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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Nov 03. 2020

빨갛게 화장한... 아름다운 하늘


(사진:이종숙)



동녘 하늘이 빨갛게 타오르며 아침해가 떠오른다. 가운데는 달걀노른자같이 샛노랗고 하늘 전체가 온통 진분홍색이다. 내 눈도 발갛게 물이 들었는지 세상이 온통 분홍색이다. 지붕도 나무도 땅도 모두 예쁘게 화장을 했다. 조물주가 만든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천재적인 화가가 세상에 물을 들였다. 세상의 온갖 것들은 빛으로 모습을 보인다. 창조주의 빛은 세상 그 무엇도 가릴 수 없고 감출 수도 숨길 수도 없다. 그 찬란한 빛 앞에서는 눈이 부셔 눈을 감으며 그분의 뜻을 읽는다. 


(사진:이종숙)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똑같다. 한 세상 잘살다 간 사람도 형편없이 살다 간 사람도 그분 앞에서는 하찮은 점조차도 안 되는 미세한 존재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얄팍한 인간의 계산으로 세상은 돌아가지만 아무도 그분을 거역하지 못한다. 어느새 집 앞에 있는 백양나무가 이파리를 몽땅 떨어뜨리고 하늘을 향해 팔을 들고 서 있다. 한 해 동안 무탈하게 살아온 날들에 대해 감사하는 모습이다. 그 옆에 등 굽은 소나무도 엎드려 절하며 수줍어한다.




(사진:이종숙)



말 못 하는 나무도 태양과 비와 바람에 감사하며 살아가는데 하물며 사람인 나는 불평만 하고 산다. 조금만 아파도, 조금만 맘에 안 들어도 짜증 내면서 산다. 조금만 미워도, 조금만 싫어도 불평불만이 많다. 하늘에 구름이 조용히 왔다 간다. 어느새 구름 뒤에 화사한 무지개가 뜬다. 무지개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다. 어릴 적 무지개를 보며 소원을 빌던 생각이 난다. 소원이라야 특별할 것 없는데도 소원을 빌면 꼭 이뤄질 것 같았다. 어디서 날아온 낙엽들인지 우리 집 뜰에서 편하게 쉰다. 너무 빨리 온 겨울 때문에 나뭇잎들이 나무에 붙어 얼어버려 바람이 불 때마다 바스락 거리며 외로움을 달랜다. 어느새 구름은 하늘을 다 덮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머지않아 가을은 겨울에 묻혀 사라질 것이다. 봄이 오기까지 깊은 잠을 잘 것이다.


가을이  가기를 기다리지 못하는 성급한 겨울이 다녀가서 라일락 나무는 이파리를 다 떨어뜨리고 알몸이 되어 서 있고 그 옆에 사과나무는 이파리가 몽땅 얼어버렸다. 떨어뜨릴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겠지만 다들 벌거벗었는데 저만 옷을 입고  있는 게 미안했는지 지저분한 윗가지가 하늘로 뻗치며 겨울을 맞는다. 이른 봄에 윗가지를 쳐주어야 하는데 이곳은 눈이 많이 쌓여있기 때문에  1,2월에 가지를 쳐줄 수가 없다. 남편이 날씨도 좋고 하니 윗가지를 잘라주어야 하겠다며 이발을 시켜주니 나무가 깨끗하다. 쭈글쭈글한 얼은 아파리를 달고 서있는 모습이 보기 흉했는데 내일 당장 겨울이 온다 해도 걱정이 없다. 사람이나 나무나 이발을 해주면 인물이 사는 것 같다.


서머타임이 끝나는 날이라서 해가 좀 길어진 듯하다. 봄에 해가 길어지며 시간을 한 시간 손해 봤는데 오늘(11월 1일)로 서머타임을 다시 받게 되어 아직 해가 보인다. 이제는 한국하고 시간 차이가 16시간이 된다. 지금 이곳은 오후 3시 50분 한국은 아침 7시 50분이 된다. 한 시간 차이가 나지만 어제 시간대로 졸리고 배고프고 깨고 한다. 한 시간도 시차가 있는 것이 신기하다. 그래도 한 시간을 다시 받고 보니 엄청 좋다. 잠을 더 잘 수 있고 늦게 일어나도 한 시간 일찍 일어난 시간이다. 봄에 다시 빼앗길 시간이지만 일단 지금은 기분 좋다. 시간이 많은 우리도 이렇게 좋은데 젊은 사람들은 특별 보너스 같은  한 시간이다. 겨울이 다가온다는 말인데도 이렇게 주고받으며 산다. 가을 안에 겨울이 있고 겨울 안에 봄이 있으리라 생각하니 봄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하늘이 화장을 몇 번 더 하다 보면 다시 봄을 만날 것이다.




(사진:이종숙)



석양이 되어 넘어간 해가 떠오르기 위해 어두운 밤을 지새워야 한다.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아픔을 이겨내야 한다. 지금 내게 온 것이 비록 작고 시시한 것이라도 긴 아픔 뒤에 찾아온 소중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이라고 그냥 버릴 수 없다. 작은 씨앗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하루가 모여서 긴 세월이 된다. 내게 온 하루는 아무런 보상을 원하지 않고 나를 찾아왔고 나를 떠난다. 기쁘게 살아도 슬프게 살아도 시간이 지나면 하루는 간다. 아침에 떠오른 아름다운 해를 보며 우리의 삶을 시작한다.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 기쁘게 살던 슬프게 살던 나의 선택 속에  나의 삶이 이끌어진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며 산다. 봄에는 여름을 기다리고 가을이 가지 않기를 기다리고 겨울이 오지 않기를 기다리며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오늘이 행복해도 더 나은 내일의 행복을 바라고 오지 않는 미래를 꿈꾼다. 해가 뜨고 해가 지기를 반복하며 세월 따라 살아간다. 저토록 아름다운 태양은 돌고 돌며 세상을 비추고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을 안겨준다. 어둠에 묻혀서 절망 속에 있어도 저 찬란한 태양을 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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