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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Nov 24. 2024

소리없이 내리는 눈에... 인생이 보인다


세상이 하얗다. 밤새 내린 눈으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와 전나무에 소복이 쌓인 눈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세상을 덮는 동안 나는 꿈나라를 여행하느라 바빴다. 토요일 아침에 특별히 할 일은 없지만 눈이 쌓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바쁘다. 코너집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다른 집 보다 눈 치우는 곳이 많아 이렇게 눈이 오는 날은 여러 번 치워야 한다. 지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 온 지가 어느새 35년이 넘어 눈이 많이 오면 눈 치울 걱정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눈 치워주는 사람을 쓰라고 하지만 아직은 남편과 둘이 하면 그런대로 괜찮다.


44년 전 이곳에 이민 왔을 때가 생각이 난다. 한국에서의 겨울도 춥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곳의 겨울추위는 살인적이었다. 한번 눈이 오면 뒤뜰에 눈산이 만들어지고 아이들은 집을 만들며 놀았다. 눈이 오고 쌓이면 4되어야 눈이 녹기 시작하는 이곳의 겨울이다. 그나마 지난 몇 년 동안은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로 나름대로 견딜 만한 겨울이라 다행이지만 겨울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심술궂은 겨울이 한바탕씩 본때를 보여주고 간다. 지난겨울이 그리 춥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할 즈음 1월 중순에 무서운 한파가 몰려와서 며칠 동안 영하 40 도 이상 내려가 세상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폭설 경보가 내려 눈이 많이 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토록 많이 올 줄 몰랐다. 며칠 전에 다른 주에 40센티미터의 폭설이 내려 거리가 아수라장이 된 것을 뉴스를 통해 알았는데 이곳도 다름없다. 40센티는 아니더라도 25-30센티 정도 올 것이라고 하는데 너무 많이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가물어서 걱정을 하였는데 눈이 와서 다행이다. 겨울에 눈이 없다면 참으로 황량할 텐데 눈이 오니 세상이 아주 포근해 보인다. 이제 스키장은 바빠지고 동네 아이들은 근처에 있는 언덕으로 가서 눈썰매를 타고 오르내리며 신나게 놀 것이다.


땅이 넓은 이곳은 언덕이 높아 내려가는 재미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좋다.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노는 것을 보면 더 늙기 전에 나도 한번 타고 싶다. 여기저기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크고 작은 언덕이 생기면 동네 꼬마들의 새로운 놀이터가 된다. 눈이 하염없이 계속 내린다. 밤새 내리고 하루종일 내리면 눈치는 차들이 길을 점령하고 차들은 밀려서 교통 혼잡을 가져오는 것이 이곳 겨울의 모습이다. 좋건 싫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선다. 겨울이라고 동면을 하는 게 아니고 마음 단단히 먹고 추운 겨울을 살아야 한다.


아무리 추워도 두꺼운 코트와 튼튼한 부츠를 신고 모자와 목도리 그리고 장갑을 끼고 활동을 하면 된다. 영하 10도만 내려가도 수도꼭지가 얼던 어릴 적 한국 추위 생각난다. 내의를 입으면 스타일 구긴다고 얇은 스타킹을 신고 겨울을 버티던 시절이 가고, 보기에 상관없이 따뜻한 게 최고다. 겨울이 춥기로 유명한 이곳은 아무도 와서 살고 싶지 않은 곳이었지만 세월 따라 많이 달라졌다. 특히 이곳의 겨울은 습하지 않고 건조해서 살 속으로 파고드는 추위가 아니다. 아무리 추워도 제대로 된 재킷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그리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루종일 눈을 뿌릴 듯이 온통 회색하늘이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이 지붕을 덮고 뜰을 덮는다. 간 밤에 지나간 선명하던 토끼발자국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앞뜰에 있는 등 굽은 소나무 아래에 움푹 들어간 후미진 곳에 토끼가 잠을 자고 쉬다 가는 곳이 있다. 여름엔 그늘이 져서 시원하고, 겨울에는 바람을 막아주기에 좋아하는 것 같다. 여름에는 진한 회색이었던 토끼털이 눈같이 희어지면 눈에 파묻혀서 잘 보이지 않는다. 추운 겨울에 추위에 떨고 있을 토끼를 생각하면 안 된 생각에 토끼집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야생동물은 나름대로 살궁리를 잘하니 걱정은 안 한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오고 추우면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사는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겨울을 잘 견디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눈이 녹고 푸릇푸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오면 회색의 토끼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 자연은 서로를 돕 의지하는 힘을 가졌기에 동물이 살아남는 것 같다. 인간은 따뜻한 옷을 입고 집안에서 편하게 살면서도 불평불만이 많은데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 자연에 순응하며  받아들이며 살길을 찾는 지혜를 그들에게 배운다.


하늘에 있는 눈을 모두 쏟아낼 양으로 계속 내린다. 이런 날은 벽난로에 장작을 피우며 밤을 구워 먹고 군고구마와 애호박 썰어 넣은 손칼국수도 먹고 싶다. 가만히 앉아서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아침에 눈을 쳤는데 그보다 더 많은 눈이 쌓여있다. 더 많이 쌓이면 치우기 힘드니까 서둘러 나가는 남편을 쫓아 덩달아 같이 나가 눈을 치고 들어오니 기분이 좋다. 혼자 하는 것보다 덜 힘들기도 하지만 둘이 같이 하면 더 재미있다. 사람이 사는 게 별것 아니다. 둘이 시작한 인생은 둘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혼자만 편한 것보다 둘이 거들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다. 같이 내리고, 같이 쌓이고, 같이 녹는  눈을 보며 삶의 지혜를 배우는 아름다운 아침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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