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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Nov 29. 2020

세월은 무심히 가고...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미국의 대명절인 추수감사절 주말이다. 확산이 폭등할 것을 염려해서 집에 있으라고 하지만 사람들의 고향을 향하는 마음은 잡을 수 없다. 코로나 전쟁 중인 이번 추수감사절에 여행객으로 비행장이 넘쳐난다. 그들은 코로나가 두렵지만 명절을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아 그동안 만나지 못하던 가족을 만나러 간다. 유행병이 세계를 덮쳐 사람들의 발길을 묶어 놓아도 그들의 그림움을 막지 못하나 보다. 미국은 지금 연일 나오는 어마어마한 확진자와 사망자로 뒤집어지고 사람들의 인내심도 바닥을 쳐서 거의 폭발 직전에 있다. 폭동과 데모에 도시는 미쳐가고 사람들은 절망 속에 지쳐가며 울분을 참지 못하고 미국 정부는  코로나가 파놓은 구렁텅이로 깊이깊이 빠져들고 있을 뿐 대책이 없다. 사람들은 체념반, 희망반 추수감사절 명절을 맞아 그들 나름대로 계획하며 지낸다.


캐나다 추수감사절은 이미 한 달 전에 지나갔고 아이들도 오지 못한 추수감사절을 쓸쓸히 보냈다. 작년에 아이들과 함께 했던 추수감사절 생각이 난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추수감사절에 터키 디너를 원한다. 터키를 굽고 매시 포테이토를 만들고 그레비 소스를 만든다. 여러 가지 샐러드와 삶은 야채를 준비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파이와 케이크를 만든다. 한식을 좋아하는 며느리들을 위해서 나물 몇 가지도 만들어 놓는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이것저것 꺼내놓고 만들면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게 된다. 그렇게 차리던 것을 올해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지나버려 서운한 마음에 그냥 지나버린 추수감사절이 다시 생각나서 그때로 돌아가 기뻤던 그날을 추억한다.




2019년 10월 14일 캐나다 추수감사절의 일기를 꺼내 읽어본다.


(사진:이종숙)


추수 감사절에 아이들이 온다 하니 며칠 전에 터키를 샀다. 많이 먹지는 않지만 추수 감사절에는 터키가 주 요리이기 때문에 없으면 왠지 서운하다. 작은 것으로 산다고 샀는데 워낙 큰 새이기 때문에 꽤 무겁다. 며칠 전부터 서서히 녹여서 오븐에 5시간 정도 구워야 한다. 추수 감사절은 몇 안 되는 주요 공휴일이기에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여서 큰 잔치를 한다. 커다란 터키를 굽고 가을에 추수한  햇곡식과 신선한 과일로 풍성한 상을 차린다. 추수한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 조상님의 제사상에 올리며 한 해 동안 무탈하게 보살펴 주심에 감사함을 전하는 한국의 추석과 같다. 지금이야 물질적으로  족하여 특별한 때가 아니더라도 사고 싶은 것 사고, 입고 싶은 것 입어가며 먹고 싶은 것을 먹고살지만 모든 것들이 부족했던 시절에 추석에 부모님이 추석빔으로 사 주신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가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나.


세상이 다 내 것 인양 뽐내고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이렇게 아이들이 한꺼번에 올 때는 마음이 바빠진다. 남편은 청소를 담당하고 나는 요리를 준비하며 재료를 사다 놓는다. 식당을 오랫동안 운영한 나로서는 몇십 명의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퇴직한 지 몇 년이 지나니 그것도 옛 말이다. 머리로는 생각을 하지만 몸과 손이 따라주지 않으니 나물 한 가지 국 한솥  만드는 데도 우왕좌왕하게 되니 며칠 전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국거리 장만하고 나물들 불려서 씻어서 잘라놓고 후식으로 먹을 것을 만들어 놓으면 나름대로 수월해서 아이들이 왔을 때 같이 시간을 함께 하며 손주들의 재롱도 볼 수 있다. 멀리 있으면 보고 싶고 궁금해서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만사가 그리 쉽지 않다.


직장생활에 육아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이니  시어머니가 해 주는 밥 먹고 잠시 편히 쉬다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기에 내가 최선을 다해서 해주다 보면 애들이 가면 녹초가 된다. 또래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면 그들 역시 나와 다를 바 없다며 행복한 고민을 한다. 막내네 빼고 두 아들 식구와  조카네 식구까지 13명이 모였다. 터키도 잘 구워졌고 반찬도 모두 맛있게 만들어졌다.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여서 환담을 나누며 한 해 동안의 무고함에 감사하며 나름대로 힘들었던 한해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추수감사절은 이렇게 지나가고 아이들은 벌써 두 달 정도 남은 크리스마스를 이야기한다. 일주일 정도의 연말 휴가를 받는 아이들이니 많이 설레는지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며 희망을 갖는다. 꿈이라도 멋지게 꾸며 살아가는 것이 젊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적대던 아이들이  떠난 집은 고요하다. 적막함이 싫지만 다들 평범한 일상에 돌아가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을 생각하며 아이들이 살고 있는 곳을 향해 사랑을 전해 본다.



(사진:이종숙)


지난해 적어놓았던 일기를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렇게 보냈던 추수감사절인데 올해는 너무나 쓸쓸하게 보내버렸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오지만 올해는 그것마저 작년과 다를 것이다. 아이들이 없는 크리스마스는 이민 40년 만에 처음이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영상으로 하는 크리스마스날을 계획하고 있지만 여전히 쓸쓸함을 면할 수 없다. 가족이 만나는 시간의 소중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다 보니 무엇이 소중한 것인가 더 생각하게 된다. 아무것도 없었던 이민 생활 초창기에 돈벌이에 정신없어 애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도 가물하다. 어린것들 보다 일찍 출근하고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아침 먹고 문 잠그고 학교를 다녔다. 학교가 끝나서 집에 와도 엄마가 없으니 저희들끼리 간식을 챙겨 먹고 놀곤 했다. 아닌 말로 내가 아이들을 키운 것이 아니고 저희들이 키운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한 세월이 지금에 와서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때는 못 해 줬지만 지금은 잘해 줘야지 하는 마음은 가득한데 몸이 따라 주지 않으니 생각만으로 끝낼 때가 많다. 부모가 사는 집이라고 공휴일 때마다 즐겁게 찾아오는 아이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이제는 손맛도 떨어져 맛이 덜 데도 "엄마 음식이 최고" 며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이 정말 고맙다. 추수 감사절에 자연에 대한 감사도 감사지만 부족한 가정에서 구김살 없이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이제는 그 아이들이 손자 손녀를 데리고 와서 예쁜 재롱을 보여주니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나. 험난했던 지난날의 기억은 희미해져 가고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는 날만 남았다. 아이들이 우리 나이가 되었을 때는 우리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저희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추수감사절을 맞아 코로나로 시끄러운 시국에 텔레비전을 보며 어서 빨리 제대로 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이 사상 최대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방역수칙을 지키며 살아남는 것밖에 없음을 새삼 느낀다.

세월은 무심히 가고 우리는
여전히 오늘을 살아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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