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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Oct 30. 2020

하느님품에 안긴 형제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사진:이종숙)



하늘은 높고 맑다. 완벽한 가을 날씨다.  지난주에 성급하게 겨울이 와서 갑자기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고 눈까지 뿌렸지만 날씨는 좋다.  단풍잎을 마저 떨어뜨리지 못한 나무들이 얼어붙은 잎을 끌어안고 서 있다. 봄이 올 때까지 말라비틀어진 잎을 매달고 있을 것이다. 떨어질 때 떨어지지 못한 모습은 보기 흉하다.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고, 붙어있고 어도 떨어져야 하는 것이 인간삶처럼 세상에 무엇도 마음대로 안된다. 나라마다 코로나로 난리다. 3월 중순부터 락다운이 시작되면서 하루 이틀 기다리며 코로나와 함께한 세월이 8개월이 되어간다. 여름 한철 조금 나아진 듯하여 락다운을 풀고 정상이 되려나 했더니 다시 확진자가 증가하고 세계는 쩔쩔맨다. 경제는 땅에 떨어지고 코로나는 떠나지 않고 확진자와 사망자수는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직업을 잃고 경제난에 허덕인다.


모임을 자제하고 방역 수칙을 잘 지켜도 나아지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 온도가 올라가도, 온도가 내려가도 여전히 코로나는 극성이다. 연구원들은 원인을 찾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지만 나아지는 기색이 없이 심해진다. 두 자리 수가 되어도 세 자릿수가 되어도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요양원에 계시는 노인들은 외롭게 죽어가고 자식들은 쓸쓸히 살다가 죽어가는 부모를 멀리서 보며 안타까워한다. 손님이 왕이 아니고 코로나가 왕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은 옴짝달싹 못한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만 집에만 있을 수 없다. 코로나가 세상을 지배했다. 코로나가 경제를 쥐고 흔들고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한다. 부모 자식 간에 생이별을 시키고 가족들과의 만남조차 막는다. 8 월초에 아이들이 다녀가고 벌써 3개월이 되어간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와의 전쟁이다. 하라는 대로 해도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어제 이민초부터 알고 지내던 형제님이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시면서 가족들이 매일매일 병원에 가서 얼굴을 보고 오곤 했다. 열흘 전부터 코로나로 인해 출입이 통제되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손을 잡아주지 못한 가족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안타깝다. 요양원에 확진자가 생기며 며칠 사이로 확산되어 코로나로  갑자기 떠나셨다. 마지막 순간에 외롭게 계시다 쓸쓸히 떠나신 걸 생각하면 너무나 슬픈 일이다. 사람이 사는 동안 수많은 역경을 겪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가족을 만나는 희망이 있기 때문인데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다 돌아가셨을 생각을 하면 정말 안타깝다. 전염병으로 장례식도 제한된 인원만 참석하게 되었으니 평소에 알던 지인들마저 마지막 인사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조촐하게 장례식을 하며 사랑하는 남편을 보내고 아버지를 보내야 하는 자매님과 딸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아는 사람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던 이민 초기에 이민 선배님이셨던 그분은 우리를 이유 없이 진심으로 사랑해 주셨다.




(시진:이종숙)



향수병에 외로워 힘들어할 때도 집으로 불러주시고 용기를 주시며 물심양면으로 배려해 주셨다. 우리 아이들 결혼식 때 한국에서 오신 많은 식구들을 초대해서 만찬을 차려주셨고. 만날 때마다 손을 잡아주시며 우리들이 잘 살아가기를 기원하셨던 분들이기에 마음속으로 늘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았다. 요양원에 계셔서 자주 찾아뵙지는 못해도 갈 때마다 우리를 알아보시기에 다행스럽게 생각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나마 찾아뵐 수 없었다. 코로나가 나아지면 가봐야지 하던 차에 그분이 하늘나라로 가신 것이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지만 정말 코로나가 야속하다. 착하게 잘 살아온 사람들이 그렇게 쓸쓸히 떠나가는 것이 안쓰럽다. 가족의 따뜻한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떠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생이별을 하며 만나지 못한 채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캐나다로 이민 오셔서 딸들 기르며 힘겨운 이민생활을 잘 견디며 검소하게 잘 살아가셨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아이들이 잘 자라 의사와 간호원이 되어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아간다. 이민 초기에  살림집이 붙어있는 작은 식료품 가게를 하시며 자리를 잡아서 쇼핑센터에서  커다란 사업을 하셨는데 사기꾼에게 속아  큰 손해를 보고 시골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시며 조촐하게 사셨다. 신실한 가톨릭 신자이던 그분은 언제나 하느님만 믿고 따르며 성실하고 기쁘게 최선을 다하여 봉사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하루하루 열심히 사셨다. 말년에 가게를 팔고 시내에 나오셔서 사시다가 치매가 시작되면서 사람들과의 교류가 없어졌지만 매일매일 동네 성당을 다니시며 신앙생활을 하시며 소일하다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몇 번 받으며 몸이 망가졌다. 그 뒤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형제님의 치매는 심해져갔다.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봐도 남편과 나는 알아봤는데 지난 2월 코로나가 시작되기 한 달 전에 갔을 때는 알아보지 못해도 인자하게 웃으며 세상 이야기를 하셨던 생각이 난다. 엊그제도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형제님 소식이 궁금하다고 말을 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보니 황당하다. 이제 연세 80대 중반인데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셨을 텐데 떠나셨다. 무심한 하늘은 유난히 맑다. 떠나신 분은 떠나셨지만 남은 사람들은 못다 한 사랑에 슬퍼하며 그리움에 아파한다. 누구나 가는 길이라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 떠날 때는 마음이 아리다. 코로나는 극성을 피고 지구는 몸살을 앓아도 자연은 오고 간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은 손을 놓고 할 말을 잃어도 계절은 할 일을 한다. 작년 이맘때에 눈이 많이 왔었는데 다행히 올가을 날씨가 좋아서 가시는 길이 편안하실 것 같다.



안녕히 가세요.
긴 여행을 끝내고 하느님품으로 떠나신 형제님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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