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약속을 하며 산다. 형편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잊어버릴 수도 있고 일부러 골탕을 먹이려고 잊은 척할 수도 있지만 약속은 되도록 지키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약속할 때는 좋아서 한 약속인데 돌아서서 생각하고 마음이 변할 수 있지만 못 지킨 약속에 미안한 마음은 쉽게 버릴 수 없다. 옛날에 결혼식 초대장에 가겠다고 통지를 하고 몇 달 지난 뒤에 하는 결혼식을 깜빡 잊고 가지 않았다. 그 뒤로 만나지 못해 미안한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늘 그분한테 미안한 마음이다. 약속이라는 것이 보통 남들과 하지만 자신과의 하는 약속도 있고 결심도 있다. 자신과의 약속은 작심삼일이 될 수 있고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일주일만 해보자 생각했던 것이 하다 보면 한 달이 되고 기왕 했으니 조금 더 하자 하다 보면 몇 달이 된다.
자신과의 약속이니 아무 때나 그만두어도 되는데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까워서 조금만 더 하며 계속하게 된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하나의 습관이 되고 안 하면 허전해서 힘들어도 하게 된다. 꼭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부담이 가기도 하지만 양을 줄이거나 마음에 여유를 가져보며 고비를 넘긴다. 코로나로 체육관에 가지 못하게 되어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한다. 하루에 만보를 계획하지만 어떤 때는 만보가 안되고 어떤 날은 만보를 넘어 평균을 내보면 대충 9500보가 된다.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집에서 노느니 출근하듯 하는 산책이지만 기왕 나간 김에 어느 정도는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시작했다. 아침에 나가기 전에는 갈까 말까 망설이며 갈등을 하지만 나가서 걸으면 정말 좋다. 이렇게 약속을 하지 않았어도 하다 보니 하나의 일상이 되었고 알게 모르게 몸과의 약속을 하게 되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나름 자신과의 약속을 한 것이다. 매일 걷는 길도 자꾸 가면 새롭기에 싫증 안 나고 날씨에 따라 분위기도 다르기 때문에 꾸준히 걸을 수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남과의 약속은 지키려고 하며 자신과의 약속은 흐지부지하게 안 지키는 경우가 많다. 괜히 하겠다고 해놓고 며칠 하다 말고 없었던 일로 한다. 약속은 약속인데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안다고 슬그머니 모른 채 한다. 약속이란 어원을 따져보면 무언가를 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마음의 다짐이고 계획이다. 살면서 약속을 안 지켜서 실망하며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많고 말로만 하는 약속도 많은 세상이다. 내가 해줄게. 밥 한번 먹자. 술 한잔 마시자. 전화 하자. 그러면서 한 번도 하지 않는다. 친한 척 법석을 떨기만 할 뿐 말로만 하는 헛소리다.
(사진:이종숙)
그런 약속은 말한 사람의 일방적인 약속이라 나도 하지 않지만 그렇게 이야기한 사람이 적어도 한 번은 해야 하는데 매번 말뿐이다. 그런 이야기를 수없이 하고 듣고 살지만 정작 이루어지지 않고 마치 무언가를 해준 것 같이 인심 쓰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말하며 표현하며 사는 것도 좋지만 하지도 않으면서 말로만 떠들어 대는 것도 약속을 깨는 행위나 다름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 살기 힘들어지지만 적어도 말을 하면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오래전에 어느 집에 놀러 가서 밥을 먹게 되었다. 다른 반찬도 맛이 있었지만 유독 깻잎장아찌가 너무 맛있다고 말을 했다. 음식 솜씨가 좋아 부러운 마음에 칭찬을 한 것뿐인데 상대는 내가 그것을 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음에 담가서 주겠다고 한다. 물론 말로만 주었다. 그 사람의 습관이고 말로만 하는 약속을 처음에는 몰랐다. 매번 만날 때마다 빈말로 무언가를 준다.
한두 번 속으며 알고 보니 그 사람의 생색내기식 언사였다. 그 뒤부터는 안 믿게 되어 실망도 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 하면 그 생각 때문에 다른 것도 믿게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다. 말뿐인 사람이 있고 그 자리에서 한 병 싸서 바로 주는 사람이 있다. 여유가 없으면 조금이라도 싸서 주는 사람이 있고 말로 한 약속을 기억하고 나중에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약속은 약속인데 말로만 약속하는 사람은 믿음이 안 간다. 수십 번을 주었지만 한 번도 못 받는 헛소리이다. 오히려 아무 소리도 안 하고 같이 밥 먹던 사람이 나중에 갖다 주었던 경우도 있다. 그까짓 깻잎 안 먹어도 그만인데 사람들 많은 데서 잔뜩 줄 것같이 말만 해놓고 만다.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생색만 내는 행위다. 그런 것을 약속이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로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얻어먹으려고 칭찬한 것도 아닌데 굳이 사람들 앞에서 말로 친한 듯하는 경우다. 약속이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크던 작던 적어도 서로에게 한 말은 지키며 살아야 한다. 한마디 말로 천량 빚 갚는 것이 아니고 빈말로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다. 하지 않고 못할 것 같으면 가만히 있으면 되고 할 것 같으면 말을 앞세우지 말고 하면 된다. 매번 잊었다고 변명한다.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이고, 잊어버린 게 아니고 잊은 척할 뿐이다. 자신과의 약속은 기억하고 남과의 약속을 저버리면 이중인격자다. 사람은 눈으로 기억하고, 입으로 기억하며, 귀로 기억한다. 기억을 못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잊은 척한다. 날씨가 안 좋아서, 또는 귀찮고 피곤해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상대 못할 사람이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미리 연락을 하면 된다. 연락도 없이 늦게 나타나서 미안한 기색도 하지 않고 뻔뻔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많다.
오래 전의 일이다. 바쁘고 힘들어도 밥 한 끼 해먹이고 싶어 친하다고 생각한 부부를 집으로 초대했다.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나도 오지 않더니 한 시간 반이 지나서 왔다. 워낙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점심을 늦게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아 늦게 왔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기가 막혔다. 솔직한 말이지만 같이 먹으려고 배가 고파도 쫄쫄 굶으며 기다린 우리는 뭔가. 이기적이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에게 아무것도 바랄 수 없다. 많이 배우고 지위가 높아도 기본적인 매너가 없으면 더 이상 상대하기 어렵다.
사람이 동물과 다름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말이나 글 그리고 마음으로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키며 사는 인간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약속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작고 시시한 약속이라도 약속이다. 약속을 지키면 희망을 주지만 말로만 하는 약속은 신뢰를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