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장을 보러 간다. 계란이 한 개도 없으니 장을 먼저 보고 와서 아침을 먹어야겠다. 부스스한 얼굴에 안경을 쓰고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쓰고 나서 거울을 보았다. 정말 험악한 강도의 모습이다. 예전에는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과 흉측한 범인들만 얼굴을 가리고 다녔는데 지금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강도나 도둑의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시대다. 오히려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면 잡혀가거나 승차거부를 당한다. 사람들이 피하고 전염병이 옮을까 봐 저주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마스크에 관한 영상이 많이 올라온다. 손 마스크 만드는 법과 여러가지 멋있는 디자인으로 멋진 얼굴 패션을 만드는 영상도 많다. 자신의 얼굴 일부를 가려 나쁜 짓을 하기 위해 썼던 마스크가 하나의 패션으로 되어간다.
흰색이나 회색 그리고 푸른색과 검은색에서 요란한 무늬와 화려한 꽃무늬로 만든다. '얼굴을 가리는 아랍 사람들의 검은 두건을 벗어야 한다, 안된다, 그 나라의 풍습이니까 그냥 놔둬야 한다'면서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다닌다. 더더욱 공항에서는 마스크가 전염병을 막기 위한 절대 필수가 되었다. 생전 안 쓰던 마스크를 쓰니 숨이 막힌다. 사람을 알아볼 수가 없다. 마스크에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쓰고 있으면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도 몰라보는 경우도 간혹 있다. 보통 골프장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요즘엔 세상이 마스크 안에 다 숨겨져 있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원수를 만나도 상관없다. 보통 싫은 사람을 만나면 얼굴을 돌리거나 뒤돌아 서 가는데 마스크를 쓰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오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그냥 무시하고 가면 된다. 얼굴도 화장을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화장을 하면 마스크에 묻어서 하지 말아야 한다. 전염병 때문에 오랫동안 미장원이 문을 닫았다. 머리도 잘라야 하고 염색도 해야 하는데 이것도 저것도 못 한다. 머리는 길어 묶어야 하고, 염색을 못한 하얀 머리는 10 년은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 화장으로, 염색으로 진짜 모습을 가리고 다녔는데 이제 진짜 모습이 보인다. 세상이 마스크로 가려졌다. 얼굴이 안 보이고 마음은 알 수 없다. 웃음도 없고, 눈물을 흘려도 보이지 않는다. 하얀 이가 보이는 웃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화를 내는지, 웃는지 상대방의 표정과 관심을 알 수 없다. 사람과의 관계는 대화와 얼굴 표정으로 시작되고, 정을 주고받는데 마스크를 쓰고는 불편하다.
사람의 입이나 코에서 나오는 비말로 인한 감염의 무서운 위력 때문에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검사 결과 때문에 서로가 조심하는 것은 좋은데 귀여운 손주들과 가족들마저 거리가 생긴 것 같은 서운함은 감출수 없다. 이제 조금씩 나아가지만 여전히 의심의 마음과 눈초리는 버릴 수 없다. 학교 운동장에 있는 놀이터의 노란 리본을 떼어냈지만 여전히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려워한다. 수영장과 도서관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도 머지않아 열을 것이다. 하지만 몇 달의 공백을 메꾸기에는 많은 날들이 필요하다. 이번에 온 코로 나 바이러스가 불러온 일상의 여파는 오랫동안 우리의 뇌리에 남을 것이다. 직업을 잃고,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과 함께 살아가며 새로이 다가오는 위기를 적응해야 한다.
배추가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사진:이종숙)
좋고, 싫고의 선택도 없고, 오늘과 내일의 여유도 없다. 무조건 쳐들어오는 경제적 위협에 사람들은 숨이 막히는 경험을 한다. 그동안 살며 즐기던 것들은 하나의 추억이 되어 간다.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에 아무 때나 가고 오며, 사고 싶은 물건을 사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가며 꿈처럼 살았던 날을 그리워하며 산다. 마스크를 벗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면 좋겠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날씨도 덥고 끈적거리는데 마스크까지 쓰면 숨통이 막힌다. 미세먼지로 인하여 많은 병이 생기지만 체념하고 마스크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을 보았다. 마스크로 미세먼지가 완벽하게 막아지는 것도 아닌데 불편을 감행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로 어쩌면 지나가는 무서운 폭풍일 것이다. 어느 날부터 우리가 쓰기 싫어도 할 수 없이 쓰고 다니는 마스크를 던져 버리고, 얼굴을 보이며 웃는 날이 올 것이다. 전염을 걱정할 필요 없는 평화로운 날이 오리라 생각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마스크가 없어서 못쓰는 가난한 나라도 있고, 마스크를 거부하며 안 쓰는 나라가 있다. 무엇이 정답인지 모른다.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생각이 있는 인간이라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인 사고로 세상은 싸움이 지속된다. 거부와 비교와 차별로 비뚤어진 세상에는 결코 평화는 없다. 마스크를 쓰고 사람을 피하여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사서 집으로 온다. 사람 사는 세상이 전염병의 위협으로 살벌해지고 메말라 간다.
돌아오는 길에 거울에 비친 내 모습도 까칠하다. 지금껏 남에게 보이기 위해 차려입고 멋을 부리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만나지 않으니 멋진 옷도, 구두도 다 팔요 없는 듯 편한 옷에 편한 신발을 신고 편하게 산다. 자연인이 산에만 살지 않는다. 지금의 내 모습이 자연인이다. 아무런 꾸밈없이 마스크 한 장에 의지하며 삶이 지속된다. 현금은 카드로 대치하지만 마스크는 카드로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쇼핑을 간다고 했더니 4살짜리 손자가 마스크를 쓰고 가라고 하는 세상이다. 어린 나이에 세상에 균이 많음을 알고 살아간다. 거리를 두고 조심해야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수없이 들으며 자란다. 앞으로의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까 하는 마음이 든다. 자연에도 전염병이 돈다. 몇 년 전에 포플라 나무를 송충이가 갉아먹는 병이 있었는데 여름이 가기 전에 그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서 서있던 생각이 난다.
그다음 해에는 언제 그런 병에 시달렸었나 할 정도로 그 나무들은 다시 살아나 잘 자라고 있듯이 코로나 19 역시 지구 상에서 자취를 감출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마스크를 쓰고 서 있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워 가슴이 뛰었는데 이제는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을 보면 무서워 피하는 세상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