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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Nov 01. 2024

10월이 가고... 가을도 간다



하늘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하늘이 서운한가 보다. 지붕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 녹지 않고 잔디도 얼어서 걸으면 서걱서걱 거린다. 아름답던 가을이 10월과 함께 가는 소리가 들린다. 유난히 길었던 올 가을이다. 때가 되어 떠나는 10월이 가면 추위와 함께 겨울도 온다. 여기저기 쌓여있는 낙엽 위에도 서리가 내려 낙엽이 추워 보이고 더욱 쓸쓸해 보인다. 10월이 온다고, 아름다운 가을이라고 좋아하던 시간들이 우리를 남겨두고 간다. 미련 없이 떨어진 나뭇잎은 후회 없이 살다 간 날들을 기억하며 간다.


살면서 후회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지만 잘 살아 사람만이 후회도 하는 것이다. 후회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후회도 하고, 미련도 가지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때때로 한국이 변한 모습을 보며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어떤 모습으로 살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선진국이던 이곳은 별로 발전한 것이 없어 보이는데 지난 40여 년동안 한국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고국에 갈 때마다 너무 달라진 모습에 이방인이 된 나 자신을 보고 온다. 조용하고 차분한 이곳에 살다 보니 성격도 변한 것 같다. 급한 것도 없고, 빨리빨리 가  필요 없는 이곳 생활은 성질 급한 사람은 불편하다.


음에는 모든 것이 너무 느려서 답답했는데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며 산다. 아무리 급해도 시스템이 느린 이곳에서 안달하면 나만 손해다. 이곳에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라는 속담이 있다. 이슬비에 옷 젖는다고 오래 살다 보니 나도 덩달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하는 게 습관이 들어간다. 두리뭉실하며 대충 넘어가지 않고 정확하고 확실하게 하면 실수가 적다. 안 그래도 언어가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곳이라서 오해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는 무엇이든지 확실하게 물어보고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여전히 하늘은 어둡다. 당장이라도 눈이 올 것 같은 날씨다. 오늘 이곳은 핼러윈데이인데 날씨가 추우면 아이들이 다니기 힘드는데 해마다 헬로인데이는 눈이 오거나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며 날씨가 안 좋다. 오늘도 역시나 그런 추운 날이 될 것 같다. 손주들도 각자 좋아하는 옷을 입고 학교에 가서 핼러윈 파티를 하고 방과 후에는 동네를 돌며 초콜릿이나 캔디를 얻 나갈 것이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날이다 보니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 무척 흥미로워한다. 캘거리에 사는 큰아들은 쇼핑센터애 가서 손주들이 원하는 코스튬을 사주, 우리와 가까이 사는 둘째는 손주들이 좋아하는 옷을 해마다 직접 만들어 준다.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이 많다 보니 주문하는 것도 여러 가지이다. 복잡하거나 간단하거나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는 게 쉽지 않은데 올해도 만들어 입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만들어 입히는 것을 보면 아이들이 어릴 적에 나름대로 흉내를 내어 입히고 치장을 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던 것이 생각난다. 요즘처럼 시대가 발달하지 않아서 뭐라도 엄마가 만들어 주면 잘 입고 다녔는데 요즘 애들은 유명한 캐릭터를 원해서 만기도 쉽지 않다. 애들이나 어른이나 핼러윈 데이  파티를 하지만 아이들이 하는 것이 귀엽고 예쁘다.

구름이 끼고 춥지만 눈이나 비만 안 와도 다행이다. 원래 즐겁게 던 것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우리들이 어릴 적에는 핼로윈데이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놀이가 많았다. 줄넘기, 땅따먹기, 공기놀이를 비롯하여 제기차기, 구슬 따먹기, 딱지치기와 자치기 같은 남자아이들 놀이도 수가 모자라면 같이 하며 해 지는 줄 모르고, 배고픈 줄도 모르고 던 날들이 생각난다.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를 만는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어릴 적 재미있게 놀던 추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가을이. 가고 봄이 오고 를 수없이 반복하는 세월이 가도 그 시절 그때의 웃음소리는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지난여름에 아이들이 줄넘기를 하길래 세월이 간 줄 잊고 한번 뛰었다가 무릎이 아파서 그만두었다. 마음은 어릴 적 그대로인데 몸은 아닌가 보다. 절대로 늙지 않을 줄 알았는데 몸이 앞서가고 있다. 내 대신 아이들이 하고, 아이들 대신 손주들이 하며 세월이 간다. 10월이 가면 11월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것과 같다. 싫어도 좋아도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다고 자연을 이길 수 없다. 봄이 언제나 오나 기다렸는데 또 다른 봄을 향해 가고 있다. 개나리 라일락 이 피고 지고, 장미와 금잔화도 서리를 이기지 못하고 얼어버려 고개 숙인다. 새 봄을 맞기 위해서는 가야 하고 떠나야 한다.  


나뭇잎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며 뱅글뱅글 돌며 땅바닥에 곤두박질친다. 하나둘씩, 더러는 대 여섯 이파리가 맥없이 떨어져 뒹군다. 가야 하기에 가고, 와야 하기에 오는 것 자연이다. 요즘에는 시대가 좋아 온실에서 겨울 없이 자라는 과일도 있고 꽃도 있지만 겨울을 견뎌낸 것들과는 다르다. 10월이 온다고 좋아했는데 10월이 가도 괜찮다며 마음을 위로한다. 10월의 마지막날은 핼러윈 데이이고, 내일부터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오기 시작하 성탄을 위한 세상이 된다. 하루를 위해 몇 달을 준비하며 사는 게 인생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언제 그런 날이 있었냐는 듯 사람들은 또 다른 볼거리를 찾아낸다. 세상은 쉬지 않고 돌고 돌고, 세상 따라 사람들도 돌고 돈다. 핼러윈 데이가 가을을 데리고 간다.


 

(아마지출처: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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