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가 익어가면 추억도 익어간다

by Chong Sook Lee


녹음이 우거진 초록의 세상은 눈부시다. 봄이 언제 오냐며 봄이 안 온다고 투정을 부리는 동안 봄은 왔다가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갔다. 봄인 줄 모르고 봄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봄은 말도 없이 살며시 다녀갔다. 보이지 않게 살그머니 왔다가는 봄을 기다리다 보면 봄은 만나지 못한 채 봄을 놓치고 맥없이 보낸다.


우리와 함께하는 행복은 봄을 닮아 보이지 않아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다닌다. 행복이 옆에 있는지도 모르고 행복을 찾아 멀리 떠나지만 행복을 알아채지 못한다. 행복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마음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파란 하늘이 내게 주는 것이 없어도 계속 바라보고 싶다.


새들이 신나게 날아다닌다. 온갖 이름 모를 나무들이 예쁜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 올해는 앵두나무에 꽃이 만발했다. 해마다 앵두꽃이 필 때면 날씨가 춥거나 눈이 왔는데 올해는 날씨가 좋았다. 꿀벌도 열심히 날아다닌 뒤에 꽃이 지면서 엄청난 앵두가 파랗게 달려있다. 꽃 달린 곳에 앵두가 달려있으니 아마도 올해는 앵두잼이나 앵두술을 담가도 될 것 같다.


34년 전 부모님이 캐나다에 오셔서 리와 함께 사실 때가 생각난다. 날씨가 좋은 여름날, 엄마와 나는 동네 한 바퀴를 걸어 산책을 하러 나갔다. 녹음이 우거진 동네길을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을 하던 중에 빨간 열매가 보여 가까이 가보니 앵두였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하나를 따서 먹어보니 달콤했다. 여러 번 다녔던 길인데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앵두를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앵두 서너 개를 따서 대충 손으로 문질러 먼지를 털고 입안에 털어 넣었다. 새콤달콤한 앵두 주스가 입안 가득 퍼졌다.


앵두 몇 개를 주머니에 가지고 와서 뒤뜰에 앉아서 먹으며 뱉은 씨가 3년 뒤에 싹이 나고 나무가 되었다. 그 뒤로 해마다 봄이 되면 예쁜 앵두꽃을 보고 맛있는 앵두를 먹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앵두가 풍년이어서 집에 있는 술에 앵두를 따서 넣어 앵두술을 담갔는데 어찌나 잘 담가졌는지 가족 모임에 한몫을 단단히 한 것이 생각난다. 고운 빨간색으로 포도주 잔에 담으면 정말 예쁘다. 올해도 저 많은 앵두가 빨갛게 익으면 앵두술을 담가야겠다.


나는 술을 못 마시는데 두 며느리들은 만나면 술잔에 포도주를 따라서 조금씩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오랜만에 만난 동서지간에 서로 회포를 풀며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좋아 포도주를 항상 준비해 놓는다. 그렇다고 술을 많이 마시는 게 아니고 한잔 따라놓고 텔레비전을 보고 세상 이야기하며 함께 시간을 갖는 정다운 모습이 보기 좋다.


앵두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오래전 이민 오기 전에 남편의 고향에서 살던 때가 생각난다. 이민 오기 전 해에 포도가 풍년이어서 포도값이 무척 싸고 맛있던 해가 있었다. 술을 담가본 경험이 없어서 이웃분에게 물어보니 항아리에 포도 넣고 설탕 부어 놓으면 술이 된다고 해서 포도를 잔뜩 사가지고 포도주를 담갔다. 뚜껑을 열지 말고 놔둬야 한다고 하는 말에 그냥 잊어버리고 있다가 생각이 나서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항아리에 꽉 차 있어야 할 포도주가 거의 없어지고 바닥에 조금만 남아 있었다. 깜짝 놀라서 이웃집에 물어보니 사람들이 오며 가며 가져가는 것을 보았단다. 그분의 말로는 우리가 아는 줄 알고 가만히 있었다는데 기가 막혔던 기억이 난다. 항아리 바닥에 조금 남은 포도주를 마셔보니 너무 맛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포도주 냄새가 나고 항아리를 열어보니 포도주가 있으니 마실만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시골 인심이지만 포도주 하면 생각나는 어처구니없지만 재미있는 추억이 생긴 셈이다.


포도가 유난히 비싼 이곳에서 포도로 술을 담글 생각을 못하지만 캐나다 와인을 사서 마시는 걸로 대신한다. 맑은 하늘과 앵두나무에 달린 새파란 앵두를 보며 술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46년 전에 도둑맞은 포도주 이야기까지 하게 됐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잊히지 않는 이야기 중에 하나다. 아이들을 많이 낳던 시대에 동네 사람들이 서로 돌아가며 아이를 키우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모두 모여 함께 먹던 것이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아파트라는 고층 건물에 문을 닫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며 생활하는 현대인들의 메마른 삶이다. 물론 핵가족 시대를 거쳐 일인 가족이 많은 현실에 이웃을 챙기고 교류하며 소통하는 것은 어쩌면 불필요한 요구 인지도 모른다. 혼술, 혼밥을 하며 혼자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늘어나는 현실이다. 혼자 살기도 바쁜데 인사하는 것이나 말을 걸고 방문하는 것은 실례가 되어 문을 닫아걸어 잠그고 산다.


동네 사람들이 가족이고 내 것 네 것 없이 서로 돕고 나누던 시절은 사라진 지 오래다. 문을 열어 놓고 오고 가며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수 있었던 시절이 없어졌어도 그때의 따뜻한 정은 가슴에 남아 있다. 아들 며느리나 딸과 사위네 집을 가는 것도 예약을 하고 가는 시대다. 자식들 집을 아무 때나 드나들며 살림도 해주고 손주들도 봐주던 시대는 가고, 예의를 지키며 사는 시대에 산다.


무엇이 옳고 그름을 떠나 세상은 시대에 따라 돌아가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제약을 받지 않고 혼자 사는 것도, 모두 모여 대가족을 이루며 사는 것도, 현대인의 선택이다. 다닥다닥 달린 연두색앵두를 보며 추억을 들추는 오후가 저물어 간다.

(사진: 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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