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아주 조용하다. 다들 아직 꿈나라에서 깨지 않은 시간이다. 하루의 시작은 손주들의 소리로 시작된다.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울거나 웃거나로 시작하여 밤이 될 때까지 시끌시끌하다. 뛰어다니고 넘어지고 다치고 장난감을 뺏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운다. 그렇게 사회를 배워며 자란다. 어린애들도 남이 가지고 노는 것이 더 좋아 보이는지 제 것 버리고 남의 것 차지하려고 난리다. 어른들의 세계나 다름없다. 한가한 시간을 틈타 뜰로 나왔다. 여름 장미 하나가 못 본 사이에 활짝 폈다. 신비한 색이다. 빨강도 분홍도 아닌 정말 아름다운 색상이다. 오래전에 작은 화분에 있는 장미나무를 몇 그루 사다 남쪽 화단에 심었다. 겨울이 긴 이곳에서 얼어 죽지 않고 해마다 예쁜 꽃을 피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기특하다.
비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휘청거리며,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면서도 봄이 되면 잊지 않고 싹을 틔운다. 올해는 봄이 왔는데도 싹이 보이지 않아 죽은 것 같아서 오며 가며 들여다 보아도 꼼짝 안 하더니 어느 날 손톱만 한 싹으로 인사를 했다. 봄 날씨 치고는 추웠던 지난 5월부터 하나 둘 잎이 나더니 이제 꽃이 피고 봉우리가 여럿 나왔다. 이제 며칠 사이로 남쪽 창문 앞이 빨갛게 물이 들것이다. 담 옆에 놓아둔 그네에 앉아서 홀로 예쁘게 핀 빨간 장미를 보면 여러 가지 지난날들이 생각난다. 장미를 심기 30년 전에는 몇 개의 원추리가 썰렁하게 하늘거렸을 뿐 꽃도 채소도 없었다. 친정 부모님이 이민 오실 적에 조선호박씨를 가져오셔서 씨를 뿌려 봤는데 호박이 엄청 많이 달려서 그해 호박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 부모님께서 한국으로 가시고 우리는 그곳에 장미를 심었다. 그 뒤부터 그곳은 장미화단이 되어 해마다 예쁜 장미꽃을 피워낸다. 가장자리에 파와 부추가 자라고 원추리도 자라는데 올해는 원추리가 너무 커서 많이 잘라 냈는데 여전히 무성하다. 지금은 여러 개의 봉우리가 꽃을 피우려고 한 다. 세상에 있는 꽃은 다 예쁘지만 원추리 꽃은 그림같이 예쁘다. 그 옆에는 깻잎밭이 있다. 모종 몇 개를 사다 심었는데 봄이 춥고 바람도 많이 불어 잘 자라지 못하고 있다. 고추 모종도 맨 처음 사다 심을 때와 같이 자라지 않아 내 눈총을 받고 있다. 남편은 열심히 물을 주고 정성을 쏟아붓는데 자랄 생각을 안 한다. 뜨거운 날씨가 필요한 채소인데 춥고 비 오고 바람이 불어서 자라지 못한다.
채소나 사람이나 고난이 많으면 그런가 보다. 사과나무 사이에 뿌려놓은 상추와 갖은 살 판이 났다. 비가 계속 오고 손주들이 물장난하며 뿌려주는 물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큰아들이 수요일에 집으로 간다 하니 어제 둘째네 식구가 저녁을 먹으러 와서 삼겹 살을 구워 먹는데 텃밭에서 자란 상추와 깻잎과 갓이 한몫했다. 어찌나 연하고 맛이 있는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작은 텃밭이라 몇 번 뜯어먹으면 없지만 그래도 무공해 상추라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 그 옆에는 부추와 파가 자란다. 파가 얼마나 풍성하게 자라는지 모른다. 우리 두식구 여름 한철 먹기에 딱 좋다. 소꿉장난 같은 텃밭이지만 부침개나 된장찌개를 끓여 먹고 싶을 때 조금씩 뜯어서 해 먹기 좋아 심심풀이로 채소 몇 가지를 기르고 있다.
뒤뜰의 모습이 분주하다.(사진:이종숙)
채소보다 풀이 잘 자라 풀 뽑기 바쁘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뭐하고 사나 하는 생각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며 길러 먹는다. 마당에는 손주들이 놀다 버린 장난감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옛날에 지은 집이라서 뒤뜰이 넓어 좋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공놀이 하던 농구대도 있고 나무 밑에 흔들 그네도 있다. 커다란 피크닉 테이블도 두 개가 있어 놀다가 앉아서 간식도 먹고 날씨가 좋은 날은 바비큐를 하며 식사 도 한다. 지난달 어머니날에 애들이 선물한 '해먹'에 누워서 하늘을 보면 참 좋다. 식구가 많아지니 더 큰집이 필요하겠지만 둘이 살기에는 커서 그냥 산다. 6월 하순의 아침 하늘은 정말 맑고 푸르다. 며칠 전 이곳에서 차로 3시간 떨어진 캘거리에 계란 만한 우박이 내려 사람들의 차와 집이 부서지고 구멍이 났다.
해마다 토네이도가 다녀가는 7월이 오기도 전에 심한 폭풍우가 지나갔다. 이곳도 이틀 밤을 걸쳐 뒤집히는 듯한 천둥 번개를 동반한 무서운 비가 내렸지만 그래도 우박이 안 와서 아무런 사고가 없어 다행이다. 해마다 크고 작은 토네이도로 피해를 입는 이곳은 33년 전에 엄청 무서운 토네이도가 왔었다. 1987년 7월 31일 금요일 날 이곳에 왔던 토네이도는 지금도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기억할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야구공 만한 우박과 회오리바람이 한꺼번에 오는 바람에 시내 여러 곳이 입은 피해는 역사에 남아있다. 빌딩과 집이 산산조각이 나고 , 불이 나고 인명 피해가 많았던 그해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는 내가 영어학교를 다니던 때였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영어를 배우고 매주 금요일엔 시험을 친다. 읽고 쓰기와 말하기를 배우는데 세 아이가 어렸을 때라서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집에서만 있다가는 안 되겠기에 일단 영어를 배워야 했다. 살면서 잘못 배운 영어를 바로 잡아 주는 특별한 영어반이라 숙제도 많이 내주고, 연습이나 복습을 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다. 그날도 금요일 시험을 보고 바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여야 했다.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책을 꺼내고 리시버를 꽂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가다 보니 갑자기 바스 안이 환해져서 얼굴을 들고 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버스 타이어가 거의 잠길 정도의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잔디 위 와 도로 위에는 야구공 만한 크기의 우박이 여기저 기 뒹굴고 있었다. 불과 20분 정도의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탁아소로 걸어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가는데 전기가 다 끊어져 전화연락이 안 되었다. 뉴스로 토네이도가 우리 동네에 지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전화연락이 안 되어 남편이 순간 너무나 불안했다며 지금도 가끔 이야기를 한다. 그다음 날 뉴스와 신문으로 본 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집도, 빌딩도, 나무도 회오리바람이 모두 싹 쓸어갔다. 아수라장이 되어 사망자와 부상자가 늘어나고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울부짖음으로 슬픔에 잠겨있던 날이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33년이 지났다. 그때만 해도 토네이도에 대해서 잘 몰랐던 사람들은 멀리서 새까만 구름에 꼬리를 달고 오는 토네이도를 보고도 잠자러 들어갔던 사람들도 많다.
정말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맞다. 한번 되게 당하고는 그다음부터 얼마나 토네이도가 무서운 위력을 가진 바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곳은 땅 덩어리가 커서 그런지 토네이도도 무섭게 오고 산불이 나도 대형산불이다. 엊저녁에 온 비바람 생각을 하다 보니 생각이 33년 전으로 다녀왔다. 차고 옆에는 달래 밭이 있는데 보라색 달래 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봄에 몇 번 된장국을 끓여먹고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몇 번 무쳐먹었다. 내년에 다시 보자며 예쁜 꽃으로 작별 인사를 한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아침에 뜰에 앉아서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고 오는 세월을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십 년 뒤에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떤 모습이 될까를 생각하니 답이 없다.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하루가 열흘이 되고 계절이 40번 왔다 가면 그때 알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