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시작된 지 몇 시간이 지났다. 오늘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생각해 본다. 출근도, 퇴근도 없이 살고 있는 나는 몇 년 전에 정년퇴직을 한 백수다. 세상만사가 급할 것 없으니 미루며 산다. 지금 못하면 이따가 하고 오늘 못하면 내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라는 말을 항상 염두에 두고 평생을 뛰며 살았는데 지금은 매사를 천천히 하고 산다. 옆집 할아버지가 밖에 나와서 차 유리창에 있는 서리를 긁고 서있다. 아이처럼 살살하는 모습이 귀엽다. 급할 것도 없지만 빨리 되지 않아 천천히 한다. 그걸 빨리 하고 나면 할 일이 없어 심심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큰일처럼 벼르고 나누어서 한다. 나이가 들면 다 그렇게 되나 보다. 할 일을 안 한다고 말할 사람도 없고 오늘 일을 안 했다고 독촉을 하는 사람도 없다. 걱정도 없고 근심도 없다.
심심하면 무언가 하다가 힘들면 아무 때나 쉰다. 시간이 없을 때 그렇게 하고 싶던 것들이 많았는데 시간이 많은 지금은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 흥미도 없고 재미도 없이 하루하루 먹고 놀고 자며 애들같이 산다. 학교를 가기도 애매하고 집에 있는 것도 심심한 여섯 살짜리 애가 된 것 같다. 일하기도 뭐하고 시간은 많은데 집에서 특별히 할 것이 없으니 뒹굴어 다니는 돌멩이나 깡통을 발길로 툭툭 차며 어디 말썽 필 것 없나 하며 동네를 돌아다니는 애가 된 것 같다. 뒷집에 사는 애들이 할 일이 없는지 멀쩡한 자전거를 뒤집어 놓고 바퀴를 돌려본다. 하릴없이 심심하니까 괜히 이것저것 해본다. 사람이 할 일이 없고 갈 데도 없고 만날 사람이 없다는 게 참 한심한 것 같은데 코로나로 그렇게 살다 보니 그것도 괜찮다. 일단은 먹고 살 걱정이 없다는 것은 어쨌거나 나쁘지 않다.
(사진:이종숙)
이민 와서 젊음과 청춘을 다 바쳐 일하며 몇십 년 동안 엄청난 세금을 냈으니 정부가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매달 용돈을 준다. 많이 벌면 많이 버는 대로 세금을 왕창 내야 하지만 돈 없고 직업이 없으면 보조도 해주니 열심히 낼 것 내가며 살았다. 돈을 벌다 보니 청춘은 가고 내 인생의 가을을 맞아 살고 있다. 계절은 어느새 겨울이 깊어가고 있지만 어차피 겨울에는 모든 생물이 성장을 멈추고 휴식에 들어가고 꽃 피고 새 우는 봄은 머지않아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 어영부영하다 보면 하루가 간다. 산책을 다녀오면 벌써 하루는 반이 지나가고 점심 먹고 한숨 자면 해가 떨어져 밖은 이미 깜깜하다.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서 앉아서 뉴스도 보고 연속극도 보며 시간을 보낸다.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매일매일을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어 쩔쩔매며 살았는데 시간이 남아돈다.
목적도 없고 일할 필요도 없이 하루가 오면 그 하루를 살고 자고 나서 또 다른 하루를 맞는다. 뉴스를 보면 걱정거리 투성이다. 코로나는 극성이고 생필품값은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연말은 다가오는데 집에서 문 닫고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공공시설은 문을 닫고 거의 봉쇄 상태로 들어가니 소상인들은 울상인데 해결책은 없다. 한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속상한 뉴스만 보이니 차라리 뉴스를 안 보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눈을 뜨면 새로운 뉴스가 넘쳐 나는데 기쁘고 좋은 소식은 없고 한심한 소식만 들린다. 일을 안 해도 연금을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는 괜찮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젊은 사람들이 걱정이다. 많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고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젊어 한때 열심히 벌어먹고 살며 저축도 해야 할 텐데 실업자들이 많으니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
(사진:이종숙)
나이가 들어 정년퇴직을 하면 여행도 다니고 손주들과 재미있게 놀며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며 산다고 계획했다. 그런데 막상 시간이 많으니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다 보니 계획대로 안되었는데 코로나가 손발을 묶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코로나가 없어지겠지만 오늘의 내가 아니다. 시간은 가고 세월도 가고 마음도 간다. 오늘은 오늘 하고 싶던 것들을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한 채 쳐들어오는 내일이 내일 하고 싶은 것으로 나를 유혹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몸도 시시각각 변한다. 이렇게 하루를 까먹다 보면 어느 날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 겁난다. 옛날에 노인들은 하루가 짧다고 했는데 요즘 노인들은 점점 할 것이 없다. 기계가 다 해주는 세상에 남아나는 것은 시간뿐인데 몸은 더 무거워져서 꼼짝 하지 않아도 피곤해 죽겠단다. 움직이지 않으니 몸은 여기저기 안 아픈데 없어 약을 한주먹 씩 먹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편해져서 생겨나는 병이라지만 평생 동안 너무 고생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사는 게 이래저래 힘들어진다. 놀면 노는 대로 일하면 일하는대로 세상은 살기 어렵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고 그 많던 세월이 다 지나갔는데 앞으로 남은 세월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오면 오나 보다 하고, 가면 가나보다 하며 사는 게 최고 같다. 일일이 따지고 생각하면 골치 아프니까 흐르는 물처럼 살아야겠다.어찌 살아야 잘살았다고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알 것 같다가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기에 하루하루 살아간다. 오늘의 나는 오늘을 살고 내일의 나는 내일을 살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오지 않은 내일은 내일 생각하자.
시시한 날도, 멋진 날도 지나고 보면 그리운 추억의 항아리에서 다 만나게 될 것이다. 내게 온 나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 날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며 누군가가 말할 것이다. 엄마로, 딸로, 그리고 아내로, 친구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온 한평생이 들어있는 추억의 항아리를 오늘도 채워나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