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가는 무정한 세월속에 ... 그리움만 남는다

by Chong Sook Lee


마가목이 주홍색으로 익어간다.(사진:이종숙)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산다. 세월 따라 나이나 직업에 따라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고 바뀐다. 영원히 친구 하기로 약속했던 어린날의 친구들은 얼굴과 이름조차 희미해지고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친하던 때는 한시도 못 보면 보고 싶어 학교가 끝나면 헤어지기 싫어 집에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했다. 집에 도착하면 친구 집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반만 더 가서 헤어지자고 또다시 걸었던 생각이 난다. 다음날 만나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계속 붙어서 이야기를 했다. 정말 그런 친구들과 영원히 우정을 나누며 살아갈줄 알았는데 세월은 흐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그 뜨겁던 우정은 식어가기 시작하며 뜸해지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잊고 산다. 사람이 이 얼마나 간사한가? 없으면 한시도 못살것 같았는데 이렇게 잊고 살며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과 새로운 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이민 초기에 알고 지내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도 영원히 변치 않을 듯 친하게 지냈는데 세월이 가고 아이들이 자라 각자 독립을 하며 아이들을 따라 다른 곳으로 떠난 사람도 있고 아이들과 생활을 맟추게 되며 옛날처럼 자주 만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힘든 줄도 모르고 기저귀 가방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며 자주 만났는데 이제는 그것도 옛날 일이 되었다. 전염병이 사람들을 집안에 묶어놓고 외출을 삼가다 보니 많은 친구들이 손주들과 시간을 보내며 집안에 있는다. 여전히 골프 회원권을 산 사람들은 매일매일 열심히 골프를 치러 다니지만 우리는 기껏해야 가까운 곳으로 산책 가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그동안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던 쇼핑센터에 이제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방역 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성가시다. 몇 달째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다 보니 몸이 알아서 사람과 거리를 두고 피하게 된다.


마주오는 사람을 먼저 보내게 되고 뒤에 오는 사람도 먼저 보낸다. 멀리서 사람이 가까이 오면 속도를 줄여 부딪히지 않게 하며 자연스럽게 거리를 지키게 되었다. 어차피 이곳 의 생활방식과 그리 다르지 않기에 특별히 힘들지도 않았다. 밥 먹을 때 음식이 입에 있을 때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기침할 때는 휴지로 입을 가리고 지나갈 때는 아무리 급해도 실례한다고 이야기한 다음에 지나간다. 무엇을 먹을 때나 남의 물건을 사용하고 싶을 때도 늘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보며 살아간다. 옛날 내가 한국에 살 때는 에티켓이라는 단어는 있었지만 실 생활에서는 그리 쉽게 지켜지지 않았다. 지나가면서도 밀치며 그냥 지나가고 기침이나 재채기도 옆에 사람이 있어도 그냥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데서나 가래침을 뱉고 소리 지르고 악을 쓰며 욕하는 광경은 주위에 의례히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며 살았다.


그야말로 힘이 있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생활 방식이었다. 싫어도 거부를 못하고 좋아도 표현을 못하던 시절은 없어지고 자기의 표현을 확실히 하고 싫든 좋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며 그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현실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 들은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킨다.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며 자신의 의사도 존중 받음을 배우게 한다. 4살짜리 손자는 애교가 많고 좋으면 뽀뽀하고 포옹하기를 좋아한다. 그래도 6살짜리 깍쟁이 사촌 누나가 포옹이 싫다고 이야기한 다음부터는 절제를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좋아도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하지 않아야 함을 어릴 때부터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교육이란 정말 어릴 때부터 몸에 익혀 나가야 하는것 같다. 커서 배워도 늦지 않지만 자연스럽지 않고 실천하기가 힘들다. 세 살짜리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이곳에 40여 년을 살아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여러 가지 습관이 있다.



(사진:아종숙)



아이들은 조용하면 일을 저지르기 때문에 항상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하고 주의를 주어야 한다. 아무리 말수가 없는 사람도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면 수다쟁이가 되고 잔소리가 많아진다. 위험하지 않게 쫓아다니고 혹시나 좋지 않은 것을 보면 못 보게 한다. 요즘 애들은 옛날 아이들 같지 않아 무엇이든지 물어본다. 하지 말라고 하면 이유를 이야기해주고 설명을 해주면 말을 듣는데 무조건 강제로 못하게 하면 나중에 또 한다. 귀찮고 힘들어도 자세히 설명하며 이해시키는 교육을 하게 된다. 내가 어릴 적에는 그렇게 하고 자라지 않아 그게 힘들지만 자꾸 연습을 하다 보니 손주들도 나름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이제 세상은 전염병이 가져다준 새로운 생활습성으로 서로 간의 거리를 지키며 산다. 아무리 친해도, 가까운 사이라도 적당한 거리를 두며 대화하고 행동한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미생물이 옮기는 바이러스로 인하여 생긴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평소의 무장비가 가져다준 경제적 손실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식당이나 극장도 손님을 많이 받을 수 없어 문을 닫고 어른들은 직장에 가지 못한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는 현실은 두렵지만 어느날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리라 믿는다. 사람들을 만나서 친하게 되어 즐겁게 살아가던 옛날이 그립지만 어차피 세월 따라 친구도 달라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또 다른 흥밋거리를 찾을 것이다. 어릴 적 친구들의 모습을 잊은 것처럼 지금의 친구들도 희미한 기억 속에 잊힐 것이다. 처음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사람들과의 인연은 계절처럼 돌고 돈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내가 되어 세상 속에, 세월 속에 살아간다. 때로는 지난날의 친구들이 그리워도 만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들도 나를 잊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맞을 것이다. 오늘은 다른 장소에서 또 다른 인연을 만들며 추억을 쌓는다.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맞는다.


아침 내내 내리던 비는 이제 멈추고 구름은 여전히 모이고 흩어지며 자리를 지킨다. 어느새 마가목 나무의 열매는 주홍색으로 변하고 가을을 준비한다.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면 올 한 해도 다 지나 겨울을 맞는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살고 새들은 겨우내 빨간 열매를 따서 먹으며 산다. 봄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어느새 가을을 이야기한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라는 말처럼 잡을 수도, 묶어 매 놓을 수도 없다.


같이 가자고 해도 빨리 뛰어가는 무정한 세월 속에 그리움만 남는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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