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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머물다 가는 인생

by Chong Sook Lee


새벽에 잠이 깼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조금 더 자 보려고

다시 눈을 감는다.

눈은 감고 있지만

이미 가버린 잠이라

오라는 잠은 안 오고

이런저런 생각이 몰려온다.

오래전 일부터

최근의 일까지 기억이 난다.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워진 것보다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게 있어

잠이 안 오는 날

하나 둘 꺼내보는 재미가 있다.

좋은 추억은

웃음 짓게 하고

나쁜 추억은

씁쓸하지만

모두 지나간 시간이다.

사는 동안

바람같이 찾아온 인연이 많다.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많은 게 인생이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은혜로 살아간다.

누군가의 기도와

친절과 배려로 이어지는 게

우리네 삶이다.

부모님과 형제들,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어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때는 그것이 전부였다.

웃고 울고 기뻐하며 슬퍼하며

외로워하고 괴로워하며 행복했다.

성인이 되어

남편과 부부의 연을 맺고

자식들을 낳고 기르며

살아온 세월이 길어져

아이들은

우리들의 보호자가 되는 세월이 갔다.

어린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살다 보면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세상을 떠나는 생로병사의 섭리다.

봄이 오겠다고 하면

겨울은 다 버리고 떠나야 하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민생활 45년이다.

그때 그 시절에

젊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난다.

이민 와서 먹고살기 위해

애쓰며 살다 보니

남은 세월이 짧아져 간다.

가는 세월이

아쉬운 생각이 들어도

세월 따라가야 한다.

아직 하루가 문을 열지 않아

어둠에 싸여있다.

이 어둠이 걷히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며칠 전 지나간

정월 대보름달이

조금씩 일그러져

구름 낀 하늘에 희미하게 떠있다.

달이 뜨고 기울기를 반복하고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며

초승달과 그믐달이 오고 간다.

바람과 구름처럼

우리네 인생도 머물다 가는 것이다.

쌓고 모으는 재미로 살다가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세월이다.

욕심부릴 것도 없고

움켜쥘 것도 없다.

서운한 것은 잊고

좋았던 것만 기억하면 된다.

언제 올지 모르는 잠을

기다리다 보니 아침이 온다

어제와 다른

또 새로운 하루가 문을 연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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