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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Oct 31. 2020

허허 웃고 살면... 술술 풀리는 인생살이


(사진:이종숙)



웃음이 많아졌다. 한심해서 웃고, 기막혀서 웃고, 엉뚱해서 웃는다. 하지도 않았는데 했다고 하면 억울해서 웃고, 하고도 안 했다고 우기는 모습에 기막혀서 웃는다. 남편과 나의 늙어가는 모습이 정말 희극이다. 돈 주고도 못 보는 재밌는 쇼다. 그런 쇼를 매일 보고 산다. 찾으려는 물건이 어딘가 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장소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서랍 어디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며 살았는데 그 기억력이 어디 갔는지 어렴풋이 떠오를 뿐 잘 모르겠다. 생각 없이 산다. 생각이 없으니 걱정도 없어진다. 머리가 복잡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모르며 살아왔는데 이상하리만치 단순해졌다. 아이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어린아이들은 웃고 울고 자고 힘들면 울고 편하면 웃고 행복하다. 영락없는 아이의 생활이다. 먹고 자고 놀고 피곤하면 누워 자고 뒹굴거리며 산다.


머리를 쓰지 않는 생활이다. 눈으로 보고 좋으면 웃고 슬프면 울고 귀찮으면 안 하며 원초적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머리가 나빠지는 것 같아 무언가를 읽고 쓰려고 하면 금방 싫증이 난다. 몸의 힘이 빠져서 힘든 일도 잘 못한다. 한 가지 진득하게 하지 못하고 괜히 일만 벌여 놓는다. 하나를 해도 완벽하게 하지 못한 채 내일로 미루기만 한다. 시간이 너무 많아 생긴 병이다. 어제 무엇을 했는지 생각이 안 난다. 좀 전에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금방 잊어버린다. 옛날에 알던 사람들의 이름도 까마득하게 모른다. 치매는 아니지만 건망증일 것이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라고 말하고 조금 있다가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매일이 주말이고 공휴일이다. 겉으로 보면 멀쩡한데 머리는 텅 비어 간다. 아무런 생각도 안 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른다. 말을 하려면 단어가 입에서 맴돌지만 안 나온다.


며칠 전 옛날에 중국집을 운영하던 사람을 먼발치에서 보았다. 그런데 그 중국집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자주 가던 중국집인데 이름이 도통 생각이 안 나고 국집. 짬뽕, 다 먹어, 너구리, 엉뚱한 이름만 입에서 나올 뿐 그 식당 이름은 전혀 생각이 안 난다. 남편과 나는 깔깔대며 웃는다. 기가 막혀서 웃는다. 생각이 날 둥 말 둥 하면서 안 난다. 정작 필요한 것은 생각 안 나고 필요 없는 것은 아무 때나 생각난다. 그때 만해도 한국 짜장면을 만드는 중국집이 이곳엔 없었던 때 그 사람은 짜장면 식당을 차려 그야말로 대박이 난 사람이다. 당 미사가 끝나면 우르르 몰려 가고, 운동하는 청년들이 몰려가서 곱빼기로 먹었다.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귀한 짜장면 한 그릇씩 사 주며 생색을 냈다. 눈 오는 날,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고국이 생각는 짜장을 먹으며 향수를 달랬다. 짜장집은 손님들로 넘쳐났다.




(사진:이종숙)



한국을 떠나 와서 짜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그 식당밖에 없었기에 사람들은 구름 떼같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곧바로 분점을 내고 여기저기 봉사활동을 하며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며 자리를 잡았다. 그 후 몇 년을 장사하다가 팔고 이사를 간 뒤로 가지 않았다. 그렇게 발이 닳도록 자주 다녔던 식당인데 몇 년 안 갔다고 식당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엇을 했는지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이 안 난다. 남편하고 서로 생각하다 지쳐서 잊고 있다가 며칠 지난 후에 뜬금없이 생각이 난다. 기억이 안 나는 것을 기억하려 하면 더 안 난다. 잊고 있으면 생각이 나니까 그냥 무시하고 잊어버린다. 머리는 안 쓰면 능력을 상실하는 것 같다. 날에 그 많던 전화번호를 다 외우고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려고 해도 기억이 났는데 지금은 몇 번을 들어도 모른다. 들어도 듣는 것이 아니고 봐도 보는 것이 아니다.


기억할 필요 없이, 암기할 필요 없이 알고 싶으면 찾아주고 대답해주는 인터넷이 있고 앱이 있다. 그런 것에 의존하다 보니 아무것도 모른다. 기계가 다 알아서 해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바쁜 현대인들은 기계에 의존하고 살아간다. 인공지능이 옆에서 말로 물어보면 대답해준다. 엉뚱한 대답을 하여 실망을 하기도 하지만 웬만한 건 다 알아서 해주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이 기계와 이야기하며 살아간다. 대화가 안되고 의견이 달라도 감정싸움을 할 필요도 없다. 기계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마음에 안 들고 신경질 나면 기계를 꺼버리면 된다. 이것이 인간이 원하는 세상이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될까 참으로 궁금하다. 인간이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면 인간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게 될까 궁금하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생각도 단순해지고 행동도 어린이와 같이 된다. 걸을 때도 조심하며 무언가에 의지하며 걷고,  뛴다고 뛰는데 걷는 모습이다.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것도 돌 지난 아이처럼 굼뜬다. 힘이 없어 도움을 청하고 모든 것에 자신이 없어진다. 멀리 가는 것도 싫고 집이 좋다. 옛날에 시어머니께서 놀러 오셨는데 며칠 주무시고 가신다고 억지를 부렸다. 이 멀리까지 오셨는데 마음이 불안했던 것인데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간신히 한 달을 채우고 가셨는데 그 마음을 지금은 이해할 것 같다. 상대를 이해함은 그 사람이 되어야 할 수 있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가니 알 수 없던 것들을 서서히 알게 된다. 슬픔도 그리움도 묽어져 그러려니 하게 됨을 속일 수 없다. 울다가 웃다가 하는 아이들과 똑같다. 금방 잊어버리고 산다. 어쩌면 적응을 잘한다고 할 수 있다.


젊을 때는 적응을 못해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모든 것에 적응을 잘하며 산다. 따지지 않고 싸우려 들지도 않고 이해하며 받아준다.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양보한다. 마음이 넓어져서 화도 잘 내지 않는다. 사람이 늙으면 어린애가 되고 인이 된다. 도가 통한 사람들을 보면 가만히 앉아서 말도 하지 않고 자는지 눈을 반쯤 뜨고 마냥 앉아있다. 자는가 하면 움직이고 죽었나 하면 움직인다. 아무런 감정도, 움직임도 없이 죽은 듯이 살아있고 살았는데 죽은 것 같다. 죽음의 세계를 연습하는 것 같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죽음의 세계가 그럴 것 같다.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것이 모든 것을 초월한 상태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몇십 년 아니 백 년 가까이 살아가다 죽는다. 자꾸만 짧아져가는 겨울 해처럼 우리네 인생도 짧아져간다. 루를 살면 하루가 짧아지는데 인상 쓰며 살 필요 없이 웃으며 살자. 허허 웃다 보면 안 풀리던 인생살이도 술술 풀릴지 모르니 많이 웃고 기쁘게 살자.


물건도 오래 쓰면 낡아서  버려야 하듯이 사람도 오래되면 쓸모가 없어 죽음으로 사라지나 보다.
버릴 때 버리더라도 사랑하고
사라질 때 사라지더라도 웃으며 살자.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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