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바람이 심하게 분다. 비 온다는 소식은 없었지만 하늘이 뿌옇다. 처서가 지나서 인지 가을이 한 발씩 다가오는 것이 조석으로 실감이 난다. 어느새 가을이 오고 있다. 군데군데 짙어지는 가을이 눈에 보일 때마다 왠지 모를 허전함이 가슴을 와 닿는다. 세월이 가고, 그 세월이 나를 떠나는 날 나는 세월과 이별을 할 것이다. 바람이 불어 나무를 흔들어 댄다. 힘없는 나뭇잎이 말없이 떨어진다. 하나둘씩 나무에 옷을 입힐 때 전율하던 마음이 생각난다. 어느 날 우연히 쳐다보았던 나무가 파란 옷을 입고 그늘을 만들어 주었을 때 참으로 좋았다. 연둣빛이 녹색으로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며 서 있던 나무들이 힘이 빠져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니 한 해가 가는 것이 보인다. 갈 때 가고, 올 때 오는 것이 세상사인데 이렇게 계절이 바뀔 때는 괜히 하늘도, 땅도 서글퍼진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이곳 어딘가는 벌써 눈이 올 것이라는 기상청의 소식을 듣고 "아니 벌써?" 하는 말이 나온다. 하기야 2년 전 9월 초에 눈이 많이 와서 겨울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 텃밭에 있던 채소들은 다 얼어버려 속이 많이 상했는데 며칠 뒤에 다시 가을이 돌아왔다. 계절이라는 것이 알 수 없어 언제 어느 때 오고 갈지 모르겠다. 겨울이 너무 길기도 하고, 너무 빨리 오기도 하여 봄 늦게까지 겨울옷을 입고 다녀야 할 때가 많다. 한국의 3월은 너무 추워 코트를 입고 싶은데 봄이라는 계절의 이름 때문에 여학교 다닐 때 교복을 입고 발발 떨던 생각이 난 다. 지금은 남들이 뭐라고 하던 내가 추면 여름에도 두꺼운 옷을 입고 다니는데 그때 어린 맘에 우스워 보일까 봐 그랬을 것이다.
(사진:이종숙)
세월은 그렇게 흘러 이렇게 추억을 더듬는 나이가 되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앞으로 다가올 계절을 준비하며 살아간다.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어른은 늙어서 아이가 되는 것 같다. 잘하던 것을 잘못하고, 기억하던 것을 잊어버리고, 어딘지 모르게 옛날의 모습은 사라져 간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도 많던 날 들은 어디로 가고, 새로운 것도 싫고 좋아하던 것도 그저 그렇다. 아이가 처음 신발을 신고 벗는 것을 수십 번 반복하며 거꾸로 신고, 반대로 신으며 제대로 배운다. 사람이 그렇게 평생 배우며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 배우지 않고 하나둘 잊으며 산다. 할 줄 모르는 게 더 많고 신경 쓰기 싫어지고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지며 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안간힘을 쓰는 이유도 늙음을 늦추기 위함 일 것이다.
계절을 늦출 수 없듯이 자연을 거부할 수 없음에도 인간은 늙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지구는 세균 덩어리가 되어 병균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사진을 보면 공중에 떠다니는 세균의 모습을 하고 있어 보기만 해도 두렵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플라스틱으로 얼굴을 막고 다닌다. 어쩌면 지구는 더 이상 살 곳이 아닌지 모른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인간은 달나라를 동경하고 연구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구가 이처럼 더럽혀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먼 옛날 공장도 없고 차도 없어 모든 것이 불편하던 시대는 지구는 깨끗했을 것이다. 세상이 공해로 덮여 있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이 갈 곳은 어디인가?
(사진:이종숙)
바람이 더 세게 불어오는데 노인부부가 길을 걷는다. 어디로 무엇하러 이 이른 아침에 가는 것인지 그들은 힘겹게 한발 두발 걸어간다. 가방에는 무엇이 가득 들어있는데 힘에 겨운 듯 비틀거린다.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며 두리번거린다.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이 안경을 가리니 할머니는 얼굴에서 머리카락을 치워준다. 허리는 굽고 얼굴엔 주름이 가득한데 무엇이 좋은지 둘은 히죽 거리며 서 있는다. 20대 청춘으로 돌아가는 중인 듯이 보기보다는 행복해 보인다. 행복이란 어쩜 저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도 잊고, 계절도 잊고 지금을 사는 모습은 처량해 보이지만 행복해 보인다. 사람은 겉모습으로는 알 수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사람도 우리가 모르는 그 무엇인가로 기쁘게 살아간다.
돈이 없는 사람은 내일 먹을 음식을 살 돈만 있으면 행복하고, 옷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은 하나로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며 산다.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던 노부부가 급하게 버스에 오르는 뒷모습에서 그들의 행복이 보인다. 없다고 다 불행한 것이 아니고, 있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닌데 사람들은 많이 갖기 위해 산다. 열심히 사들인 물건들이 구석구석 쌓여가며 세월이 가지만 그런 것이 다 필요 없음을 알기까지 세월과 함께 이곳까지 왔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아침에 밖을 내다보며 생각은 어디까지 갔는지 모른다. 어느 날 오늘 아침에 본 노부부의 모습이 되어 지금 살아있음에 행복하고 하루를 살아감에 만족하는 날들이 다가온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개학날은 다가오고 코로나 19는 점점 확산되면서 고개 숙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어린아이를 둔 학부모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선택할 수 없는 세상에 되는대로 살아야 하지만 자고 나면 커지는 걱정 덩어리가 코로나 병균체만큼 더 두렵다. 이 꼴 저 꼴 다보며 살아온 노인들이야 그럭저럭 살면 되지만 앞으로 갈길이 먼 젊은 이들이 안쓰럽다. 이 또한 기우에 불과하리라.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하나로 살아가는 그들 나름대로의 길이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걱정은 우리들이다. 점점 발달해가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게으르게 사는 내가 더 걱정이다. 가르쳐 주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내가 더 걱정이다. 저 바람 따라가는 날까지 버텨야 하는데 기운도 없고 흥미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