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쌓은 덕은... 언젠가 돌아온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벽난로 굴뚝으로 심한 바람 소리가 들린다. 뚜껑이 열린 듯 닫힌 듯 심하게 흔들려 창밖을 내다본다. 나무가 비틀거리며 옆으로 서있다.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일까? 하늘은 맑고 푸른데 세상이 뒤집힐 듯 불어대는 바람을 보고 서 있는다. 매일 숙제하듯 하는 산책을 나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하루가 너무 길어서 지루할 생각이 들어 밖을 향했다. 거리의 간판이 마구 흔들리고 땅에 있던 가느다란 흙먼지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기지개를 켜며 들썩거린다. 바람이 부는 날은 괜히 심란하여 두리번거린다. 며칠 전 폭풍의 피해를 입은 한국 뉴스가 생각난다. 어부들이 피해를 줄이기 위해 비바람을 피해 바닷가에서 배를 점검하는 모습들과 비바람으로 과일과 농사를 망친 농부들의 애타는 마음들이 보이듯이 떠 오른다.

비바람이 가져온 피해가 너무 심각하다. 자연이 화가 난 듯 올해는 유난히 난리다. 숲 입구에 들어서는데 바람 때문에 숲이 무척 시끄럽다. 여름이 더 춥기 전에 떠나려고 들썩거리고 가을은 하루빨리 숲 속을 차지하려고 바쁘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큰 나무들이 빨리빨리 서두르라고 독촉을 한다. 숲 속은 시끄럽지만 춥지는 않다. 가을이 떠드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계곡물도 덩달아 강을 향해 급하게 흘러가고 성급한 나뭇잎들은 벌써 많이 땅에 누웠다. 나뭇잎이 꽉 차 있어 보이지 않던 숲이 휑하여 건너편 숲이 훤히 보인다. 숲이 깊어서 이맘때 어디선가 야생동물이 나올지 모른다. 호신용으로 지팡이에 방울을 달고 다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사진:이종숙)



지난봄에 늑대가 동네로 내려와서 코로나 19 때문에 텅 빈 학교에서 새끼를 낳았었는데 그 늑대가 숲으로 돌아와 어딘가에서 어슬렁 거리고 돌아다닐지도 모른다. 하늘은 높다. 어디서 온 딱따구리 한 마리가 우리 앞에서 한번 휙 돌며 길 가운데 서 있는 죽은 나무에 앉아 나무를 쪼아대며 쇼를 한다. 마치 우리를 위하여 먼 숲에서 날아온 듯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간다. 벌들이 떠날 채비를 하는지 벌집들이 흐트러져 있다. 계절이 바뀌며 떨어진 나뭇잎들이 산책길을 덮고 사람들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가고 세월 따라 올해도 이렇게 가을을 맞는다. 나무 꼭대기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수다를 엄청 떤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대니 숲 전체가 시끌시끌하다. 봄은 소리도 없이 살며시 오는데 가을은 소란을 떨며 온다.


굵은 나무가 숲에 드러누운 지 오래되어 초록색 카펫 같은 이끼를 덮고 있다. 이제 머지않아 눈이 쌓이고 긴 잠을 잘 것이다. 그렇게 많던 들꽃들은 자취를 감추고 알몸으로 숲을 지키는 나무들이 더 많아졌다. 불과 며칠 사이에 숲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 또다시 시간의 빠름을 느낀다. 언제 봄이 올까 기다리며 걸었는데 봄이 왔다 가고 여름은 뒤를 보며 아쉬움 속에 떠난다. 오르고 내리는 숲 속의 길을 걸으며 우리들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힘들게 오르다가 편하게 내려가다가 평지를 걷는다. 걷다 보면 또다시 오르는 길이 보이고 힘들 때 앞을 보면 다시금 내리막길이 보인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다리를 걷는다. 다리 밑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지나가는 우리들의 모습도 보인다.






하늘도 물속에서 우리를 보고 나무들도 보인다. 뜨거웠던 여름날, 아이들이 물 장난치던 곳인데 쓸쓸하게 흘러간다. 쓰러진 나무들이 물길을 막고 누워 있다. 나무들 한구석에는 버섯이 하얗게 자란다. 아무런 쓸모없는듯한 죽은 나무에도 버섯이 피어 누군가의 양식이 된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에는 식용 버섯도 많은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버섯은 어쩌면 독버섯 일지도 모른다. 요단강 건너지 않으려고 구경하고 사진만 찍고 간다. 아이들 소리가 숲에서 들려온다. 무엇을 하는지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 보니 아이들 몇 명이 숲에 누워있는 나무로 집을 짓고 있다. 아주 그럴싸하게 짓는다. 부시지 말라는 푯말까지 붙여놓고 조금씩 짓고 있어서 다음에 다 지으면 다시 온다고 이야기했더니 좋아한다.




(사진:이종숙)




오늘은 숲이 아주 한가롭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유난히 없다. 집에 있을 때는 무서울 정도로 엄청 불었는데 숲 속은 그렇지 않다. 나뭇잎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그렇지 숲 속은 의외로 따뜻하다. 아무리 추운 겨울도 나무들 덕분에 숲 속은 따뜻하여 사람들이 찾아온다. 지난봄에 산나물 뜯는 재미에 정신없이 숲 속을 헤매던 생각이 난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파도 눈에 보이는 나물을 지나치지 못하고 엎드려 뜯던 것도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더운 여름에 모기가 극성을 부려 여기저기 물려서 도망 다니면서도 숲이 좋아 오던 날들도 너무 좋았다. 어제의 숲이 다르고, 내일의 숲이 다르기에 남편과 나는 오늘도 숲을 찾는다.




(사진:이종숙)




숲이 끊어지고 주택가로 이어지는 길에서 우리는 다시 온 길을 돌아간다. 가는 길은 오던 길과 같은 길인데 갈 때 보지 못 한 것들이 눈에 뜨인다. 쌀쌀한 밤에 얼어 죽지 않고 피어있는 보라색 들꽃이 예쁘다. 머지않아 그것마저 없어지면 숲 속이 살벌하겠지만 그때는 온통 단풍으로 숲이 물이 들것이다. 몇몇 성질 급한 나뭇잎은 어느새 곱게 물들어 멋진 자태를 자랑하고 서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나뭇잎을 비추고 밤새 떨던 이파리들은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이지만 오늘을 기쁘게 살아가는 나무들에게 배운다. 오지 않은 내일 때문에 오늘을 잃지 말라고 가르쳐준다. 때가 되어 가는 날이 온다 하여도 미련 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은 떨어짐이 끝이 아니라 생각할 것이다.

자라나는 작은 나무를 위한 거름이 되어 희생하고 벌레들의 집이 되고 먹이가 된다. 돌고 도는 세상에 끝은 없다. 살아가는 동안 쌓은 덕은 언젠가 다시 태어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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