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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Sep 29. 2020

계절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놔두자


(사진:이종숙)




상은 천차만별이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길이 다르다. 일찍 피는 꽃이 일찍 진다고 하지만 일찍 폈다가 늦게 지는 꽃도  많고, 여름 내내 피고 지며 늦가을까지 피는 꽃도 많다. 여름에 피던 꽃들이 다 졌는데 아직도 숲 속에 싱싱하게 피어있는 들꽃을 본다. 춥다면 추운 요즘 날씨인데 그 추위를 견디고 버티는 들꽃이 있다. 해마다 저 혼자 피고 지는 여름 장미는 어디선가 옮겨온 벌레들이 이파리를 다 갉아먹어 피지도 못하고 죽어갔다. 아주 작은 벌레들이 야금야금 먹는데 새끼를 치며 벌레 식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장미나무를 거의 죽이려 들었다. 약을 자니 옆에서 자라는 야채도 있고 해서 기다리는데도 없어지질 않아, 보다 못한 남편이 하나하나 잡아 죽이기로 했다. 보이는 대로 쫓아다니며 죽이니까 어느 날인가 씨가 말랐는지 장미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여름 한철 피고 지다가 가을이 되면 더 이상 피지 않는데 올해는 여름에 피지 못한 꽃을 우느라 한창이다. 장미나무도 남편에게 고마움으로 답례를 하는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꽃을 핀다. 올해 유난히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평소에 지병이 있었던 사람도 있고, 갑자기 병이 들은 사람도 있고, 아프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가기도 했다. 오래 살 것 같은 사람도 뚯밖의 사고나 병마로 세상을 떠나는 반면 매일 여기저기 아파서 오래 못 살 것 같은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을 보면 골골 백 년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프니까 병원에 자주 가다 보면 모르던 병도 발견하겠지만 병이 깊어지기 전에 조기 발견해서 치료를 하고 병마를 이길 수도 있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생겨 세상을 뜨기도 하고 암 덩어리가 성장을 멈추어 몇십 년을 더 살다 가는 사람도 있다.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은 좋지만 사람이 갑자기 죽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가 조금 아프면 나도 모르는 병이 들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죽는 것은 순서가 없고, 살고 싶다고 살 수 없고, 죽고 싶다고 죽을 수도 없다. 다 정해진 운명 안에서 그날을 향해 걸어갈 뿐이다.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던 십 대가 지나고 어른이 되면서 수십 년이 지났다. 세월이 가질 않아 내가 언제 어른이 될까 했는데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 남의 것인 줄 알았던 것들이 내 것이 된지도 오래되었다. 주름도, 흰머리도 내 것이 되었고 굽은 어깨도 내 것이 되었다. 여기저기 아픈 것도 내 것이 되었고 만사가 귀찮아진 것도 내 것이 되었다.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 이 짧아지는 것도 내가 되었다. 나의 아픔보다 남의 슬픔이 안쓰러워지고 남의 고통을 안타까워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고 세상에는 잘난 사람이 엄청 많은 것도 알게 되었다.





(사진:이종숙)




나만 고생하며 힘들게 살아온 줄 알았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힘들게 살아가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원하는 것이 많을수록 마음고생도 많다. 가지고 싶은 것이 많을수록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남의 마음을 가질 수 없고  많이 가졌다고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없다. 마음이 자유로울 때 평화가 온다.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내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내 것이 된다. 늙음이 찾아왔고 평화가 찾아왔고 자유로움을 찾았다. 버림으로 얻고 비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음을 배운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보며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며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쌓아놓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는 그들의 삶은 자유다. 인간은 끝없는 욕심으로 오늘을 잃어버리고 없는 내일을 산다. 오늘은 유난히 새들이 많이 날아다닌다. 오리는 따뜻한 남쪽으로 떠나야 하기에 서두르지만 이곳에서 겨울을 나는 까치나 까마귀도 많이 날아다닌다.


지난번에는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을 나갔는데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나무 위에 까치들이 난리가 났다.  열댓 마리의 까치들이 가지마다 앉아있고  나무 꼭대기에 대장 까치가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깍깍대며 까치들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몇 마리씩 땅으로 내려와 소리를 지르고 땅을 찍으며 푸드덕거리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면 다음 까치들 몇 마리가 땅에 내려와 먼젓번 까치가 하던 대로 반복하여 무슨 일인가 자세히 보았더니 다람쥐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그 죽은 다람쥐를 차례대로 시식하기 위해 순서를 지키며 대장 까치의 명령을 듣던 까치들은 배가 부른 지 그 자리를 떠나 동네는 다시 조용해졌다. 하찮은 짐승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먹으려 들지 않는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늘 불안하다. 별것 아닌 것으로 화를 내고 오지도 않은 내일을 생각하며 걱정하고 살아간다.


 어느새 나뭇잎들이 많이 떨어지고 낙엽이 많이 쌓여 바람이 부는 대로 리저리 옮겨 다닌다. 떨어진 낙엽들은 어디로 가서 겨울을 날까? 가을이 이토록 아름다운지 새삼 느끼지만 나뭇잎이 거의 떨어진 나무를 보니 괜히 마음이 스산해진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노랑 잎을 매달고 멋진 모습으로 세상에 뽐내던 나무들이 가지에 몇 개 남은 이파리를 흔들고 있다. 겨울이 오고 있다고 전해주는 것 같다. 지금 아름다운 가을을 보고 있으면서 겨울의 쓸쓸함을 느껴야 하는 것 또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 기쁘고 행복하면 되는데 겨울을 생각하며 쓸쓸해할까? 인간의 마음은 정말 복잡하다. 저 자연처럼 나도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살고 싶은데 안된다. 봄이 안 와서 기다리고, 가을이 간다고 서운해하고, 겨울이 안 간다고 신경질 내며 산다. 다 때가 되면 오고 가는데 그냥 계절이 알아서 하게 하자.


내가 오라고 해도 오지 않고, 가라고 해도 가지 않을 계절이 하고 싶은 대로 놔두자.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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