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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Sep 28. 2020

하늘이 있고 숲이 있고.. 우리가 있어 행복하다



(사진:이종숙)




바람이 심하게 분다. 가을을 재촉하는 바람이다. 집에 있을까 하다가 그냥 발길 따라 걸어본다. 나무들이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니 떠날 채비를 하며 시끌시끌 난리가 났다. 나무들이 이토록 수다스러운지 새삼 느낀다. 나무 꼭대기에 몇 개 남은 나뭇잎들은 힘없이 마구 땅으로 떨어져 발길에 차인다. 외로운 숲에서 함께 하자며 신발에 붙어서 따라온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숲을 뒤흔들고 나무들이 서로 부딪히며 삐그덕 소리를 낸다. 짐승이 아닌가 해서 힐끗 쳐다보니 나무가 아는 체하는 것이다. 키 큰 나무들은 서로 끌어안으며 안 떨어지려고 기를 쓰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다 떨어져 숲을 덮는다. 누군가가 걸어놓은 귀여운 새집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새들이 힘들면 잠시 쉬었다가 가면 좋겠다. 낙엽이 떨어진 숲에 햇볕이 비친다. 그야말로 눈이 부셔서 생전 보지 못하던 자연의 아름다움에 환호한다. 긴 세월 동안 하늘이 파란지, 단풍이 드는지 그냥 스쳤을 뿐 자세히 보려고 하 않았다.


일하며 돈 버는 것이 전부였던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본다. 하늘이 많은지 흐린지는 내가 알바 아니었다. 봄이 오거나 가을이 오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저 손님이 많이 와서 돈을 많이 벌면 그것으로 행복했다. 짬짬이 시간 내서 가까운 곳으로 놀러 가고 몇 년에 한 번씩 고국에 계신 부모님을 방문하면 그것으로 되는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 세상은 돈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다. 아이들이 잘살아보려고 악착같이 사는 것을 보면 나도 저랬지 하며 안쓰럽다. 그저 돈, 돈하며 살아왔기에 오늘 내가 이렇게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은 맞지만 그렇게 기를 쓰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장성하여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잘 살아가니 더 이상 걱정 없다. 남편과 내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바람은 여전히 불어대고 이대로 가다가는 나무들은 며칠 사이로 나목이 될 것 같다.


계곡을 따라 걷는다. 물 흐르는 소리가 정겹다. 날씨가 추워지면 저 물도 얼어 버리고 겨울 속에 묻혀버릴 것이다. 오늘 만난 가을이 내일은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을 것이다. 지금 내게 있는 모든 것들은 지나가고 하나의 추억으로 묻힌다. 작년에도 가을이 있었지만 어찌 가을을 보냈는지 생각이 안 난다. 그저 몇 개의 장면이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오늘 이렇게 설레며 만난 이 아름다운 가을도 어느 날 잊힐 것이다. 오늘 나의 간절한 마음도 세월 따라 묽어지고 그리움도 기다림도 사라질 것이다. 하루라는 시간은 매일매일 새로운 모습이 되어 나를 찾아온다. 어제 못 만난 것을 찾을 수 없고 어제의 내가 될 수 없다. 어느 것이나 때가 있고 내일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수분이 빠져버린 단풍잎들은 슬쩍 스치기만 해도 떨어진다. 젊은 청춘 같은 푸른 나무들이 아직도 여기저기 눈에 보인다.  나무들은 영영 가을이 오지 않을 것 같이 푸르다.



(사진:이종숙)




숲 속에 있는 저 수많은 나무들은 그 자리에 서서  할 일을 하며 살아간다. 누가 보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해도 제 할 일을 하며 살다 간다. 인간의 욕심은 세상을 다 가지려 하기에 행복을 찾지 못한다. 저 나무처럼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 남들보다 잘나야 되고, 많이 가져야 하고, 높이 올라가기를 바라기에 인간은 발전하지만 늘 불안하다. 저기 저 푸른 나무는 가을이 왔는지도 모르고 넋 놓고 있다가 겨울이 오면 꽁꽁 얼어붙어 겨울을 지내야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씩씩하게 서있다. 같이 가지 못해도 겨울은 공평하게 맞는다. 여기저기 쓰러진 나무들이 뒹굴어 다니고 오가는 사람들이 쓰러진 나무를 옮겨 길을 표시해 두었다. 그들의 배려로 사람들은 길을 찾는다.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에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모여 평화를 만든다. 하늘은 여전히 맑고 바람은 쉬지 않고 숲을 뒤흔든다, 우리는 길을 따라 앞으로 가고, 아래로 내려가고, 위로 올라가며 숲을 걷는다.


평지도 좋지만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여러 개의 길과 만난다. 외길로 가다 보면 삼거리도 나오고 사거리도 나온다. 가다 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가 있어 한참을 돌다 보면 길이 나온다. 인생살이 하고 똑같다. 같은 길로 가다 보면 싫증도 나고 따분한데 이렇게 숲 속 깊이 있는 오솔길을 걸으면 조금 무섭긴 하지만 흥미로워 힘들지도 않다. 앞으로 길이 있을까.. 이길로 가면 어떤 길이 나올까? 이 길과 저길 은 어디에서 만나게 될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다. 숲 속에도 세상 속처럼  유혹이 많다. 그냥 갈까, 고만 갈까, 이대로 계속 갈까, 아니 저쪽으로 갈까, 위로 올라가면 어디가 나올까. 아는 길로 가면 끝이 어딘지 알 수 있어 편안하지만 오솔길의 끝은 알 수 없기에 더 흥미롭다. 좁은 길이 있고 가파른 길이 있다. 나무뿌리가 땅 위로 올라와 있는 곳은 자칫 넘어지기 쉬워 한 발 한 발 조심해야 한다.






오솔길 바로 옆에는 계곡이 있어 위험하다. 계곡 아래에 흐르는 강물이 까마득히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지막한 숲으로 보였는데 막상 숲 속으로 들어오니 산세가 제법 험하다. 이렇게 험한 곳을 다니는 야생동물은 추운 겨울을 어디에서 날까? 계곡에서 헤엄을 치는 어린 오리들은 추운 겨울에 어디로 갈까? 벌들은 어디에서 겨울을 날까? 개미는 땅속 깊은 곳에서 봄을 기다릴 것이다. 자연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어 자문자답하며 걷는다. 정상에 오니 바람이 시원하다. 집을 나설 때는 쟈켓을 걸쳐도 추운 듯했는데 쟈켓을 벗고 걷는데도 이마에 땀이 난다. 준비 없이 나온 오솔길에서 삶을 배운다. 성급하게 할 필요 없이 차근차근 걷다 보면 아무리 멀고 험한 길이라도 목적지를 간다. 가다 보면 힘들기도 하고 그만 돌아서 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고비를 넘기다 보면 평지를 걷게 되어 여유가 생긴다.


망설이며 나왔는데 돌아가는 길은 행복하다.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있으면 나름대로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소일하며 시간을 보냈겠지만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함께 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좋은 날씨에 숲 속을 헤매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철없는 아이가 되어보는 것도 좋다. 오르는 길은 뛰어갈 수 없어도 내리막길에서는 영화배우처럼 뛰며 맘껏 아래로 달려본다. 남편과 나는 젊은 청춘 남녀로 돌아가 깔깔대며 숲을 걷는다.



하늘이 있고, 숲이 있고... 우리가 있어 행복하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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