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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Oct 01. 2020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희망이 생기는 보름달


보름달에 소원을 빌어봅니다. (그림:이종숙)



밤새 가을비가 내렸다. 추석이 다가온다. 추석이라야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송편이나 사다 먹고 말겠지만 머릿속은 가지 못하는 고국을 달려간다. 한국에서도 추석 모임을 자제하는 이 시국이지만 해마다 명절에는 그리움이 쌓이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밤에 온 비로 땅이 촉촉이 젖어있고 뒤뜰에 서있는 나무는 노란색이 더없이 아름답게 단풍이 들었다. 가을비에 가을이 더 깊어가고 온도도 더 내려갔다. 오늘 밤에는 서리가 온다는데 정말 겨울도 머지않았나 보다. 부엌에서 바깥을 내다보니 두 사람이 걸어간다. 이른 아침에 어디를 가는 것일까?  급하게 어디를 가며 발길을 재촉한다. 비가 온 뒤라 세상의 색깔이 더욱 선명하다. 가을걷이를 끝낸 뜰에 나와 본다. 며칠 전에 호박도 따고 호박 줄기도 걷어냈다. 내년을 위해 밭을 뒤집어 놓았고 아직 씨가 여물지 않은 쑥갓만 옆에 쓰러져있다.


며칠 동안 가을볕을 더 받으면 씨가 여물 것 같아 남겨 놓았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여름 내내 새파란 야채가 있던 텃밭인데 아무것도 없어 쓸쓸한 가을의 모습이지만 풍요롭고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이 보인다. 노란 것은 더 노랗고 파란색은 더 파랗게 보인다. 길 건너  학교 운동장으로 가는 길가에 빨간 우체통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편지를 기다리던 날들이 그리워진다. 요즘에는 편지를 부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우체통이 서 있으니까 그냥 좋다. 세상이 좋아져서 편지를 쓰지 않지만 어디든 편지를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편지를 쓰고, 편지를 받고, 편지를 기다리던 시대가 어느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은 그런 시대를 알지 못하고 자라는데 가르쳐줄 방도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옛날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리운 날들은 그렇게 추억을 남기고 갔다.


학교 운동장에 서있는 나무들도 단풍이 예쁘게 들어가고 성질 급한 나무는 나뭇잎을 거의 다 떨어뜨리고 나목이 되어 서있다. 지난봄에 학교에서 새끼를 낳았던 늑대는 지금 어디에 가 있을까? 숲 속으로 터전을 옮겨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며칠 전 조금 떨어진 곳을 지나가는데 늑대 한 마리가 길을 건너는 모습이 보였다. 어쩌다 숲을 나온 늑대가 길을 잃었는지 급하게 걸어가는 것을 보니 어딘가 가까운 곳에 사는 것 같다. 학교 앞에는 타운하우스도 보이고 그 옆의 탁아소도 요즘엔 문을 열었다. 코로나로 6 개월 동안 문을 닫았는데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니 좋다. 운동장 건너편에는 재수학원이 있는데 요즘엔 코로나 검사하는 곳으로 사용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검사를 받는다. 확진자 수가 매일 100여 명이 넘으니 걱정이다.


외출과 만남을 자제하지만 아무래도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확진자수가 줄어들지 않는다. 어제는 우리 동네에 있는 요양원에서 5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2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요양원 옆에 있는 쇼핑센터에 가는 것도 조심하라는 말들을 한다. 코로나가 일상에 파고들어 감기처럼 같이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마당에 나와 여기저기 보며 지한 해를 생각해 본다.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고 재택근무를 하는 아이들이 도움을 청하여 집에 와서 살다 갔다. 여러 명이 살다 보니 당연히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풍요로웠다.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행복했고 아이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손주들의 재롱도 못 보았을 것이고 아이들의 삶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삶이란 그렇게 부딪히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진:이종숙)



일상을 뺏아가고 생이별을 시키는 코로나가 밉고 원망스럽지만 코로나에게도 고마운 것이 있다면 아이들과 함께한 여름을 준 선물이다. 핵가족 시대에 대가족이 함께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는데 커다란 선물을 주었다. 싫고, 미운 생각만 하다가 고마운 것을 생각하니 나름 위안이 된다. 하늘은 높고 푸르다. 어젯밤에 비가 와서 추울 것 같았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다. 추석날 밤에는 보름달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둥근달은 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보기만 해도 좋다. 달을 보고 있으면 왜 그리도 한국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그렇다. 한국에 있는 달이나 이곳에 있는 달이나 똑같은 달인데도 보름달을 보면 고국이 생각난다. 멀리 떨어져 살아서 그렇겠지만 달을 보면 향수에 젖는다. '달 달 무슨 달 쟁반 같이 둥근달'이라는 어릴 적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달을 보고 별을 세던 추억은 영원히 가슴에 남아 있다. 사람은 늙어도 추억은 늙지 않는다는 말처럼 추석이 되면 어릴 적 나로 돌아가 아이가 된다. 부모님이 추석빔으로 사주신 새 옷들과 신발을 끌어안고 휘발유 냄새, 고무 냄새가 좋아서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들이 이토록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위로할 줄 몰랐다.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며 산다. 오늘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나를 찾아올 것이다. 앞뜰의 자작나무도 단풍이 들어 예쁘게 가을을 맞고 있다. 13 년 전 오늘 조카의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너무나 아름답던 단풍잎이 결혼식날 하루 종일 비가 와서 다 떨어져 버려 서운했던 기억도 새롭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난다. 아이들 기를 때는 아이들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니 지금은 보인다.


세상이 아니 가을이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이라는 것을 해마다 보고 느꼈을 텐데 올해는 유난히 더 아름답다. 코로나로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지나간 날들이 하나 둘 생각난다. 어느새 추석이 되어 생각은 날개를 펴고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추석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지 어느덧 40년이다. 고되다는 명절 시집살이도 하지 못한 채 둥근 보름달이 뜨면 추석이라 생각하며 보낸 지난날들의 추석이 올해는 새삼스럽게 마음을 찾아온다. 고향을 찾지 못해 슬픈 사람도, 시댁을 가지 않아 좋은 사람도 모두 모두 행복한 추석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지만 언젠가 가게 되는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하신 조상님들의 말씀이 참으로 정겨워지는 추석을 맞으며 겸손과 감사로 사신 부모님이 그리운 날이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희망이 생기는 보름달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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