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하루를 맞는다. 돈도 내지 않았는데 거저받은 하루다. 오늘은 어떤 날이 될까 심히 궁금하다. 어제가 되어버린 날들이 차곡히 쌓여가듯이 인간은 매일 새롭게 태어나 그날의 삶을 산다. 매일매일 새로운 날을 맞아 또 다른 삶을 살아간다. 아침에 하루가 태어나고 밤에는 하루가 숨을 거두며 오늘이라는 시간은 내일을 위하여 떠난다. 싫어도 좋아도 오는 하루를 살아있는 한 맞아야 하고 웃음으로 맞던 울음으로 맞던 그 하루를 만나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긍정과 웃음이 없다면 어떨까? 살면서 우리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더라도 살아야 한다. 완벽한 날은 아니어도 완벽한 순간은 언제나 우리를 찾아온다. 웃음과 긍정과 함께 행복도 찾아온다.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한 채 보내야 하고 생각지 못한 순간도 맞으며 살아야 한다. 이 세상 모두를 찾아가는 하루는 누군가에게는 기쁨과 슬픔을 주고 누군가에게는 괴로움과 고통을 준다.
복권이 맞아 벼락부자가 되고 하던 사업이 부도를 맞아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기도 한다. 멀쩡한 대낮에 길을 가다가 차에 치기도 하고 우연히 들어간 백화점에서 깜짝 세일로 횡재를 만나기도 한다. 넘어지고 엎어지기도 하고 사기를 당해 많은 돈을 잃기도 한다. 하루라는 시간 동안 일어나는 알지 못하는 엄청난 사건들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 알다가도 모르는 게 인생살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조용히 왔다가 정신없이 가기도 하고 시끄럽게 왔다가 외롭게 가기도 한다. 하늘을 본다. 온통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하늘세상도 우리네들이 살 아가는 땅 세상만큼 바람 잘날 없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뭉게구름이 꽃처럼 피어나고 새털구름이 예쁘게 하늘에 뿌려진다. 때로는 하얀색으로 하늘을 덮고 어떤 때는 아무것도 없는 파란 물감을 풀어놓기도 한다.
(사진:이종숙)
아무런 걱정 근심이 없어 보이는 하늘도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땅 위에 사는 사람들만 지지고 볶으며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하늘도 해야 할 일이 있어 바쁘다. 봄이 오려면 봄비도 뿌려줘야 하고 더울 때 소나기도 내려 보내야 한다. 천둥 번개를 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고 겨울이 오기 전에 바람을 불어 나뭇잎을 떨어 뜨려야 한다. 추운 날씨에 나무들이 추우니 눈도 내려 덮어주어야 하고 이래저래 할 일이 많다. 사람들은 속이 상하거나 슬프면 눈물을 머금고 하늘을 본다. 힘들고 외로울 때 하늘을 보면 위로가 되고 마음이 가라앉아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차들이 오고 가는 길 가운데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배가 고프고 너무 춥다는 글을 쓴 종이를 들고 구걸을 하고 서 있다. 땅을 보고 하늘을 본다. 너무 힘이 들어 보인다. 신호가 바뀌고 가던 차들이 차례로 선다.
아무도 그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 없지만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연신 굽신거리고 있다. 신호가 바뀌는 짧은 시간인데 힘들어하는 그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다. 사람들은 그를 외면하며 다른 곳을 바라보며 신호가 바뀌기를 바란다. 조금 가다가 신호등에 걸려 서 있는데 그곳에도 또 다른 한 사람이 서서 구걸을 한다. 똑같은 문구로 배가 고프고 너무 추우니 도와 달라고 한다. 잠깐 사이에 다른 사람이 자리에 서고 먼저 있던 사람은 가방을 메고 퇴근한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듯이 그것도 그들의 직장이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하는 직장이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신체 건강한 젊은이들이다. 힘든 세상이다. 직업이 없고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갈 데가 없으니 길거리로 나와서 그나마 돈을 벌며 살아야 한다. 코로나로 세상이 문을 닫았다. 갈 곳도 없고 일할 곳도 없다.
(사진:이종숙)
무엇이고 해야 한다. 그들도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겠지만 두 손 두 발 묶어놓고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단돈 몇 푼이라도 벌어서 밥을 먹고살아야 한다. 그들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고 끝이 나지만 주저앉을 수 없기에 오늘도 그들은 길거리 직장에 간다. 멀리서 누군가 창문을 내려 그를 부른다. 재빠르게 달려가 창문으로 내민 파란 종이돈을 받아 들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허리를 굽신굽신 한다. 아무도 주지 않을 것 같았는데 누군가의 호의가 있어 그들이 살 수 있는 것 같다. 인생의 모습은 하늘의 떠 다니는 구름 같다. 먹구름이 올지 새털구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먹구름이 끼면 사람들은 비설거지를 하고 새털구름이 떠 있으면 날씨가 좋을 것 같아 소풍이 가고 싶어 진다. 그들의 삶이 오늘은 그런 모습이지만 어느 날 새털구름처럼 가볍고 즐겁기를 바라며 구름으로 말하는 하늘을 본다.
조금 더 가다 보니 길을 막고 도로 공사를 한다. 날씨가 추운데 얼은 땅을 뒤집으며 돌멩이를 고르고 있다. 하수구에 이상이 생겼는지 여러 사람들이 웅성 거린다.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꾀를 부리며 농땡이 피는 사람도 눈에 띈다. 똑같은 하루를 받았는데 누군가는 따뜻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누군가는 추운 길바닥에서 일을 한다. 추워서 하얀 입김이 펑펑 나오고 일은 진척이 더디다. 얼마를 더 해야 할지 모르지만 여기저기 흐트러진 기계들을 보니 며칠 동안 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의 하루가 너무 힘들지 않게 날씨가 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같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하루가 다르고 지구 저편에 사는 사람들의 하루가 다르다. 힘들 때마다 왜 나는...이라는 생각을 하면 일분일초도 살 수가 없다. '다행이다'를 외치면 고마운 생각이 든다. 살아있음에 고맙고 아프지 않아 고맙고 걸어 다닐 수 있어 고맙다.
안 가진 것을 갖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이지만 가진 것을 찾아보면 의외로 많다. 오늘 내가 받은 하루는 어느 누군가가 원하던 하루였다고 생각하면 더 소중하다. 일을 해서 좋고 일이 없어 다행이고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어 좋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어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잠깐 동안의 행복한 순간을 맛보며 사는 게 인생이다. 어제 못 가진 행복을 만날 수 있고 오늘 만난 시시한 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시냇물이 강물을 찾아가노라면 지푸라기도 만나고 나뭇가지도 만난다. 돌멩이도 만나고 계곡도 만난다. 누군들 사는 동안 평안하기만 하겠는가.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힘든 날도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두 그렇다. 잘 사는 것 같고 가질 것 다 가진 것 같은 사람도 말 들어보면 아픔도 많고 시련도 많다. 세상 그 무엇도 공짜가 없고 거저 되는 것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