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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Oct 09. 2020

잔잔한 행복에... 살맛 나는 오후


(사진:이종숙)



끝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고속도로 옆에 있는 골프장을 지나간다. 가을 날씨가 좋아 골프장엔 여러 명의 골퍼들이 며칠 안 남은 가을을 즐기며 골프를 치고 있다. 잘 가꾼 골프장은 여전히 푸르고 아름답다. 작년 같으면 9월에 온 눈 때문에 골프장은 문을 닫고 하얀 들판만 쓸쓸하게 있을 텐데 올해 가을은 정말 좋다. 추수가 끝난 곳이 있고, 아직 하지 못한 곳도 있고, 지금 들판에서 뿌연 먼지를 내며 추수를 하는 곳도 보인다. 더 춥기 전에 추수를 끝내고 싶어 마음이 바쁠 것이다. 농부들의 가을은 추수를 끝내야만 한 해가 끝나기 때문에 한시가 바쁘다. 올해처럼 추수철에 비도 안 오고 눈도 안 온 해는 거의 없다. 해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추수를 방해하는데 올해는 추수하기에 참 좋은 날씨다. 누런 황금물결이 넘실대고 추수가 끝낸 땅은 내년을 위해 땅을 뒤집어 놓아 검은색의 들판을 보는 눈을 기분 좋게 한다.


하늘에 구름은 있지만 비는 오지 않는 고속도로는 한가하다. 이번 주말은 추수감사절이라 온 가족이 모여 칠면조도 굽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텐데 나날이 증가하는 확진자로 만남을 자제한다.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만 모여 식사를 하라 하니 아이들도 오지 않은 채 남편과 둘이 쓸쓸한 추수감사절을 지내야 한다. 가족이 모여 먹고 노는 것 마저 할 수 없는 현실이 싫다. 날씨라도 좋으면 뒤뜰에서 바비큐 하며 시간을 함께 할 텐데 일기예보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 조용히 보낼 것 같다. 고속도로에 오랜만에 나와 달리니 속까지 시원하다. 끝이 없는 들판에 건초 덩이가 여기저기 둥글어 다닌다. 보기만 해도 참으로 평화로운 모습이다. 소들도, 말들도 한가로이 풀을 뜯는 풍경도 멀리 보인다. 하늘이 호수 안에 내려앉아 자리를 잡고 한가로이 쉬어가는 모습을 본다. 매일매일 잊고 살아가는 평화가 들판에 있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집에서 뱅뱅 돌고 산책길에서 오르내리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렇게 나오니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나이가 들어 특별히 오가는 곳이 없는데 코로나는 그것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성당을 못 간지도 7개월이 지난다. 3월 중순에 모든 공공시설을 문을 닫아 집콕을 하다 보니 그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장을 보러 가서도 살 것만 사고 후 닥 나오고 사람들과의 모임도 없이 살아야 했다. 처음에는 이게 사람 사는 것인가 했는데 그렇게 살게 되었다. 일상을 빼앗기고 새로운 일상이 생기고 적응하며 살아간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아들네도 가고 온천도 가며 여기저기 구경삼아 이 고속도로를 몇 번 오고 갔을 텐데 오랜만에 나오니 새삼스레 좋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도 남편과 둘이 나와 시골 풍경을 둘러보니 마음이 푸근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어디 가고 싶어도 아이들 때문에 뒤로 미뤘지만 지금은 가자! 하면 간다.




(사진:이종숙)



생각할 것도 계획할 것도 없다. 날씨 좋은 날 한가하고 심심하면 어디든 간다. 집에 있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콧바람을 쏘이면 시간도 지루하지 않고 마음에 변화를 준다. 멀리 갈 수 없으면 가까운 곳이라도 한 바퀴 돌면 어딘가 여행이라도 다녀온 기분이 된다. 여기저기 단풍이 들어 세상이 노란색이다. 불과 시내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시내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시내는 아무래도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고 정신없는데 시골은 정말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한적하다. 커다란 땅에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농들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땅에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산다. 봄에는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 들판이 노랗게 물들고 꽃이 지면 들판이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고 가을에는 황금색이 된다. 그들 나름대로 근심 걱정이 있겠지만 욕심 없이 살아간다.


여기저기 커다란 곡식창고가 들판에 서있고 땅이 넓어서 그런지 집들도 엄청 크다. 모든 것들이 기계화되어 살기도 편하고 일하기도 좋다. 지나가다 보니 커다란 집에 여러 대의 트랙터들이 마당에 서 있다. 추수를 다 끝내고 겨울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이곳 농부들은 여름에 일하고 겨울에는 미국 따뜻한 곳에 가서 겨울을 보내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겨울이 혹독하게 춥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난다.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으면 한겨울에 몇 달간 휴가를 다녀오면 추운 겨울이 짧아지기에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간다. 앞으로 난 길이 시원하게 쭉 뻗어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동네가 보인다. 시내에서 얼마 안 떨어진 위성도시라서 없는 게 없다. 멋진 성당이 언덕 위에 있고 사람들이 오고 가고 바쁘다. 코로나가 있다고 하지만 사람들을 집안에 마냥 붙잡아 놓을 수는 없나 보다.


안 나가고 살 수 없지만 자제는 해야 할 것 같다. 봄이 언제 왔다 갔는지 여름도 가고 가을도 깊어가고 낙엽이 거리를 여기저기 뒹군다. 이렇게 한 해가 가고 나면 또 다른 해가 오건만 세상이 왠지 메말라가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 사람들과 오고 가며 이야기하고 살 수 있는 날들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며 피하고 멀리하고 사는 모습이 싫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한 바퀴 돌며 잠깐이라도 세상을 돌아보니 기분이 좋다. 남편도 덕분에 시골 구경 잘했다며 다음에 또 나오자고 한다. 숲 속의 오솔길을 걸으며 보는 하늘도 좋지만 어쩌다 나온 드라이브 데이트도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이 시간에 집에 있으면 점심 먹은 식곤증에 낮잠을 자고 있겠지만 이렇게 나와서 세상 구경을 하니  잠은 저만치 도망가고 아름다운 산천에 빠져들었다.


작은 여행이 가져다주는 잔잔한 행복에 살맛 나는 오후를 만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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