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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y 26. 2020

딸처럼, 친정엄마처럼... 사랑하며 의지하며



(사진:이종숙)






맛있는 김치 배달이요…
아침에 나보다 17살 어린 친정엄마가 김치를 담아서 보내왔다.




한국인의 밥상에 김치가 없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태어나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김치를 조금씩 먹으며 성장한다. 다른 반찬 없이 김치 한 가지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을 먹었던 시절도 있었다. 김치가 시어지면 돼지고기나 멸치를 넣고 김치찌개를 해 먹는다. 김치찌개는 많은 사람들한테 밥도둑이라는 누명을 쓰며 사랑받는다. 이곳에 온 지 40년이 되어 한국 음식이 잊힐 만도 한데 살면 살수록 한국음식을 더 좋아한다. 김치거리가 한국보다 많이 빈약한 이곳은 김치가 소중한 보물이다. 배추가 비싸고 고춧가루를 비롯한 여러 가지 양념도 비싸니 김치를 담아서 남을 주기는 정말 어렵다. 주는 사람도 선뜻 주기도 힘들고, 받아먹는 사람도 힘들게 만든 비싼 김치를 덥석 받아먹기가 미안하다.

식당을  오래 하다 보니 시간도 없거니와 김치를 그것도 포기김치를 담그는 것은 게으른 나로서는 힘든 일이었다. 그저 김치가 떨어지면 간신히 배추 한 포기씩 사다가 막김치를 담아 먹곤 했다. 담으면 맛있게 담지만 식당에 있을 때는 손님 음식 해주느라 바쁘고 집에 오면 아이들 음식 해주기 바빴다. 아이들은 양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김치를 그리 많이 지 않아 남편과 나만 해결하면 되었기에 김장도 안 하고 몇십 년을 살았다. 그러나 김치는 없어서는 안 되기에 어쩌다 한번 담그면 조금씩 아껴먹으며 살아왔다. 파가 비싸면 파도 안 넣고 담기도 하고 귀찮으면 깍두기를 담아 먹기도 하며 세월이 갔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국음식은 더 좋아하고  김치는 만들기 싫고 하던 차에  그녀와  인연이 되어 만나서 친하게 되었다.

 그 뒤로 우리 집 냉장고는 사시사철 포기김치가 떨어진 적이 없다. 그녀가 하루는 김치 한통을 해 가지고 왔는데  그야말로 우리 친정 엄마가 해주시던 김치 맛과 똑같았다. 너무나 맛있게 먹고 그릇을 돌려주었는데 그 뒤 10여 년이 넘게 지금까지 김치를 해 주는 친정 엄마가 되었다. 김치가 떨어질 때 즈음에는 귀신같이 알고 김치를 만들어 주는데 오늘도 김치 없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 포기김치 한통,  막 김치 한통 그리고 깍두기 한 통을 가져다주었다. 색도 곱고 맛도 내입맛에 딱 맞게 어쩜 그렇게 깔끔하고 맛깔스럽게 김치를 잘 담그는지 모르겠다. 장사를 하며 살기도 바쁜 와중에  나까지 챙기느라 힘들 텐데 꼬박꼬박 변함없는 마음으로 김치를 담아주는 그녀는 나의 젊은 친정엄마다. 여름에는 텃밭에 나오는 온갖 채소를 챙겨 준다.





마늘, 시금치, 부추, 근대와 호박 그리고 빨간 무와 당근 그리고 파와 상추를 가져다주고  틈틈이 먹을 것이 생기면 가져다준다. 맛있는 것이나  좋은 것이 있으면 열일 제치고 나에게 가져다준다. 떡을 잘 만드는 그녀는 쑥떡이나 인절미도 만들어 가져다주고 까만 깨강정 같은 한국 과자도 잘 만들어 준다. 정말 친정엄마도 그렇게 하기 힘들 텐데 한 번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으로 오랜 세월 김치를 만들어 준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내가 뭐라도 해주고 싶지만 음식도 잘하고 살림도 잘하기 때문에 마땅히 무엇하나 해주지도 못하고 그냥 받아먹기만 한다. 어떻게 담그는지 김치가 늘 신선하고 맛있어서 국물 한방울도  버릴 게 없다. 생김치도, 익은 김치도 너무 맛있다.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에도 언제나 똑같은 맛으로, 똑같은 마음으로 김치를 가져다준다.


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엄마가 가까이 없는 나를 위해 하느님은 그녀를 만나게 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향수병에 울기도 많이 하며 살았는데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 엄마처럼 나를 챙겨 주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말이다. 한국에서야  김치나 밑반찬을 사 먹을 수 있지만 이곳은 아직 한국 같지 않다. 요즘 에서야 한국 대형 마켓이 생겨 많이 달라졌지만 김치를 손수 정성 들여 만들어서 가져다주는 그 깊은 사랑에 나는 고마움을 표할 길이 없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여 미안하지만 여전히 나는 고맙게 김치를 받아먹는다. 친정 엄마는 이제 너무 연로하셔서 김치를 담아주지 못하시는 데 세상에 단 한 사람 친정엄마의 김치를 담아주는 그녀가 있어 친정엄마의 김치를 계속 먹을 수 있다. 나이는 나보다 많이 어리지만 빈틈없이 자상하고 세심하게 나를 챙겨주는 그녀가 나는 너무 좋다.

앞으로 사는 세월 동안 나는 그녀를 딸처럼, 엄마처럼 소중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리라 생각한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한두 번 하고 말 텐데 그 긴 세월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해주는 그녀는 나에게 하느님이 보내주신 천사다. 빛깔 좋은 김치처럼 맛도 좋은 그녀의 김치는 사랑의 김치다. 그녀와 함께  행복하고 기쁘게 앞으로도 한 곳을 바라보며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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