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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l 17. 2020

움켜쥐고 끌어안고... 살던 세상은 간다

 


마가목 나무가 열매를 맺었다.(사진:이종숙)



사람은 언제 제일 행복할까
 물질적으로 충족할 때일까 아니면 마음이 편안할 때 일까? 마음이 편해도 물질이 부족하면 행복할 수 없고, 물질이 많아도 마음에 평화가 없으면 행복하지 않다. 원하는 것을 사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 행복할 수 있다. 어딘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갖고, 먹고, 다니고, 만나도 마음에 충족하지 않아 행복을 못 느낄 수도 있다. 요즘 나는 새로운 행복을 찾았다. 내가 끼고 살던 것을 버리고 나니 나는 더없이 행복하다. 몇 년을 이유 없이 어딘가에 놓아두었던 물건들은 마치 음식을 제대로 먹었는데 왠지 속이 더부룩함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청소를 하고 정리를 했는데 여전히 물건이 많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그저 먼지를 털어내고 물건을 반듯이 해놓고 있던곳에서 다른 곳으로 장소만 옮겼을 뿐 버리지 않았기에 화장실을 갔는데 볼일을 보지 않고 그냥 나온 것과 다름이 없었다. 볼일 보러 갔는데 손만 씻고 나오면 속은 여전히 불편하고 언젠가 또 가야 한다. 정리를 했지만 여전히 쌓아놓기만 한다면 공간은 생기지 않는다. 모든 물건은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데 공간을 채우기 위한 물건이라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 물론 약간의 소모품이 필요하지만 아무런 미적 가치도 없는 물건들이 서랍과 선반을 채워진 채 머문다면 그야말로 지저분의 극치다. 쌓아놓고  덥어 놓고, 겹쳐놓고, 밀어놓다 보면 언젠가는 폭발할 것이 다. 오랫동안 나는 더 이상 물건을 사지 않고 살아왔다. 사지 않고 있는 물건을 사용해도 닳지 않는다. 버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몇 가지만 있으면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


그릇이고, 신발이고, 옷이고, 책이고 자리를 차지하는 것들의 숫자를 줄임으로 생활은 단순해진다. 자리가 생기고 공백이 생기고 여유가 생긴다. 어쩌다 필요한 물건이 몇 년에 한 번 쓰기 위해 귀중한 자리를 지키고 버티고 있다. 요즘엔 일회용 물건도 잘 만들어서 정말 필요할 때 그것으로 대용하면 된다. 무겁고 튼튼한 물건이 좋은 것 같아 장만했던 물건들은 몇 번밖에 쓰지 않아 여전히 새것이나 다름없지만 무겁고 둔탁해서 점점 쓸 수 없어 뒤로 밀어놓고 산다. 애지중지하던 책들도 책장만 차지한 채 두 번 다시 거들떠도 보지 않은지 오래됐다. 신간이 나오고 바로 구간이 되어가는 출판의 범람의 시대가 되었다. 다시 읽고 싶어 쌓아 놓았던 책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되었다. 물건 하나하나 다 좋아서 사고, 샀기에 행복했던 물건들이지만 지금은 필요 없는 짐이 되었다. 버리고 없애고 할 때 오히려 나는 더 행복하다.




(사진:이종숙)



하나라도 더 갖고 더 많이 쌓아놓으면 행복하던 시절이 가고 비울수록 더 좋은 시간이 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양보다 질'이라는 말처럼 진짜 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만 있으면 된다. 욕심으로 이것저것 사다 놓고 살지만 특히나 요즘같이 사람들도 안 만나고 교회도 가지 않고 사는 세상에 좋은 옷도 좋은 그릇도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편하게 입고 간편하게 해 먹으며 살면 된다. 나이가 많고 적고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이제 단순한 것을 원한다. 며칠 전 유튜브에 로버트 가정부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앞으로 로버트가 다한다. 살림하고, 애들 보고, 가르치고, 집안 청소하고,  애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사람들 머리도 깎아주고 못하는 것이 없다. 로버트는 피곤하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는다. 수명이 다하면 고치고 배터리를 충전해서 다시 쓸 수도 있다. 사람의 머리 위에서 사람들을 조종한다.


인상도 안 쓰고, 신경질도 내지 않고, 웃는 얼굴로 상냥한 모습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한다. 이제는 인간이 하는 일은 없다. 로버트 하나만 집에 있으면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영상을 보며 좋은 것이 아니라 소름이 돋았다. 인간이 로봇을 만들고 로버트는 인간을 조종하는 것이 무섭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이 아무리 값비싼 물건이라 해도 미래의 시대에는 필요가 없다. 물건에 대한 미련은 이제 어리석음에 불과하다. 버리고 비워서 행복하다. 공간에서 행복을 찾으며 산다. 가지지 않아도 행복하고, 없어도 행복하다. 쌓아놓지 않아서 행복하고  멀리 가지 않아도 행복하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소통하며 사는 요즘 나름대로 매력 있다. 만나서 불편한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카톡을 하며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며, 좋고 필요한 정보를 서로 나누며 그 어느 때 보다 윤택하게 산다.


갑자기 변한 일상이 싫다고 어서 빨리 빼앗긴 일상을 되찾고 싶다고 했는데 어느새 익숙해져 간다. 외식 대신 집밥을 먹고, 공원 대신 뒤뜰에서 바비큐를 하고, 여행을 가는 대신에  집에서 온라인 여행을 한다. 집에 있는 살림은 다 치우고 버리고 비우며 앞으로의 삶을 연습해봄도 좋을 것 같다. 이것저것 물건을 쌓아놓고 끼고 살던 날들에서 벗어나 공간의 미를 찾아본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물건으로 복잡한 것보다는 텅 빈 모습이 더 맛깔스럽다. 물건으로 집안을 채우며 행복했던 날들은 이제 없다. 큰집에 멋진 가구를 들여놓고, 예쁜 그릇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친한 사람들을 초대하던 날들은 없어졌다. 갖고 있는 것은 짐이 되었고, 만남 또한 불필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불행한 사람들인지 모른다. 불필요한 물건이  없으므로, 싫은 사람을 만나지 않음으로 더 행복한 날을 만들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세상을 만들고 세상은 사람들을 이끌어간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렇게 세월을 따라간다. 무엇이 좋은지 모르지만 변해가는 삶을 따라 사는 우리들은 변한다. 계절처럼 봄과 여름이 있고 가을과 겨울이 있어 삶을 보내고 맞는다. 하루 종일 파랗던 하늘에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덮으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순간순간의 보이지 않는 변화로 세계는 돌아가고, 인간의 행복관도 변하고 삶의 목적도 변한다. 지금껏 살아온 최선의 방법이 비틀거린다. 어제가 오늘이 될 수 없고 오늘 또한 내일을 알 수 없다. 싫어도 해야 하고 좋아도 할 수 없는 세상살이다. 무엇이 되었든 마음을 열며 받아들여야 변할 수 있다. 비 온 뒤의 하늘이 맑듯이 변화된 세상은 더 아름다울 것이다.


움켜쥐고 끌어안고 살던 세상은 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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