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만큼만... 내려놓으면 행복하리라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가을이 부른다. 여기저기 노랗고 빨갛게 익어가는 가을이 부르는 소리에 발길을 숲으로 옮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수다 소리가 들린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강을 향해 흘러가는 계곡물도 지난여름의 못다 한 이야기로 바쁘게 졸졸졸 수다를 떤다. 숲 속에서 이름 모를 새들이 목청을 높여 지저귀고 풀벌레들도 가을이 왔다고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도시의 소음을 피해 숲 속으로 들어오니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한다. 가을은 작은 풀부터 커다란 나무까지 오고 있었다. 급할 것도 없는데 벌써 왔느냐고 하면 수줍어 얼굴이 빨갛게 된다. 먼저 왔으니 먼저 가겠다며 보따리를 싸고 있는 여름도 있고, 이미 떠난 여름자리가 텅 빈 곳도 있다. 풀들도 피곤한 지 아예 누워 버리고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여름에 너무 힘들었나 보다.


특히 이번 여름은 비도 많이 왔고, 바람도 심하게 불었으니 어린 풀꽃 들은 당연히 피곤하고 지쳤을 것이다. 계곡 옆에 다리를 지나가는데 연보라색 꽃이 군락을 이루며 잔뜩 피어있는 곳이 보인다. 노란색의 들꽃과 잘 어우러져 가을이 온 줄도 모르고 사랑을 주고받는다. 가는 길이 막혀서 돌아오는 길에 벌들이 들락거리는 곳을 보니 나무에 구멍을 뚫고 벌집을 지어놓고 벌들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며 꿀을 모은다. 보통은 나뭇가지에 집을 만드는데 신기하게도 나무 속안에 집을 지은 것을 보며 천적을 피해서 그렇게 지은 것인가 보다 생각을 해본다. 계곡물이 너무나 깨끗하여 사진을 찍어보니 또 하나의 파란 하늘이 물안에 있다. 자연을 보면 자연을 닮아간다. 너무나 평화로운 숲 속에서 이렇게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지금의 삶에 더 이상의 것을 바랄 수가 없다.



(사진:이종숙)



하루 종일을 걸어도 피곤하지 않다. 숲이 내주는 산소가 폐로 들어와 더러운 모든 것들을 씻어낸다. 상쾌하고 청명하여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어본다. 몸안의 노폐물이 다 나오는 듯 가슴까지 시원하다. 한없이 앞으로 걸어본다. 아이들이 나뭇가지로 커다란 집을 지어 놓았다. 비올때 몇 사람은 들어가서 비를 피할 수 있게 지붕까지 꼼꼼히 만들어 놓은 것을 본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란다. 어른들의 도움으로 흉내를 내며 자유로운 생각과 창의를 바탕으로 만들고 웃고 성장한다. 동네로 나가는 길로 나가보았다. 새로 생긴 동네는 아닌데도 집들이 크고 멋있다. 집집마다 예쁘게 치장하고 잘들 살아간다. 이민자들이 조국을 떠나 열심히 일한 대가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으며 노년을 위한 계획을 하고 퇴직한 후에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다.


동네가 휴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 숲으로 들어가는 길로 다시 들어온다. 숲 안 에도 곳곳에 쓰레기통이 놓여있어 산책길이 잘 정돈되어 있다. 서로가 노력하고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다. 휴지 하나도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다. 이런 곳에 살아갈 수 있어 좋다. 도시가 크면 산업이 발전하고 좋은데 여러 사람이 모이면 더러워진다. 이곳은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자연숲이라 동네 사람들만 몇 명 다닌다. 몇 번 다니면서 벌써 사람들과 안면이 있어 오며 가며 손으로 인사를 하고 좋은 하루를 기원한다. 생각하면 사람 사는 것이 그리 복잡하게 살 필요가 없음을 느낀다. 아침 먹고 이렇게 산책을 하다 보면 점심때가 되어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나면 하루는 절반이 지나간다. 이것저것 할 일을 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다 보면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간다.



(사진:이종숙)



해놓은 것 없이 세월이 간다고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세월은 가는 것이다. 특별히 잘할 필요 없이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서 살면 된다. 남보다 잘나기 위해, 남보다 더 많이 갖기 위해 살려고 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보통 사람으로 살면서 맘 편하게 살면 된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고 피곤하게 살아갈 필요는 더더욱 없다. 내 능력껏, 내 양심껏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살면 된다. 자연을 보면 저 살기도 바쁘다. 나무 하나로 자라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풍파를 견디며 살아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수많은 작은 나무들이 자라다가 어떤 것은 비에 젖고 , 바람에 넘어져 쓰러져 죽고, 어떤 것은 그 무서운 풍파를 견뎌내며 자라 살아남아 숲을 지킨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제할일을 하여 멋지게 자란 모습들을 보면 정말 고맙다. 아무것도 내가 나무를 위해 해 준 것이 없는데 의젓하게 서서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며 삶의 안식처를 만들어주는 숲이 있어 행복하다. 태양은 나무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너무 뜨겁지도, 춥지도 않아 걷기에 참 좋은 날이다. 머지않아 가을이 익어가면 숲 속의 작은 오솔길로 들어가서 걸으며 계곡물과 지난여름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다. 더운 여름날에는 산책하는 개들이 더워서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곤 했는데 오늘은 그리 덥지 않아 개들이 점잖게 걸어간다. 열매들은 빨갛고 노랗게 익어가고 나뭇잎들은 단풍이 들어간다. 여름은 서서히 자리를 내어주고 내년을 기약하고 가을은 여름이 있던 자리를 차지한다. 겨울이 올 때까지 가을은 제 자리를 지키다 떠나갈 것이다.


세상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숲 속을 걸으면 아무런 걱정이 없다. 남편과 도란도란 지난이야기를 하며 두어 시간 걷는 사이 멀리 세워둔 차가 보인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어왔는데 집으로 가는 시간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세월의 모습을 등에 업고, 가슴에 안고 서 있는 모습이 되었다. 지난날들은 추억이 되었고, 앞으로의 세월은 추억을 만들며 사는 시간이다. 가지지 못하는 것을 바라지 말고 가진 것에 감사하면 더 행복할 텐데 이제부터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자.


원하는 만큼만 내려놓다 보면 행복하리라.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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