곳에 여름을 가기 위해 수십 만리를 날아서 온 게 엊그제 같은데 가을이 깊어가기 전에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무언가 허전하다. 길가 옆에 있는 숲에 서있는 나무들이 하나 둘 물들어가고, 예쁘게 피었던 꽃들은 씨를 물고 서 있다. 세월은 말없이 흘러가고 새로운 날들이 우리를 찾아온다. 옆에서 커다란 트럭들이 쌩쌩 달리고, 남편과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간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지 여전히 할 말이 많다. 주위 사람들 이야기,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친구네 집이 보인다.


우리가 온 것을 알고 반가운 마음에 그야말로 버선발로 뛰어나와 언제나 반겨주는 마음이 너무 고맙다. 집 주위에 있는 화단을 둘러본다. 참으로 많은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 난다. 접시꽃, 금잔화, 메리골드, 코스모스, 이름 모르는 노란색꽃과 양귀비꽃도 보인다. 해마다 피고 지는 여러 해 살이 꽃들이 집둘레를 환하게 밝혀서 너무 예쁘다. 마침 깻잎과 부추 빈대떡을 부쳤다며 한 접시 푸짐하게 내어놓아 맛있게 먹는다. 한낱 풀에 불과한 채소들이 사람 손을 거쳐 맛있는 음식으로 태어난다.


부침개를 먹고 이야기를 하다가 집 주위를 둘러본다. 온상이 있던 자리에 엄청난 호박밭에서 호박이 자라고 있다. 자그마한 단호박을 얇게 썰어서 부쳐먹으면 좋다고 몇 개 따고 텃밭으로 간다. 텃밭에 참으로 많은 야채들이 자란다. 호박 오이 고추 아욱 근대 양파를 비롯하여 토마토 열무, 파와 마늘이 풍년이다. 잡풀하나 없이 깨끗한 텃밭에서 자란 야채를 한 아름 따 가지고 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다. 정성 들여 키운 작물인데 가져가기 미안하지만 고맙게 받아왔다. 가을 하늘처럼 풍요로운 마음을 받아 오는 길은 행복이 넘친다.


들판에는 소와 말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여러 물건을 옮기는 화물 기차가 간다. 길가에는 노란 꽃들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다시 보자고 손을 흔든다. 어느새 시내로 접어들고 자동차들이 북적댄다. 오랜만에 나간 교외 나들이로 기분이 좋다. 다행히 친구가 많이 회복이 되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니 너무 좋다.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해 본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친구도 보고, 드라이브도 하고 귀한 텃밭 야채 선물도 받은 행운의 날이다. 그야말로 님도 보고, 뽕도 딴 날이다.


가져온 야채를 다듬어 맛있는 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상추와 쑥갓과 깻잎은 쌈을 싸 먹고, 호박은 송송 썰어 새우젓을 넣고 찌개를 끓여 먹으면 맛있을 것이다. 조그마한 단호박을 얇게 썰어서 부쳐먹고, 열무는 풀국을 쑤어 시원하게 물김치를 담글 생각으로 손이 바쁘다. 세월이 흘러도 옛날에 엄마가 해주던 맛을 잊지 못해 엄마식으로 만들어서 열무 물김치에 국수를 말아먹고 싶다.


삶은 이렇게 생각지 않은 나날을 만들며 사는 재미가 있다. 내일은 무엇을 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일은 내일이 알아서 할 테니까 말이다. 내게 온 오늘에게 감사하며 새로운 내일을 맞자. 같이 있어 행복하고, 함께해서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희망을 가져다준다. 기쁨의 하루가 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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