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꽃도 피고 고추도 달리네

by Chong Sook Lee







고추 모종 여덟 개를
하나에 2불씩 주고
5월에 사 왔다.


온다던 봄은 오지 않고
올 것 같지 않게 추웠다
5월 말에 다녀가는 폭설을 피해
차고에 놓았다 밖에 놓았다 하며
봄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던 봄은
아무도 모르게 살그머니 다녀갔다.


추위에 달달 떨며 자라지 못하는 고추는
6월 중순에 밖으로 나왔다.
세상은 갑자기 여름이 되었고
수줍은 고추는 자라지 못하고
꽃은 필 생각도 못했다.

여름이라 해도 뜨겁지 않아
작은 모종으로 서 있었다.


"괜히 사 왔어."
"고추농사는 망쳤어"
"본전도 못 빼는 고추 다시는 사지 마"
"크지도 않은 것 보니 고추 모종에 이상이 있나 봐"
"내년에는 절대 사지 않을 거야"
온갖 욕을 다 먹으면서
죽지 않고 서있던 고추


7월 중순에 꽃 하나 피더니
8월이 되니 여기저기 꽃이 핀다
꽃이 피면 고추가 바로 나올 줄 알았는데
며칠 계속되는 비 때문에 꽃이 떨어지고
벌도 오지 않는다.


오며 가며 눈치를 봐도

올해는 고추농사 실패다.
꼼짝도 하지 않고

꽃 몇 개 달고 서있는 고추나무
남편은 햇볕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가며
정성을 들인다.







어느 날 고개 숙인 고추꽃 아래
애기 손톱만 한 고추가 달렸다.
미안해서 얼굴을 들지 못한 채
땅을 보며 피는 고추꽃
어느 날 쳐다보니 꽃마다 고추를
하나씩 달고 서있다.


본전이 16불
식품점에서 차라리 16불어치 사다 먹을 걸

후회했는데 하나 둘 세어보니 열개 스무 개
물값 빼고 본전은 뺀 것 같은데
볼수록 예쁘다.


8월은 가지만

우리 집 마당에 고추는 주렁주렁
빨갛게 익은 고추도 있다.


고추장에 찍어먹고
송송 썰어 된장국에 넣어 먹고
남는 것은 얼렸다가 겨울에 먹어야지


안 자란다고
꽃도 안 피고

고추도 안 달린다고 욕하며
내년에는 절대 안 사겠다고 결심했는데
예쁘게 매달린 고추가 너무 예뻐
내년에도 고추농사를 지어야겠다.


때가 되면 자라는 것을
때가 되면 꽃이 피고

고추가 달리는 것을
속 좁은 나는 안달을 한다
변덕 심한 나는 고추를 잘 샀다고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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