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살아간 지 10일째가 되었다. 아들 며느리와 손자와 손녀 그리고 남편과 나 여섯 명이 한집에 살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생각지 못한 대가족이되었다. 어린 아기 둘을 보며 재택근무를 하는 큰아들이 너무 힘들다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12일 동안 같이 살기로 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하루에 8시간 재택근무를 한다. 재택근무라고 해서 나는 애들 보고 할 일 하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정확한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있고 중간중간에 미팅도 많다. 얼굴을 보고 하는 영상 근무기 때문에 꼼짝없이 빈틈이 없다. 대충 한다는 것이 용납이 안될뿐더러 오히려 회사생활이 어쩌면 훨씬 더 편하고 쉽다고 말할 수 있다. 일을 하고 있다 보면 애기들끼리 잘 놀 때도 있지만 위험한 일이 생기기 일수이니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일은 해야 하는데 애기들은 엄마 아빠를 찾고 징징 대고 서로 싸우며 안아달라고 하니 도저히 집중이 안되고 스트레스가 쌓여서 일도 할 수 없고 애들을 볼 수도 없어 생각해낸아이디어가 3대가 함께 살아보는 것이다.
제일 어린 2살짜리 손녀딸이 울면 식구들 모두 벌벌 떤다. 아직 어려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의사 표현을 잘 못하니 제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울고 생떼를 부린다. 4살짜리 손자는 말도 잘하고 이해도 잘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면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 어른 4명이 손자 손녀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손주들이 잠을 잘 때는 집안에서 숨소리도 크게 못 쉬고 발걸음도 사뿐사뿐 걸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아들 내외는 두 살짜리 한테도 일일이 의견을 물어본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어린애들이 주장이 뚜렷하고 개성은 강하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는 내 의견이 아이들의 의견이었고 내가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못했다. 그렇게 키웠는데도 자라면서 교육을 통해 개성을 키우며 잘 자랐는데 애들과 나는 자식 교육의 본질부터 다르다. 어린것들이 무엇을 안다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를 물어보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가는데 요즘애들은 너나 내 나 할 것 없이 그렇게 키운다.
내 방식이 좋은 지 애들 방식이 좋은 지는 따질 수 없고 다만 시대가 달라지고 모든 것들이 변했다. 아이들과 떨어져 살다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서 함께 생활하다 보니 옛날의 대가족 시대가 생각이 난다. 아이들을 낳고 그 애들이 자라서 부모 곁에 살면서 자식들 낳고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았던 시대다. 부모는 아이를 보고 집안일을 도와주고, 힘든 일은 젊은 사람들이 하며 싫어도 싫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순종하며 살았던 시대였다. 요즘 시대에 그렇게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각자 따로 살면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에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손주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야말로 쩔쩔매며 본다. 2살, 4살짜리는 갓난아기와 달라 요구사항도 많고 고집도 세어서 하고 싶은걸 못하면 운다. 엄마 아빠 일하는 방으로 들어가서 매달리고 방해하기 때문에 데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전염병 때문에 장소가 마땅치 않다.
어린것들도 눈치가 빨라 할머니 할아버지는 헛 것으로 본다. 엄마 아빠가 야단치면 말을 듣는데 우리가 하지 말라고 하면 말을 안 듣고 마음대로 한다. 손주들이 울면 일하는 부모들이 신경 쓸까 봐 되도록 말을 들어주다 보면 버릇만 나빠져 집에 가면 어른들이 더 힘들 것 같다. 무조건 생떼를 부리면 부모들도 어쩌지 못하니 걱정이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이해도 못하고 말귀도 못 알아들으니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모른다. 단것만 좋아하고, 스마트폰만 보려고 한다. 요즘에 매일 비가 와서 모기가 극성을 핀다. 4살짜리 손자는 모기에 한번 물리면 퉁퉁 부어오르기 때문에 모기한테 물릴까 봐 함부로 밖에 나가지도 못한다. 그래도 어린것이 나가고 싶어 하면 데리고 나가면 영락없이 모기와의 전쟁을 해야 한다. 어른도 모기에 물리면 가려워서 쩔쩔매는데 어린 손자가 모기에 물려 가려워 긁으니 염증이 생겨 약을 먹고, 바르며 고생을 많이 했다.
노란 민들레가 예쁘게 피어있다.(사진:이종숙)
물장난을 좋아하는데 혹시라도 감기 들까 봐 걱정인데 호스를 통해 나오는 물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자꾸만 하려 해서 물을 잠그면 펄펄 뛰며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 '애들 보느니 나가서 밭을 매는 것이 낫다'는 옛날 노인들의 말이 정말 맞다. 탁아소가 비싸지만 전문인들에게 맡기고 일을 다니는 것이 훨씬 좋지만 문을 닫아 어쩔 수 없다. 어떻게든 코로나 19로 힘든 이번 시기를 잘 넘겨야 한다. 최선을 다해 아들 며느리를 도와주다 보면 전염병도 끝나고 손주들은 탁아소로 가고 부모들은 정상적으로 출퇴근을 하게 될 것이다. 몇 개월 동안 빼앗긴 일상이 세상을 휘젓고 다닌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편했고 너무나 풍부했고 너무나 자유로웠다. 그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하지 못하게 되고, 누리지 못하게 되는 현실에 사람들은 적응을 못하고 방황한다.
3대가 살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들 며느리와 손주 들을 가까이 보며 함께 생활하다 보니 정도 많이 든다. 보고 싶어 간절하던 마음에 전염병이 우리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다. 전염병이 없었으면 간혹 왔다 갔다 하며 방문을 했겠지만 이렇게 함께 살며 지지고 볶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라며 보았던 부모의 늙은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 무언가를 도와주고 싶어 한다. 형제가 힘을 합쳐 나무 울타리를 페인트칠을 했고 차고도 정리를 하니 집 안팎이 환해졌다. 할 일은 많은데 막상 무슨 일이라도 하려면 복잡하고 힘도 없어 그냥 놔두고 사는데 어쩌다 아이들이 오면 한 두 가지씩 큰 일들을 해주고 간다. 이제 우리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아이들에게 조언을 물어보며, 아이들의 결정에 따르는 나이가 되었다. 계절의 흐름처럼 서서히 자연스럽게 바뀌어간다. 아이들이 자라 부모가 되어 일하고 어린애들을 키우며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이 안되어 하나라도 더 도와주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하루 종일 어린 손주들과 씨름하며 살림하다 보면 저녁때는 만사가 다 귀찮다. 이것이 한시적이니 참을 수 있지만 영원히 간다면 못 할 일이다.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주들이지만 노인으로서는 힘이 든다. 서운해도 할 수 없고 싫어도 할 수 없다. 아이들은 부모가 늙어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에 보니 그렇지 않다. 내 시간이 하나도 없고 종종걸음으로 매사를 참견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힘든다. 만들어 먹이고 싶은 것도 많고, 해주고 싶은 것도 많지만 잘 안된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니 쉬었다 하려면 할 일이 보이니 피곤해도 해야 한다. 손주들을 보면 귀엽고 아들 며느리가 힘든 것을 보면 도와주고 싶으니 조금 힘들어도 해주면 된다. 내가 조금만 참으면 내게 평화가 오고 내가 조금만 감사하면 나는 많이 행복하다.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이 하루하루 더 짧아져 간다. 내가 행복하고 아이들이 행복하면 그것이 사는 의미일 것이다.
나 혼자의 편함을 위한다면 아무도 안 보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외롭고 고독하다.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혼자 살아가며 불행한 일생을 맞을 것이다. 사람은 몸이 조금 힘들어도, 조금 불편해도 죽지 않는다. 손주들은 자라고 세월은 간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오늘이 다시 올 수 없고 지금 이 순간은 추억이 되어 가슴에 남는다. 지금 좋아하며 많이 해줘도 지나고 나면 후회가 남는데 조금 피곤하다고 피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이 집이라고 오면 편하게 쉬다 가길 원하는 엄마 마음이다. 어릴 때 해주던 음식을 해주며 지난날을 이야기한다. 오늘 마침 둘째가 애들을 데리고 집에 와서 형제가 조카들과 사촌이 오랜만에 만나 시간을 보낸다. 비가 오니 부침개 생각이 난다. 텃밭에 있는 부추와 호박을 넣고 부침개를 만들어주니 너무나 좋아한다. 손가락 조금 움직이면 식구들이 잘 먹고 행복한데 자주 해 주어야 한다. 식구가 모여서 웃고 얘기하며 먹으며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