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있고... 지금을 살면 된다

by Chong Sook Lee


태양이 앵두를 빨갛게 익혀준다.(사진:이종숙)




올해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영상 31도의 더위다. 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맨발로 시멘트 바닥을 밟으니 발바닥이 뜨거워서 걸을 수가 없다. 며칠 전 올해는 여름이 썰렁하다고 불평을 했는데 오늘은 정말 여름 같은 날씨다. 해마다 여름이 늦게 오고 짧은 여름에 뜨거운 날 몇 번 없이 가을을 맞으며 그냥 가버린 여름이 서운했다. 한 해는 여름 내내 바람 불고 비 오고 구름 끼고 썰렁한 여름이었다. 식당을 하던 나는 엄청 바빴는데 샌드 위치 가게를 하던 친구는 날씨 때문에 울쌍이었다. 날씨가 좋으면 사람들이 샌드위치를 사 가지고 공원이나 길을 걸으며 점심을 먹는데 날씨가 안 좋으니 사람들이 따뜻한 식당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나는 행복했지만 그 친구는 무척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로 몇 달째 식당이 문을 닫고 배달 식당은 너무 바빠서 난리다. 세상이 참 공평하지 않다. 전염병으로 문을 닫는 식당이 있고 전염병 덕분에 대박 난 식당이 있으니 세상일을 정말 알 수가 없다. 3년 전에 하던 식당을 팔아서 천만다행이다. 22년을 했어도 질리지 않고 매일을 새롭고 재미있게 운영했는데 하루는 성당에 다니는 젊은 형제가 와서 자기한테 팔라고 해서 생각지도 않고 있다가 팔게 되었다. 식당을 오랫동안 운영하기도 했고 퇴직할 나이가 되어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팔겠다고 생각만 했지 특별히 부동산에 내놓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팔게 되어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넘기게 되었다.

파는 우리도 좋고, 사는 사람도 아주 만족해하며 인수인계를 끝내고 즐겁게 운영하며 좋은 식당을 자기네에게 팔아서 너무 고맙다고 행복해했다. 그러던 중 올봄에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 바이러스로 문을 닫았는데 아직도 열지 못한 채 닫혀 있다. 22년을 했으니 자식 같은 식당인데 닫혀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그래도 세상이 전염병으로 신음하는데 괜히 일찍 열었다가 혹시 확진자라도 나오게 되면 폐쇄를 하는 불상사가 생길까 봐 열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제는 딴 주인을 만난 식당이니 새 주인이 다 알아서 잘할 것이라 생각한다. 날씨가 더우니까 아이들이 중국음식을 주문해서 저녁을 먹자고 하여 여러 가지 사 가지고 왔다.

요리할 필요도 없고 설거지를 할 필요도 없이 열 명이 편히 앉아서 웃고 이야기하며 저녁을 먹으니 세상 편하다. 누군가가 맛있는 것을 해주니 몸은 편했는데 이상하게 또 배가 부글거리며 가스가 생긴 다. 편한 것을 생각하면 매일매일 시켜다 먹고 싶지만 먹고 나면 속이 안 좋은 이유 때문에 웬만하면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아무래도 식당에서 기름도 많이 사용할 것이고 맛있게 하기 위해 쓰는 양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세상일은 한 가지 좋으면 반드시 나쁜 것도 있다. 사람들은 하루 덥다고 벗어던지고 조금 추면 금방 껴입느라고 바쁘다. 이렇게 더운 여름이 지나면 언제 여름이 있었나 생각도 안 난다.



한가로운 뒷뜰의 모습(사진:이종숙)



언제나 가을이었던 것 같고 겨울이 오면 언제나 겨울이었던 것 같으니 지나간 세월은 그렇게 잊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난번에 아름다운 푸르름으로 넘쳐나는 숲 속을 걸으며 지난겨울 흰 눈이 쌓여있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 다. 지나간 것은 하나의 추억일 뿐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나의 자리다.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이 친구이고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나의 것이다. 아무리 옛날에 친했던 사람도 지금 만나지 않으면 멀어진 사이이고 예전에 많이 가졌어도 부족한 지금이 더 낫다. 사람들은 좋았던 과거의 미련 때문에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좋든 싫든 현재의 내가 나인데 허상을 쫓으며 불행해한다.

한평생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잡으려 쫓아다닌다. 흘러간 세월은 바다에서 파도가 되어 춤을 추는데 흔적도 없는 날들을 찾으려고 한다면 결코 현실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화려하지 않고 내세울 것 없는 지금이라도 지금이 있어 나는 좋다. 어제는 가버렸고 내일은 아직 보이지 않고 내게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더운 날에 덥다고 더위를 피할 수 없고 추운 날에 추위를 피할 수는 없다. 더위도 추위도 때가 되면 떠난다. 인공으로 눈을 만들고 온실에서 겨울에도 꽃이 피지만 자연이 하는 일을 인간이 빼앗은 것이다. 지구오염으로 달라지는 이상기온에 겨울 같지 않고 여름 같지 않은 날씨 현상이 생겨 전염병이 돌고 이상한 벌레들이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결과임에 틀림없다.

여름에는 더워야 하고 겨울에는 추워야 하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되면서 전염병이 생기고 희귀 질환이 인간을 공격한다. 약도 없고 백신도 없어 앓고 사망하는데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두발만 구르고 있다. 인간이 만든 고통의 길을 걸으며 얼마를 살아야 할지 모른다. 바람이 불어오니 조금씩 온도가 내려가고 땅이 식어간다. 더운 여름에 나무 아래에 걸어놓은 해먹에 누워 뒹굴거리며 하늘을 본다.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에 나무들도 땀을 흘리며 서 있다. 세상은 경제니 정치니 떠들어대며 정신없이 시끄러운데 나는 편안하다. 장미꽃은 시들어가고 원추리도 꽃을 덜 핀다. 사과는 파랗게 달려있다. 깻잎도 쑥갓도 상추도 잘 자라 여름 내내 우리에게 신선한 채소를 공급한다. 파는 씨가 무거운지 넘어져 있고 부추는 무성하게 자란다. 고추는 날씨가 추워 이제서 꽃을 피우는데 오늘 뜨거운 여름 날씨로 많이 자랐으면 좋겠다.


나비를 쫓아다니는 손주들을 쫓아다니며 나도 아이가 된다. 걱정도, 근심도 없는 어린아이가 되어 뛰어다닌다. 가다가 넘어지면 어떻고 신발이 벗겨지면 어떠리.

오늘 내가 있고... 지금을 살면 된다.


해먹에 누워서 하늘은 본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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