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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Nov 10. 2020

숲에 사는... 겨울을 만나고 오는 길은 행복하다


(사진:이종숙)



겨울을 만나러 숲으로 갔다. 영하 15도라고 해서 단단히 준비하고 걷는다. 하얀 눈이 숲을 덮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겨울 숲의 황홀한 모습으로 가슴이 뛴다. 조물주가 만든 아름다운 겨울에 감탄한다. 숲을 덮은 하얀 눈을 보며 강렬한 희열을 느끼는 아침이다. 엊그제 하루 종일 온 눈은 골짜기를 고, 계곡에 누워서 하늘을 보며 가지마다 앉아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새들과 노느라고 바쁘다. 새들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날아다니고 가지에 있던 눈은 살며시 아래로 떨어진다. 숲 속의 겨울은 포근하다. 이파리가 다 떨어져 속살을 내보이던 황량한 늦가을의 모습을 눈으로 감싸 안아 주기에 더없이 따뜻하다. 오솔길에 누운 채 잠들어버린 낙엽도 눈 쌓인 나무 옆에서 달콤한 꿈을 꾼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숲 속은 고요하다. 며칠 못 봤다고 하얀 눈옷을 입은 나무들이 엄청 반가워한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몹시 차지만 조금씩 몸에서 열이나 더워지기 시작한다. 집에 있을까 하다가 나오니 너무 좋다. 춥다고 집에 있으면 게으름이 자리를 잡아 밖으로 나가기 싫어진다. 이제 시작한 추위에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 특히 올 한 해는 코로나가 훼방을 하는 바람에 수영장도 못 가고 있는데 산책마저 안 하면 배에 계급장이 생긴다. 작년 이맘때는 날씨가 좋으면 산책을 가고 날씨가 추우면 수영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지난겨울도 올해만큼 예뻤을 텐데 자주 가지 못해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무래도 겨울에 밖에 나가 걸으면 감기라도 걸릴까 봐 수영장을 더 자주 갔나 보다. 세월 따라 일상이 바뀌고 삶의 범위가 조금씩 달라진다. 올해는 봄부터 코로나로 인해 수영장을 못 가서 숲을 많이 찾았다. 걷다 보면 어영부영 대략 만보를 걷는다. 오르고 내리고 하다 보면 더워서 장갑을 벗고 모자를 벗는다.



(사진:이종숙)



아침에 나올 때는 썰렁한 것 같아 든든하게 입고 나오게 되는데 얼마 걷다 보면 하나씩 허물을 벗는다. 조금 추워도 참고 가볍게 입고 나와야 하는데 엄살이 심한 나는 매번 두껍게 입고 나와서 남편에게 짐을 더해준다. 하나 벗고 걷다가 보면 더워서 마저 벗고 가벼운 티셔츠 차림으로 걷게 되는데 오늘은 날씨가 추워 약간 더운 듯해도 그냥 걷는다. 집에서는 두껍게 입어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으슬으슬 추운데 숲을 걸으면 좋은 기운을 받아서 젊어지는 것 같다. 열심히 고갯길을 오르다 보면 계곡이 보이고 계곡을 끼고 걷다 보면 또 오르막 길을 만난다. 우리네 인생이 거기에 있다. 나무  하나가 누워서 쉬고 있다. 한참을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다. 조금 쉬었다 가려고 누운 나무에 앉아 본다. 아주 편하다. 입에서 '쉬었다 가세, 쉬었다 가세, 힘들면 조금 쉬었다 가세'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잘 가꾸어진 숲에는 의자들이 군데군데 놓여있어 힘들면 앉았다 가는데 이곳은 손이 타지 않은 곳이라서 의자가 없다. 만 보를 쉬지 않고 걸어도 숲이 좋아 앉지 않았는데 오늘은 길이 미끄러워 신경을 써서 그런지 조금 쉬고 싶다. 하늘을 본다. 눈을 물고 있을 때는 하얗고 핼쑥했는데 파란 물이 떨어질 듯 파랗다. 사람도 근심 걱정이 있을 때는 우울해 보이고 혈색이 안 좋은 것처럼 하늘도 눈을 다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한가 보다. 계곡은 이제 완벽한 겨울의 자태다. 물을 감춘 계곡은 얼음이 두껍게 얼어가고 봄이나 되어야 요염하게 물이 흐를 것이다. 며칠 전에도 물속을 텀벙대며 들랑거리던 수달은 어디서 겨울을 낼까 궁금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계곡 물에서 수영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숨바꼭질을 하던 수달은 아마도 땅굴을 파고 어디선가 겨울을 낼 것이다. 자연을 따라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사진:이종숙)



언제 무엇이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모른다. 어제 있던 것들은 보이지 않고 새로운 것들이 눈에 보인 다. 여러 번 지나면서도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보이던 것들이 숨어버린다. 누군가 잃어버린 개 목끈이 나무에 걸려있고 장난치며 지나가다 떨어뜨린 아이들 장갑도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언제라도 주인이 다시 와서 찾아가면 좋겠다. 지난겨울 신발에서 빠져나간 아이젠을 누군가 나뭇가지에 걸어놓아 찾았을 때 너무 좋았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잃어버리면 찜찜하고 시시한 것도 잃었다 다시 찾으면 반갑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더 이상 쓰지 않는 것도 끌어안고 살고, 버릴 것도 아까워하듯이 잃어버린 물건은 아무리 작은 것도 잊히지 않는다. 눈이 많이 와서 걷기가 힘들다. 어떤 곳은 무릎까지 들어가고 아무도 밟지 않은 숲 속은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로 눈이 부시다.


늦가을까지 버티던 잡풀들도 이제는 눈이 덮어버려 보이지 않는다. 눈은 더럽고 추한 모습들을 봄에 아름다운 이파리가 나올 때까지 숨겨놓는다. 숲 속의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처음 만난 강아지처럼 뛰어다니고 싶다. 이제 겨울이 시작되었으니 좋든 싫든  함께 살아야 한다. 6개월의 겨울이 싫어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곳으로 가서 겨울을 내고 오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할 수가 없다. 싫다고 도망칠 수도 없으니 함께 손잡고 공생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선택으로 이어진다. 긍정의 선택은 긍정의 결과를 가져다준다. 삶은 내게 언제나 선택을 요구한다. 선택하지 않는 것은 죽음이다. 오늘 내게 온 것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불행이 앞장을 선다. 아픔이 되었던 슬픔이 되었던 함께 가다 보면 좋은 날을 만나지만 싫다고 주저 않아 있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한 발씩 가다 보면 고갯길을 넘어 평지에 도달한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눈과 함께 서있다.(사진:이종숙)


어디서 온 구름인지 새털처럼 포개져 태양의 둘레를 감싸 안고 있다. 숲에 사는 겨울을 만나고 오는 길은 행복하다. 남편과 하늘을 보며 숲을 걸으며 살아가는 오늘 이 순간이 좋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함께 걸어가며 어제를 이야기하고 오늘을 살며 내일을 꿈꾸며 나누는 삶에 감사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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