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끝도 아닌... 인생이 피고 진다

(사진:이종숙)

간신히 매달려 있던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여름에는 단단해서 잡아당기기도 힘들었던 나뭇잎이 기운이 하나도 없다. 작은 바람에도 그냥 맥없이 떨어진다. 새파란 젊음이 늙어가며 노인이 되어 생을 다하며 사라지는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죽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삶이란 살기 위함이 아니고 종국에는 죽기 위한 발버둥이 아닐까 한다. 가을엔 아름다움 속에 이별이 보이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허무를 본다. 떨어지면 그만인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에 매달리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안타깝지만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사진:이종숙)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비바람을 맞으며 한 철 살다가 떨어진다. 내 어깨에도, 내 머리 위에도 떨어지며 잘 살다 간다고 마지막 인사를 한다.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어디에 떨어질지 모른 채 바람이 실어다 주는 곳으로 가서 눕는다. 생을 마치며 떨어진 낙엽이 숲 속을 누렇게 덮어 숲 속의 작은 오솔길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셀 수 없는 낙엽이 끝없이 쌓인다. 나무뿌리를 덮고 길가에 서있는 작은 나무들 사이로 떨어진다. 죽은 나무를 덮어주고  숲 속 모두를 담요가 되어 덮어준다. 햇살이 눈부시다. 나뭇가지 사이로 화사한 얼굴을 내밀며 인사를 한다. 따사롭다. 어느새 기온이 많이 낮아져서 햇살이 따뜻하다. 밤에 서리가 내린 숲이 촉촉이 젖어 햇살을 받으며 반짝인다.

(사진:이종숙)

오솔길이 온통 황금빛이다. 낙엽을 밟으며 하늘을 본다. 무심한 하늘은 구름과 소꿉장난하며 쫓아가서 잡아당기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제 할 일 하기 바쁘다. 바람이 분다. 또다시 낙엽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떨어져, 가고 싶은 곳에 아니 가야 하는 곳에 힘없이 떨어진다. 더러는 산책길에 떨어지고  더러는 계곡에 떨어진 채 피곤한 몸을 눕는다. 길에 떨어져 발길에 차여 가루가 되고, 계곡물에 빠져 강으로 여행을 가기도 한다. 바람이 부는 대로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모습이 재미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웃고 떠들던 날이 생각난다. "개똥이 굴러도, 낙엽이 굴러다녀도 웃을 나이다."라고 하던 어른들의 말이 생각난다. 당연히 개똥이 굴러다니면 우습지 않은가? 라면서 깔깔거리던 날들이 그리워진다.

(사진:이종숙)

떨어진 낙엽들은 차에 쳐서 바스러지기도 하고 낙엽끼리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놀기도 한다. 떨어진 낙엽이 쌓이고 거리를 지저분하게 하니 거리 청소부는 낙엽을 기계로 불어 모아서 백에 집어넣는다. 빗자루로 쓸고 갈퀴로 긁어 백에 넣는 허리 굽은 노인이 보인다. 누렇게 말라서 떨어져 퇴색하는 나뭇잎의 모습을 닮았다. 가을은 화려하나 초라하고, 아름다우나 허무하다. 이파리 하나 없이 떨어진 나뭇가지는 황량함만 남는다. 다 떠나버린 텅 빈 들판은 조용히 겨울을 기다리며 봄을 꿈꾼다. 절망이지만 희망이 있기에 아름답다. 나무들처럼 욕심 없이 우리 인간도 마음을 비울 수 있었으면 어떨까? 쉽지 않을 것이다.

(사진:이종숙)

가을은 기쁘지만 우울하고, 가을은 이별 속에 만남을 기약한다. 보이지 않는 가슴속의 아픔을 기억하고 희망 속에 치유하는 가을이 깊어간다. 죽은듯한 나무에 몇 개의 나뭇잎이 붙어 바람에 흔들리며  살아있다고 전한다. 내년을 기약하는 몇 개의 생명이 애처롭다. 우리의 삶도 어디에서 어떻게 끝을 맞을지 모른다. 끝없는 생각으로 힘들어하다가 떠나는 날에 힘을 빼고 가는 것이 인생이다. 힘을 뺀다는 말을 하니 수영 배울 때가 생각난다. 빠져 죽을까 봐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수영을 하니 접시물보다 더 얕은 곳에서도 빠질 뻔했다. 수영을 배우며 물에서는 힘을 빼면 살고 힘을 주면 죽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인간은 힘을 빼는 순간 죽는 것도 배웠다.

(사진:이종숙)

흙이 되어 가는 낙엽처럼 언젠가 우리도 흙이 되리라. 많이 가진 사람도, 많이 배운 사람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모두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어디론가 사라져 묻힐 것이다. 어제 보이던 나뭇잎이 오늘은 보이지 않고 오늘 있던 사람이 어느 날 떠나간다. 이별은 슬프지만 자연의 순환이다. 가고 오고 또 가고 오며 세상은 영원하다. 저 나뭇잎이 땅에 떨어져 썩어 없어지고 뿌리는 다시 잎을 만든다. 파란 이파리가 빨간 열매를 남기고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모습이 보인다. 어느 날 저 열매도 땅으로 떨어져 흙이 되어 다시 피어날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 번성하며 죽고 헤어지며 다시 만난다. 오늘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시작인 듯 시작이 아니고 끝인 듯 끝이 아닌 낙엽처럼 인생도 피고 진다.

(사진:이종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