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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y 27. 2020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이 온다



(사진:이종숙)



봄이 되니 숲 속은 정말 초록의 잔치를 한다. 긴 겨울 동안 흰 눈으로 덮여있던 숲 속이 봄옷을 입으니 그야말로 지상천국이다. 새들도 다람쥐도 사랑을 찾기 위해 소리 높여 짝을 부르고 짝을 찾아 이리저리 분주하다. 어느 할머니가 사는 7층 아파트 베란다에 는 빈 화분 안에 '캐나다 구스' 알을 품고 있다가 새끼오리가 부화하 걸어가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다. 할머니는 오리가 알을 품는 동안 여러 가지로 오리를 도와주었단다. 일단은 알을 잘 품게 주위를 정리해 주고 창문으로 매일매일 들여다보며 정성을 다해서 보살펴 주었다. 마침내 오리가 부화되어 세상에 나왔는데 베란다에서 지상으로 가는 길이 막막하여 소방관을 불렀다. 소방관이 크레인으로 오리를 몰아서 간신히 오리가족을 지상으로 데리고 와서 망에 있던 오리를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엄마 아빠 품으로 보내는 모습이 비디오로 촬영되었는데 소방관 아저씨의 조심스럽고 사랑스러운 손길에 보고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에 뉴스를 보던 나와 남편도 박수를 쳐주었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을 매일 조바심 속에 애태우며 지켜보던 할머니는 그동안 정이 들었다며 "가서 잘 살아라". 고 오리 식구가 떠나가는 것을 보며  눈물을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난다. 자식을 낳아 기르고 성장 후 분가를 할 때 세상 모든 부모는 같은 생각을 한다. 태어날 때의 기쁨과 환희로 시작하여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성장 후에 갈길을 찾아 집을 떠나는 자식을 보며 지난 세월을 생각한다. 더 잘해 줄걸 하는 후회부터 가슴에 남는 미련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많다. 해줄지 몰라서 못해 준 것도 있고, 알면서도 아이들이 다른 길로 빠질까 봐 안 해 준 것도 있다. 사는 게 힘들 때 화가 난다고 감정 쓰레기 대용으로 아이들을 대하기도 했고, 귀찮다며 밀쳐 버리기도 했다. 세월이 가면 다 자라는데 빨리빨리 크기를 원했고 어서 빨리 엄마가 필요 없는 어른이 되기를 원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아이들은 커 버렸고 나는 나이가 들었다. 세월이 안 갈 줄 알았는데 무심한 세월은 흘러갔고 아이들은 제갈길을 간다. 바쁘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멀리사는 아이들을 보기도 힘들어졌다. 아이들 나이 때 나 역시 부모님 생각할 겨를 없이 정신없이 살았으니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는 아이들도, 부모도 서로를 기다릴 수 없다. 유행가의 가사가 생각난다. 아이가 태어나고 사랑해줄 시간도 없이 돈을 벌러 떠나간 아빠가 바쁘게 살다가 아이를 돌아봤을 때는 어느새 아이는 이미 열 살이 되었다. 아빠가 선물로 사다준 공으로 아빠하고 놀고 싶은 아이는 아빠에게 같이 놀아주기를 원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또 떠나야 했던 아빠는 "지금은 바빠서 안돼. 나중에 놀자". 하며 떠나갔다.


바쁘게 살아가는 아빠를 보며 아이는 "나는 커서 아빠처럼 될 거야". 하며 "나중에 우리 같이 재미있게 놀아요. 괜찮아요".라고 이야기하며 아빠를 보냈던 아들이 아빠가 정년퇴직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이는  대학생이 되었다. 아빠는 아들과 "대화하고 싶다". 고 이야기했더니 아이는 "지금은 바쁘니까 자동차나 빌려 달라며 나중에 얘기하자". 고 집을 나간다. 아빠가 놀아달라고 하는 아이한테 지금은 바쁘다며 나중에 놀자고 하며 세이 가고, 아이는 성장하고 아빠는 늙어 아이에게 놀자고 한다. 아이는 아빠하고 놀 시간이 없다며 나중에 놀자고 한다. 아빠는 지난날을 생각하며 "그래, 그래, 나중에 놀자". 하며 허탈하게 독백을 하는 노래 속에 내가 있고 우리 모두의 서글픈 인생이 있다. 영어 노래인데 너무나 가슴에 닿은 가사가 간혹 생각난다. 슬프면서도 당연한 우리네 인생 살이 누구나 할 것 없이 공감하는 내용이다.



사과꽃이 활짝 펴서 웃는다.(사진:이종숙)


사느라고 아이들이 원할 때 우리는 그곳에 있어주지 못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할 수 없는 많은 것 들을 내일로 미루고, 오지도 않은 미래로 미루고 산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지금 당장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필요하다. 함께 놀고, 함께 공감하는 순간에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어쩌면 죽기 위하여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물론 부모로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첫째 의무이지만 아이들의 행복은 아주 단순하다. 작은 것에 행복하고 쉽게 용서한다. 누구나 철없이 지나가는 인생인지라 누구를 탓하지는 못한다. 뉴스를 보고 있으니 지난 시간이 떠오르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뒤돌아 보게 된다. 앞만 보고 하루를 살기 위해 살았던 지난날이 있어 오늘을 살고 있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더 많이 안아주지 못함에 왠지 쓸쓸하다.

베란다에서 태어나 엄마 아빠를 따라 강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오리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났다. 큰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아 다른 도시로 가게 다. 이삿짐을 차에다 실어놓고 우리 5 식구는 마루에 서서 손을 잡고 집을 떠나는 큰 아들을 위해 한 마디씩 덕담을 해주는데 목이 메어 나는 큰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가서 건강하게 잘 살라는 첫마디에 울고 말았다. 남편 역시 서운함을 못 견디며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온 식구가 눈물바다가 됐다. 그것이 벌써 17년 전 일이니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헤어짐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 뒤 둘째와 막내가 집을 떠날 때도 며칠을 괴로워했던 기억이 난다. 서운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그동안 정리하지 못한 사진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마음을 가라 앉혔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일시적인 헤어짐인데 후회와 아쉬움과 미련 때문에 안타까웠다. 태어나 성인이 되면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을 알지만 막상 집을 떠나야 함은 실로 서운하다.

그렇게 아이들은 둥지를 떠나 새둥지를 틀고 살아가고 우리는 아이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살게 되었 다. 세월이 가고 아이들이 우리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빨리 크고 안아주고 싶을 때는 이미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한 가지 커다란 기쁨은 귀여운 손주들의 천진난만한 사진을 보는 것이다. 아이들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안아주고 사랑해줘도 모자란 시간에 철이 없어 더 못해준 마음을 전하며 산다. 아이들도 바쁘겠지만 조금씩 한발 뒤로 물러서면 이 소중한 시간을 후회 없는 날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어디든지 편한 곳을 찾아서 알을 품고, 부화할 때까지 보호해주는 안정된 사회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초록이 짙어지는 아름다운 계절에 새 가족이 생긴 오리 가족이 행복해 보인다.  


하늘은 맑고 푸르다. 조금씩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소상공인들이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했다. 아직은 여러 가지 규제로 많이 힘들지만 나름대로 준비하고 계획하며 서서히 적응해 간다. 아직도 많은 희생자가 생기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고생하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땅에도 하루빨리 전염병이 종식되기를 바란다. 세계가 모두 잘 사는 행복한 세상이 될 수는 없겠지만 새 식구를 데리고 평화로이 걸어가는 오리를 보니 희망이 생긴다. 세상은 점점 더 좋아져 인간이 살기 좋아지고 있다. 초록이 세상을 덮고 평화는 우리를 감싸 안는다. 누가 뭐래도 아름다운 세상이 온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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