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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을 뜯으며... 행복했던 오늘 하루

by Chong Sook Lee


삼나물이라는 산나물(사진:이종숙)



눈을 감으니 산이 보인다. 하루 종일 산나물을 캐러 산속을 헤매서인지 나무들이 꽉 찬 숲 속이 총천연색으로 훤히 보인다. 하늘은 파란색으로, 나무들은 초록색으로, 여러 가지의 산나물들은 푸릇푸릇 여기저기 다정하게 앉아서 우리를 쳐다본다. 앞장서서 뽐내기도 하고 뒤에 서서 우물쭈물하기도 한다. 나무 뒤에 숨어 있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는데에서 홀로 서 있기도 한다. 친구들과 모여 있기도 하고, 끼리끼리 앉아 있기도 한다. 식물도 보호를 위해 숨어서 피어난다. 색을 감추기도 하고, 안 보이는 곳에 살그머니 피기도 한다. 눈을 떠도 산이 보이고 숲 속에 예쁘게 자라는 나물들이 눈에 선하다. 며칠 전에 친구가 산나물을 한 바구니 가져다주었다. 근교에 있는 숲 속에서 산책하다가 발견했다며 힘들게 뜯은 산나물을 가져다주며 그곳에 가면 있으니까 가서 뜯어보라며 장소까지 가르쳐 주었다.


생전 나물이라는 것을 뜯어보지 않은 나는 먹기는 즐겨먹어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뿐더러 어떻게 뜯는지도 모르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숲 속에 가 보았다. 풀숲에 자라기에 눈에 보이지도 않아 몇 개 따다 말고 집에 왔다. 그냥 친구가 가져다준 것이나 삶아서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다듬어서 삶아서 무쳐 보았다. 삼나물이라고 하는데 삶으니 색이 아주 예쁜 연두색으로 변해 맛이 있어 보였다. 참기름과 소금 그리고 마늘과 멸치젓으로 간을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엄청 맛있다. 옛날에 엄마가 해주시던 그 나물 맛이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 산나물은 지금 이때 잠깐 필 때 캐야지 안 그러면 억세진 다니 어서 가서 뜯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날을 잡아 집에서 가까운 숲으로 향했다.


하늘이 파랗고 햇볕은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운 아침이다. 바람도 부드럽게 불며 숲 속의 세상은 하루를 연다. 산나물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다. 그저 이렇게 숲 속을 걸으며 지으신 이를 찬양하는 것 만으로 너무 행복하다. 길가에 노란 민들레가 인사를 한다. 노란색이 너무 예뻐서 사진 한방 찍어 본다. 세상은 평화롭다.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이 욕심 없는 마음으로 하늘을 보고 흐르는 강물을 본다. 산나물을 찾아 뜯기 위해 이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 세상은 보이는 만큼 아름답고, 발품을 판 만큼 멀리 갈 수 있다. 세상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 아침에 귀찮다고 집에 있었다면 오늘의 이 아름다운 세상은 없었을 것이다. 어느새 숲 속은 완연한 여름이 되어간다. 초록의 물결이 바람을 따라 하늘하늘 춤을 춘다.






산책길을 따라 걷다가 옆으로 나 있는 오솔길로 들어갔다. 강가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정겹게 들리고 풀들과 낙엽이 함께 숨 쉬는 곳을 지나간다. 산나물처럼 생긴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지만 친구가 가르쳐준 것만 찾으면서 걸어간다. 작고 가느다란 나무들이 엉켜서 자라는 산골짜기 양지바른 곳에 하나 둘 띄엄띄엄 나물이 보인다. 반갑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 네가 살 줄이야! 이제서 너를 만나게 되었구나. 이젠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실히 알았으니 지금부터 너는 나의 사랑이다. 너만 생각하고, 너만 그리고, 너만 캐서 내 바구니에 집어넣을 것이다". 반가움에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 나물을 뜯기 시작했다. 하나, 둘 뜯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한 줌이 되어 가지고 간 비닐백에 집어넣으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뜯었다.

나물을 뜯다 보니 오래전 이민 온 지 몇 년 안되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당시 나는 연년생으로 올망졸망한 세 아이들을 키우며 정신없이 살아갈 때였다. 하루는 옆집에 살던 또래의 한국사람이 들에서 부추를 뜯어 왔다고 자랑을 해서 장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당연히 세 아이 들을 데리고 갈 수 없는 상황이라 갈 수는 없어도 이곳에 부추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해서 물어봤는데 가르쳐주지 않아 무척 서운했던 기억이 난다. 가서 그곳에 있는 것을 다 뽑아 오는 것도 아닌데 치사하게 같은 한국사람끼리 그것도 한동네에서 매일 얼굴 보며 사는 처지에 어찌 그러나 싶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녀도, 나도 같이 늙어가는 지금이지만 그때 서운했던 마음은 여전하다. 나는 옆집에 산다고 신경 써주며 잘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지 지금도 의문이 간다.

하늘이고, 나무고 보지 않고 땅만 쳐다보며 나물만 뜯었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지만 그만할 수가 없다. 나물이 안 보일 때는 다 풀같이 보였는데 자금은 멀리 있어도 보인다. 낙엽 속에 숨어도, 나무 옆에 서있어도 허리를 쭉 펴고 서있는 나물이 보인다. 앞으로 계속 걸어가며 보이는 대로 뜯는다. 이름이 '삼나물'이라는 이 나물은 이민 선배들이 지은 이름이다. 한국에서 먹어본 나물과 비슷하여 삶아서 먹어보기 시작하여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뜯어먹어왔는데 우리는 지금에서야 친구 덕에 알게 되었다. 고사리 같기도 한데 살짝 삶아서 볶든지 무치든지 하여 먹는다. 색깔도 좋고 입안에서 살살 녹는 듯이 맛이 있어 이렇게 뜯으러 나왔는데 다행히 많이 보여 먹을 만큼 뜯었다.

이제는 가야 하는데 자꾸만 눈에 보인다. 그만하고 가야지 하면서도 눈에 보이니 안 뜯을 수가 없다. 보려고 찾을 때는 안보이던 것이 그만하고 가려고 하니까 더 잘 보인다. 옆에도 있고 앞에도 있다. 언덕에도 있고 비탈길에도 있다. 이것을 다 뜯으려면 해가 넘어가도 안된다. 이제 그만 욕심을 버려야 한다. 조금만, 조금만 하다 보면 집에도 못 가고 산에서 쓰러질 판이다. 이제는 정말 그만하자며 비닐백을 가방에 넣고 걸어본다. 땅만 쳐다보며 걸었는데 하늘과 나무들이 웃는다. "이제 그만하고 우리 좀 봐라". 하며 이야기하는 듯하다. 내일 다시 오면 되는데 욕심 때문에 저 아름다운 것들을 다 놓치고 지나쳤다.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나물에 정신 팔려 보내 버렸다.

마음을 비우며 걸어간다. 초록색의 숲이 한눈에 아름답게 펼쳐진다. 지나치는 사람들과 인사하며 스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걸어간다. 나물이 쳐다보지만 오늘은 그만하자. 보여도, 가까이에 있어도 그냥 지나친다. "내일 다시 오면 돼 ". 하며 자신한테 말한다. 나물 뜯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런지 피곤하지도 않다. 이제 집에 가서 다듬어서 깨끗이 씻어서 삶아 맛있게 무쳐 먹기만 하면 된다.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친구 덕분에 산에서 산책하며 공짜로 얻은 산나물로 인생이 행복하다. 무엇을 원하겠나? 건강하게 먹고 놀며, 하고 싶은 것 하며 기분 좋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더 많이를 원하는 마음이 있으면 내가 지금 누리는 마음의 평화는 자꾸만 줄어들 것이다.



오늘 하루 지금 행복하자. 그러면 내일도 그렇게 행복할 것이다.



곷이 만개하여 미소한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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