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짙어가고 세상은 아름답게 물들어간다. 멀리 보이는 절벽에 가는 길이 보인다. 한 사람이 간신히 갈 수 있을 것 같은 길인데 2년 전에 멋도 모르고 들어선 길이다. 계곡을 타고 오르다 보니 계곡으로 무서운 낭떠러지가 있는 곳까지 가게 되어 한번 다녀온 곳이다. 멀리 절벽 옆으로 단풍이 예쁘게 들어있는데 다시 가보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큰일 나는데 올해 가지 않으면 다시는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까마득히 보이는 절벽과 낭떠러지가 눈앞에 펼쳐지는데 망설임 없이 걸어간다. 숲은 아주 험하다. 야생동물들이나 다닐법한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어간다. 앞뒤로 아무도 없는 숲 속을 조심조심 걸어가며 지난번에 왔을 때를 이야기하며 간다. 그때는 아무런 준비 없이 왔었는데 오늘은 지팡이에 방울까지 달고 걷는다.
깊은 숲 속에는 야생동물들이 있어 지나가며 방울소리를 내주면 서로 만나는 일이 없다. 산세가 제법 험한 계곡이지만 남편이 앞서서 가고 나는 뒤를 따르며 걸어간다. 오르고 내리며 한 발 한 발 걸어가다 보니 가파른 길이 나온다. 지팡이를 짚으며 걷는다. 굳이 오지 않아도 되는 길을 오늘은 가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보는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가자고 했는데 많이 위험하다. 가파른 길을 앞서가던 남편이 깜짝 놀라 엎드린다. 무슨 일? 운동화 끈이 풀어진 것을 모르고 걷다가 넘어질뻔했다. 간신히 끈을 묶고 다시 걷는다. 아주 위험했다. 파란 강물이 까마득히 흐른다. 가슴이 뛴다. 좋아서 뛰고, 아름다워서 뛰고, 무서워서 뛴다. 정신 바짝 차리고 걸어가 본다. 세상이 발아래로 다 보인다.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세상이 앞에 펼쳐지니 그저 감탄스럽다.
(사진:이종숙)
무서운 것도, 위험한 것도 잊고 서 있다. 자칫하면 수십 미터 아래로 떨어질 판인데 그저 뛰는 가슴으로 바라본다. 오색찬란한 단풍들이 눈앞에 서있고 강물이 흐른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파랗고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숲 옆에 있는 계곡 꼭대기에 서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쳐다본다. 이곳을 바라보기만 했다면 이런 짜릿한 감정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오늘 오지 않았다면 내년에도 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아무도 없는 숲은 그저 자연의 모습 그대로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나무들이 할 일을 다한 듯이 한가로이 바람에 흔들린다. 먼저번 왔을 때는 남자 하나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했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다. 아름다움에 팔려 앞으로 걸어간다. 오솔길은 포장도로 가까이까지 연결되어 있다. 강을 끼고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간다. 길 건너 다리 아래에서 아이들이 논다.
다리를 건너 돌아갈까 하다가 안 가본 곳으로 가고 싶어 길을 따라 한없이 오르니 주택가가 나오고 커다란 집들이 한동네를 이루고 있다. 생전 처음 오는 동네다. 절벽 위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상상이 안된다. 주택가를 지나 앞으로 한 없이 걸어 본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처럼 조용하다. 무엇을 하는지 오고 가는 차도, 사람도 없다. 집은 엄청나게 크고 우아한데 오래된 동네라서 산뜻한 맛은 없다.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잘못 들어가면 길을 잃기 쉬운 곳이라서 차근차근 걸어간다. 마침 남편이 길옆에 계곡으로 연결된 길을 찾았다. 길은 길인데 풀이 너무 자라 누워있어 길 같지 않지만 한번 따라가 보았다. 조금 가다 보니 아까 아슬아슬하게 넘어간 절벽 옆의 길과 만나는 길이 보인다. 아.. 이제 이길만 쭉 따라가면 된다. 오르고 내리며 숲으로 들어와 걷는다.
(사진:이종숙)
동물들이 다녀간 발자국이 여기저기 보인다. 발아래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니 아찔하다. 오솔길을 따라 나뭇가지를 헤치며 걸어간다. 다행히 어릴 때 등산으로 굳어진 몸이 아직 기억을 하는지 넘어지지 않고 잘 다닌다. 혼자는 못 갈길을 남편과 함께 서로를 믿고 의지하니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다. 혼자보다 둘이 좋다는 것을 실감한다. 강가라서 그런지 갈대와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바람에 흔들린다. 다리 밑을 걸으며 땀을 식힌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다녀오니 기분이 좋다. 무섭다고, 힘들다고 가지 않았으면 '가볼걸' 라며 후회할 텐데 말이다. "그래, 오늘 다녀오길 잘했어. 오늘 못 가면 내일도 못가".라고 말하며 남편과 웃는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면 영원히 못할 수도 있다. 하늘도, 구름도 잘 다녀왔다고 박수를 쳐준다.
오늘은 오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일은 내일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오늘 할 것이나 오늘 하고 싶은 것을 내일로 미루다 보면 내일 할 일이 너무 많아진다. 행복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아갈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