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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Oct 23. 2020

사랑 듬뿍... 엄마표 우거지 돼지국밥


(사진:이종숙)




오늘 아침 온도는 영하 9도 체감온도는 영하 13도다. 구름이 껴있고 눈은 오기 싫은 것처럼 시시하게 내린다. 시시하게 내려도 꾸준히 와서 길거리를 덮어 겨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날은 얼큰하고 구수한 엄마표 육수로 끓인 국밥이 생각나는 날이다. 어제 사다 놓은 돼지고기에 뼈가 있어 우려낸 국물에 우거지를 넣어 국밥을 만들고 있다. 우거지 국을 만들고 있으니 엄마표 국밥이 생각난다.




엄마는 뼈국물을 늘 만들어 놓으시고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마다 얼려놓은 국물을 녹여서 사용하셨다. 어릴 때부터 나는 엄마가 끓이는 국이 너무 맛있어서 엄마에게 특별한 비결이 있다고 생각했다. 국이나 찌개를 만들 때마다 엄마는 두부 한 모 크기의 뽀얀 덩어리를 하나씩 집어넣어 끓이셨다. 특별히 넣은 것이 없는데도 엄마가 만든 국은 달랐다. 처음에 나는 두부를 넣는 줄 알았다. 하지만 국에 두부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우거짓국과 된장찌개 그리고 김치찌개를 비롯해서 잡탕찌개까지 두부는 없었다. 하루는 엄마한테 매일 국을 끓일 때 두부를 넣는데 왜 두부가 없느냐고 엄마한테 따졌다. 엄마는 처음에 어리둥절하시더니 배꼽을 쥐고 웃으시며 그건 두부가 아니고 뼈를 고운 국물이라며 자초지종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셨다.


그 뒤부터는 나는 엄마 국의 맛있는 비결을 알았고 두부를 찾지 않았지만 엄마는 내가 두부를 먹고 싶어 하는 줄 알고 어느 국을 만들어도 두부를 넣어주셨다. 세월이 흐르고 나도 국을 맛있게 끓이는 엄마가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만든 국이 최고 맛있다고 한다. 나 역시 틈만 나면 뼈를 우려서 육수를 만들어 얼려놓고 국을 끓일 때마다 나도 두부 같이 생긴 뼈 우린 국물을 한 덩어리씩 집어넣고 끓인다. 뼈를 끓일 때 여러 가지를 넣고 끓인다. 양파도 넣고 마늘도 몇 개 집어넣고 다 끓이고 나면 체에 밭쳐서 건더기는 버리고 국물만 작은 그릇에 넣어 얼린다. 아무 때나 국이 먹고 싶을 때는 그 육수를 하나씩 꺼내서 국을 만든다. 오늘같이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유난히 국밥 생각이 난다. 옛날 같으면 국밥이 생각나면 오다가다 국밥 맛있게 하는 식당으로 가서 한 그릇 사 먹을 텐데 요즘엔 그것도 용이치 않다.


집에 있다가 사 먹으러 나가기도 귀찮고 식당에 들어가기 위해 줄 서기도 그렇고 방역지침도 성가시니 집에서 뭐라도 넣고 끓여 먹는 게 훨씬 좋다. 어제 마침 장 보러 가서 돼지고기 한 덩어리를 샀다. 돼지고기 한 덩어리 사면 이것저것 해 먹을 수 있어 좋다. 볶아도 맛있고 삶아도 맛있다. 어깨살이라서 무엇을 해도 맛있다. 고기 한쪽을 썰어놓고 반으로 자르려는데 칼이 안 들어간다. 속에 뼈가 있는 것을 모르고 샀다. 불고기감으로 살코기 조금 떼어놓고 대충 물을 붓고 푹 고았다. 고아 놓은 국물에 얼려놓은 우거지를 녹여서 넣고 된장 고추장을 넣고 푹 끓였다. 고춧가루도 한 숟가락 넣고 마늘과 생강도 넣었다. 두부와 양파와 감자를  넣으니 완성이다. 색이 그럴싸하게 근사하다. 감자탕과 비슷하게 생겼다. 기가 막히게 맛있는 국밥이 되어 간다.


특별히 육수를 집어넣지 않아도 제대로 된 국밥이 되었다. 국물이 시원찮을 때는 만들어 놓은 육수를 넣지만 오늘은 즉석에서 육수가 만들어져 굳이 얼려놓은 육수를 안 넣었지만 국밥을 끓여 놓으니 엄마가 끓여주던 국이 생각난다. 고기가 흔치 않던 그 시절에 엄마는 고기 없는 국을 육수로 만드셨던 것이다. 고기를 넣고 온갖 야채를 넣고 끓인 국 보다 훨씬 맛있었던 엄마의 국밥... 나는 그 국밥의 맛을 흉내 내며 냉동고에 얼려 놓은 육수 한 덩어리를 꺼내 국밥을 끓인다. 우거짓국 김칫국 된장국 고추장 생선찌개 등 관계없이 어디든지 집어넣기만 하면 최고의 맛을 내는 엄마의 육수에는 엄마의 변함없는 사랑을 넣으셨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나는 두 명의 며느리와 한 명의 사위를 둔 시어머니와 장모가 되었다. 어쩌다 집에 와서 식사를 할 때는 국밥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국밥을 끓인다.


건더기를 빡빡하게 넣어 만든 국밥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엄마표 육수로 국밥을 만들어 주면 몇 그릇이고 맛있게 먹는다. 시어머니가 정성 들여 싸준 음식을 고속도로변에 버린다는 요즘 세상에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도 너무 고맙다. 세상에서 어머니 국밥이 최고 맛있다며 코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맛있게 먹는 며느리들과 사위가 너무 사랑스럽다. 나의 육수 비결을 이야기해주며 맛있는 국밥 이야기를 한다. 아직은 살기 바빠 육수를 해놓고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지만 이렇게 해주다 보면 어느 날 내 육수 맛이 생각날 때 해 먹을 것이다. 사랑 듬뿍 들어있는 엄마표 육수 저장법은 이렇게 자자손손 전수해 내려간다. 오랜만에 끓인 국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국밥에는 아무런 반찬이 필요 없다. 김치 한 가지만 있으면 족하다. 남편과 나는 잘못 사 온 돼지고기 덕분에 생각지 못한 우거지 돼지국밥을 먹으며 행복하다.


유난히 국밥을 좋아하는 남편은 아내표 육수가 최고라고 엄지 척을 올린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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