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찾을 수 없고... 오지 않은 내일은 모른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세상이 변하고 나도 변한다. 세상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하며 세상을 따라간다. 코로나 확산으로 지금까지 하던 것을 못하게 하니 갑갑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며,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누리며 살던 것들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인 듯 꼼짝달싹 못하고 산다. 가지 마라, 만나지 마라, 하지 마라, 한마디로 '마라, 마라'의 시대가 되어 할 수 있는 게 없다. 연말이 와도 식구들끼리만 살라고 한다. 부모도 형제도 만나지 못하고 식사도 같이 하지 못한다. 한 해 동안 살기 바빠 만날 수 없던 사람들도 연말에는 고향을 찾고 가족을 만나며 살았는데 연말인데도 가족을 볼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현실이다. 당연한 것들이 사라진 현실은 그저 막막하고 답답하다. 그 옛날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원시시대로 돌아간 듯하다. 자연에 묻혀서 살아가는 원시인이 되어 먹고 자고 놀고 하는 삶이다.


40년 전 캐나다에 처음 이민을 왔을 때는 인구가 적었다. 이곳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시내나 시외 할 것 없이 모든 가게가 오후 6시가 폐점 시간이었다. 길거리에 사람들도 차들도 별로 없었고 주말에는 가게를 닫고 가족끼리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어느 날 어느 돈 많은 거부가 대형 쇼핑센터를 지어 아침부터 밤중 늦게까지 열고 주말도 열기 시작하며 세상이 바뀌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고 너나 할 것 없이 돈을 벌러 다녔다. 먹기 살기 위해 법을 어기면서 어린아이들을 집에 방치하고 일을 나가고 아이들끼리 집이나 차에서 놀게 하고 장을 보러 다녔다. 안전벨트도 안 매고 차 뒤칸에서 애들을 재우며 멀리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교민들 사회에도 여러 가지 끔찍한 사고가 생겼다. 어떤 집은 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뒤집혔는데 마침 창문이 열려 있어서 아이는 창밖으로 튀어나가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슬픈 일이 생겼다.


이곳저곳에서 가슴 아픈 일이 생기며 안전벨트 강화법이 생기게 되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되었지만 더 이상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법이었다. 세상이 바뀌며 집이나 차에 방치된 어린이를 보면 주위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를 하고 아이들을 보호센터로 보내게 되니까 나름대로 법을 지키게 되었다. 처음에는 안전벨트를 하면 갑갑하다고 하기 싫어했지만 벌금을 먹이고 벌금을 물고 법적으로 처벌을 받으며 조금씩 생활화가 되었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아 생기는 사고가 줄어들고 세상은 조금씩 옛날 모습을 잃어가고 발전하며 변한다. 옛날에는 요즘처럼 여러 가지 법도 없고 까다로운 규제도 없어 그저 나쁜 짓만 안 하고 살면 되었는데 세월이 가고 새로운 법들이 만들어지고 규제도 많아지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조금씩 누리던 자유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는 법이기에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사람들은 익숙해져 갔다. 코로나와의 싸움이 길어지며 불편하던 규제들은 어느덧 삶이 되어간다. 만남을 금지하는 것이 이제는 가족이 아니면 벌금을 물리게 한다. 사람들이 집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갇혀있는 감방살이가 되어간다. 사람과의 교류 없이 만나지 않고 살다 보니 사람들은 우울증이 걸린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여러 가지 파티를 골라가며 갔는데 올해는 모든 것이 취소가 되어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한 채 연말이 간다. 머지않아 새해가 오더라도 특별한 변화는 없을 것이다. 백신을 믿지 못하여 맞지 않겠다는 사람도 많다 보니 백신을 믿고 맞으라는 홍보도 하는 실정이다. 아직도 여러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데모를 하며 정부와 맞서고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마스크만이 살길인 것을 사람들이 알아간다.


정작 코로나가 끝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손 닦으며 마스크 쓰고 거리두기는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세균이 배출되고 전파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무섭다. 무섭게 번식되는 세균이 가져온 코로나 전쟁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막연하게 자유를 원하지는 않는다. 백신 접종도 지금 막 시작한 단계에 변종 바이러스는 또 다른 두려움의 대상이다. 지구 상에서 청정지역이라고 믿었던 곳까지 집단 감염자가 나와 세상은 두려움에 떤다. 프랑스가 영국을 봉쇄하여 오도 가도 못하는 트럭커들이 길거리에 멈추어진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먹고살기 위해 집을 떠나온 사람들이 가는 길이 막혀 길거리에서 며칠을 버틸 수 있을지 수없다. 그들도 자야 하고 먹어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하는데 되돌아 갈 수도, 앞으로 갈 수도 없는 생지옥이다.


트럭커들이 길거리에 발이 묶이고 물건이 들어오지 못하니 불안한 사람들은 사재기에 혈안이 되었다. 식료품점에 선반들은 텅텅 비어 가고 변이 된 코로나 확산이 무서운 정부는 봉쇄를 풀지 못한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푸는 방법이 없다.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돌며 다시 한번 바뀐다. 전쟁과 전염병으로 폐허가 된 지구가 사는 길은 하지 말고, 가지 말고, 만나지 않고 사는 것이 해답 인지 아니면 예전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답이 없다. 봉쇄하고 방역을 강화하며 최선을 다하는데도 확산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현실이다. 길을 하얗게 막고 서있는 트럭커들이 갈 곳은 어디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고 앞으로 간다.


어제의 삶은 찾을 수 없고 내일도 모른다. 오늘 내가 여기 있고 삶은 여전히 지속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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